신입가정 참전일지
입학 전 나는 아이만큼 꽤나 긴장했다.
처음 보는 많은 사람들을 한꺼번에 대해야 한다는 알 수 없는 중압감이랄까. I타입 인간에게는 꽤 버거운 현실이었다. 막상 들어와서 보니 다들 나에게 관심을 주는 것도 아닌데 자의식과잉인 나는 혼자 걱정을 쌓아 두었던 셈이다.
중등 신입생가정을 위한 모꼬지가 열린다는 카톡이 왔다. ‘모꼬지? 모꼬지가 뭐지?’ 차마 단톡방에서는 묻지 못하고 말 수 적고 박식한 네이*에게 물었다. 모꼬지란 ‘놀이나 잔치 또는 그 밖의 일로 여러 사람이 모이는 일’.이라고 답했다.
입학 전 OT개념으로 말하는 것인가 보다 싶었다. 학교 졸업한 지가 언제인지. 오랜만에 OT라 괜히 떨렸다. 환영받는 것은 좋긴 한데 낯선 곳은 싫다. 사실 이 동네로 이사 온 지 얼마 되지 않았기 때문에 모임 장소가 어디로 정해졌던들 낯설었을 것이다. 그래도 중등 1학년 신입생가정을 위한 잔치라고 하니까 기분 좋게 온 가족이 참석하기로 했다. 장소는 우이동 계곡에 있는 음식점이었다.
아이들은 밥을 먹고 보드게임을 시작했다. 우리 집 아이도 낯선 환경이 긴장되는 눈치지만 그 안에서 형, 누나, 친구, 동생들과 섞여 즐겁게 놀고 있었다. 보드게임 후엔 핸드폰 게임타임도 있었다. 대안학교라고 핸드폰게임을 안 하는 건 아니구나. 작은 깨달음이 있었다. 그동안 나도 사람들의 별칭을 외우며 얼굴을 익히려 애썼다. 옆 사람 앞사람, 또 바뀌는 옆 사람 앞사람의 이야기를 들으며 또 궁금한 것은 묻기도 하며 즐거운 시간을 보냈다.
음식점에는 노래방 기계도 있었다. 한 명, 두 명 노래를 하기 시작했다. 그날 남편은 감기가 심해 종일 마스크를 쓰고 지냈다. 당일 오전까지 갈까 말까 고민했지만 모처럼 신입가정을 위한 자리인 데다가 입학 전에 얼굴을 익힐 좋은 기회이니 빠질 수 없었다. 결국 마스크를 쓰고 대화는 최소한으로, 하지만 좋아하는 술은 마시지 않기로 하고 참석을 결정했다.
남편은 노래를 곧잘 하는 편이다. 노래를 시켜도 시키지 않아도 혼자 잘 부르는 타입이다.
물론 그날도 마스크를 쓴 채 ‘사랑비’를 불렀다. 마스크를 쓰고 말도 거의 안 하고 술도 안 마시고 있던 사람이 갑자기 나와 노래를 하는 것이 과연 올바른 자세인가에 대해 생각해 보았다. 사람들은 열심히 박수를 치고 같이 노래를 불러주었다.
그렇게 사랑비가 내린 후 나도 손을 번쩍 들었다. (나도 모르게 손이 올라갔다라고 해두겠다.)
앞에서 포지션의 ‘I LOVE YOU’를 불렀기 때문이다. (라고 해 두겠다.)
나의 노래방 최애곡은 포지션의 ‘너에게’이다.
발라드를 불러도 야유하지 않는 모두가 좋았다. 노래는 좋아하지만 노래를 잘하지는 못하는 나와 함께 열창해 주는 모두가 따뜻했다. 내 노래가 끝나자 다음 노래를 포지션의 ‘SUMMER TIME’으로 받아 주는 배려도 가슴 몽글했다.
나는 계곡 옆 음식점을 좋아하지 않는다. 아이들이 함께 하는 술자리도 좋아하지 않는다. 너무 많은 인원이 참가하는 자리도 좋아하지 않는다. 온갖 까탈을 다 부리는 성격이지만 이날은 음정이 올라가지도 않는 ‘너에게’를 열심히 부르며 왠지 이 새로운 곳에서 이 새로운 사람들과 잘 지낼 수 있을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그리고 아직 그 예감은 틀리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