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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완자 Oct 25. 2024

화려하지 않은 고백

입학 결심

‘띵동! 땡! 땡! 띵동!


저녁시간만 되면 아이의 노트북에서 쉴 새 없이 울려 퍼지는 소리다. 일명 ‘띵동땡공격’. 아이의 학원 숙제하는 소리이다. 더 정확히 말하자면 ‘땡공격’에 가깝다.


국공립초등학교를 다닌 아이는 여느 아이들과 다르지 않게 영어학원과 수학학원을 다니며 학원숙제로 괴로워하며 지냈다. 하지만 학원에 가야만 친구들과 잘잘한 수다라도 떨 수 있는 지금의 교육환경은 아이가 학원을 끊는 것조차 주저하게 만든다. 이미 학원은 지식이 아닌 사교의 장이 되어 버렸다. 아이에게 학원은 사교의 장이므로 놀랍지만 숙제는 필수항목이 아니다. 시작점부터 부모와 아이의 견해가 전혀 다르게 출발하는 것이다.


부모는 요즘은 어떤 학원의 선생님이 바뀌었으며 그 선생님의 이력은 어떻고 어떤 커리큘럼으로 운영하고 있는지. 강남의 유명한 학원이 이 동네에 지점을 냈는데 역시나 괜찮다던 지. 아니면 소문만 못하다던지 최대한 안테나를 세워 그 안에서 내 아이에게 맞을만한 최상의 조합을 찾아 학원에 보낸다. 초등 저학년이 끝나가면 학군지로 이사를 갈지 아니면 살던 곳에 남아서 계속 지낼지를 고민하고 초등 고학년이 되면 동네 보습학원에서 대형학원으로 넘어가야 하고 정답을 알 수 없지만 구전처럼 내려와 모두가 읊을 수 있는 과정들을 거친다.


키즈 카페에서 미끄럼 태우고 볼을 날려주며 깔깔 웃던 시기는 지나고 본격적인 입시 열차에 탑승하는 시기인 것이다.


집 앞 동네 보습학원을 계속 다니던 아이의 친구들도 학년이 올라감에 따라 하나 둘 이사를 가거나 대형학원으로 옮겨갔다. 아이는 숙제는 하지 않아도 남은 친구들과의 수다에 집착하며 당당히 학원 끊기를 거부했다. 학원이 사교의 장이 된 것도 나에게는 고민스러웠지만 더 큰 고민거리는 따로 있었다. 초등 고학년으로 올라가면서 선행학습의 속도가 빨라지고 있었다.


아이가 숙제를 하는 소리, 즉, 땡! 띵동! 땡! 땡! 띵동! 땡! 소리에 노이로제가 걸릴 것 같았다. 1형식 문장, 2 형식 문장, 직접 의문문, 간접 의문문 등 내가 영문법을 공부할 때에서 조금도 앞으로 나아간 것 같지 않은 교재들이 나를 더 고민스럽게 했다. 세상은 이렇게 변했는데 배우는 내용과 방식이 30년도 지난 지금과 동일하다면 이게 맞는 것일까? 물론 고전이라는 것이 있듯 교과에서도 꼭 다지고 지나가야 하는 부분이 있겠지만  아이의 띵동땡공격 속에서 나는 그러한 고전의 의미를 찾지 못했다.


아이는 곧 중학교에 입학할 시기가 다가오고 있었고 고민은 점점 깊어 갔다. 나는 공교육이 아닌 대안 교육에 눈을 돌리기 시작했다.


대안학교에 보낸 다는 것은 곧 지금의 삶의 터전을 바꾼다는 것을 의미했다. 내가 맹자의 어머니였다면 고민이라는 것이 없었겠지만 나는 귀가 얇고 경솔하기 짝이 없는 인간 아니었던가. 마음을 대안학교로 정하고 나니 지금 사는 곳과는 거리가 있어 이사를 가야만 했다. 태어나서 처음 가보는 동네로 이사를 가는데 아이는 과연 잘 적응하고 즐겁게 학교 생활을 할 수 있을까? 지금까지의 주변 환경들을 모두 바꾸면서까지 대안학교에 보낼 가치가 있는 것일까? 무엇보다 아이는 지금 친구들과 헤어져 처음 만나는 친구들과 다시 관계 맺기를 해야 한다는 생각에 계속 살던 동네에서 중학교도 진학하기를 원했다.


그러던 와중에 재미난학교의 3일 겪어보기를 신청했다. 아이가 직접 겪어보기에 참여해 보고 아이가 만족하면 보내자고 한발 물러섰다.


겪어보기를 가는 첫날 아침, 아이는 아침 일찍 그렇게 멀 리까지 꼭 가야 하냐며 투덜대며 집을 나섰다. 학교에 억지로 끌려들어 가는 듯한 찌그러진 아이의 얼굴에 나는 애써 웃으며 손을 크게 흔들어 주었다.


수업이 끝나고 집으로 돌아오는 지하철을 기다리며 수업은 어땠는지 슬쩍 물어보았다.

“오늘은 형, 누나들이 만든 보드게임을 했어. 좀 어렵긴 했는데 재미있더라고.”

그리고는 나에게 보드게임 규칙을 하나하나 설명해 준다.

“겪어보기를 신청한 다른 친구들도 있었는데 이름은 다 못 외웠어. 내일 다시 한번 물어보고 오려고.”

아이는 이런저런 이야기를 줄줄이 해주기 시작했다.


다음날부터 아이는 별다른 불평 없이 아침 일찍 일어나 학교에 갈 준비를 시작했다. 겪어보기 마지막날은 아이와 선생님들의 면담이 있다. 아이는 면담이 떨린다며 어떻게 대답해야 할지 모르겠다고 하더니 묻지도 않은 말을 마지막에 이렇게 덧붙였다고 한다.  


“지금은 집이 좀 멀지만 2월까지는 xx역 쪽으로 이사를 올 거니까 학교 다니는 것은 문제가 없어요!”


그렇게 아이의 말은 현실이 되고 나는 이렇게 글을 쓰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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