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완자 Oct 25. 2024

우리 만난 적 있나요

아이엠그라운드 종말선언


아이네 반 담임교사의 이름을 알게 된 건 입학하고 한참 후이다.


아이의 학교(대안학교)에서는 별칭을 사용하기 때문에 별칭이 아닌 그 사람의 진짜 이름을 알기가 쉽지 않다. 믿기지 않겠지만 정말로 부를 기회가 없다. 처음 별칭을 사용한다는 이야기를 들었을 때는 일부 게임회사나 외국계회사에서 부르는 영어이름이 떠올라 ‘나 갑자기 크리스탈 되는 거야? 굳이? 왜?’ 이런 생각이 지배적이었다. 그런다고 정말 수평적인 관계가 되는 거야?라는 의심을 지울 수 없었다. (일단 정해진 모든 규칙에 대해서는 모두 의심하고 보는 성격이다.)  


학교 면접을 보면서 교장 호랑이는 별칭은 준비하신 게 있냐고 물었다.


물론 있다. 나의 면접예상 문제였기 때문이다.


면접 전, 남편과 나는 어떤 별칭으로 할지 고민했다. 합격여부도 아직 모르는 학교지만 그래도 성심껏 생각해 보았다. 나를 드러내면서 3년간 계속 불릴 이름이니까 공을 들여 만들고 싶었다. 하지만 그런 마음과는 달리 딱 마음에 드는 별칭이 떠오르지 않았다. 내 이름을 조금 비틀어서 만들어볼까? 아니면 좋아하는 캐릭터이름을 붙일까? 여러 가지 생각을 해보다 보니 그즈음의 나는 아이와 눈만 마주치면 물어뜯고 싸우며 지낸 터라 스산하고 황량해진 마음으로 가득했다.


나는 나의 별칭을 ‘들개’로 정했다. 너무나 마음에 들었다.


지금의 나를 정확히 드러내면서 씩씩해 보이는 데다 그래도 일종의 개니까 조금 귀엽지 않아?라는 자기 위안을 담아. 내가 나를 들개로 칭하는 건 괜찮은데 남이 부르면 조금 싫을지도?라는 생각이 아주 잠깐 스쳤지만 말이다.


면접 때 들개라고 약간 수줍어하며 대답했다. 이 점은 들개답지 못했다. 그런 모습 때문인지 모두 참깨의 친구 들깨로 생각해서 그 고소함에 대한 이유를 물으셨다. 나의 답변 후 공기의 흐름이 약간 달라짐을 감지했다. 재빨리 확정은 아니라고 비겁하게 덧붙였다.


학교는 꼭 합격해야 하니까.


그리고 ‘들개’ 미확정의 여지를 남겨두었기 때문인지 ‘당당하게’ 합격했다. 그 후 나는 빛의 속도로 들개에서 완자로 다시 태어났다. 동그랑땡같이 둥글어지고 싶은 마음을 담아서이다.


아이 입학 후 이런저런 모임들 속에서 나는 완자로 살게 되었다. 누구도 나에게 나이나 학번이나 진짜 이름을 묻지 않았다. 별칭 하나로 여러 가지 불필요한 탐색을 줄일 수 있었다. 저 사람은 나보다 나이가 위인지 아래인지. 아직 친하지 않으니 언니라고 부르는 건 도리어 어색하다 또는 누구 엄마라고 하면 너무 그 사람 자신이 사라진 것 같지 않아? 등등. 더구나 우리나라에는 모든 족보를 뒤엎는 ‘빠른 년생’이라는 골치 아픈 존재가 있지 않았던가. 하지만 “저는 완자예요.”라고 하는 순간 이 모든 것이 한 번에 정리되었다.


유레카


아이들 역시 선생님, 다른 학부모들을 별칭으로 부르고 평어를 사용한다.

어느 날 아이의 친구가 집에 놀러 왔다. 아이 친구는 초등학교부터 이 학교에 다녔던 터라 평어가 어색하지 않다. 밤이 좀 깊어져 아이 친구를 집까지 데려다 주기로 하고 같이 버스에 올라탔다.

아이 친구는 나에게 마치 친구에게 이야기하듯이 아무런 거리낌 없이

“완자, 이번 역에서 내릴 거야.“

“이번 신호에 건너야 해. 그냥 뛸까?”

“이번 골목에서 왼쪽이야.”라고 이야기를 건넸다.


누구 엄마 또는 이모라고 불렸던 지난날을 생각하면 지금은 아이들과 내가 같은 곳에 발을 딛고 있는 느낌이 든다. 누가 한 계단 위에 올라가 내려다보면서 이야기하거나 밑에서 올려다보지 않고 말이다.

그렇게 나는 처음 내가 가졌던 짙은 의심들을 하나씩 하나씩 걷어 내가고 있는 중이다.

이전 01화 화려하지 않은 고백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