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부미녀 Jul 04. 2020

선택권

선택할 여지가 많은 티켓, 그것이 바로 돈이다.

투자를 시작하면서 목표했던 것은 딱 하나였다. 내가 버는 월급보다 더 많은 돈을 자본소득으로만 가질 수 있게 되는 것. (이것을 이루고 난 뒤 목표 한 가지가 더 생겼지만, 아직 이루지 못했으니까 밝히지 않는다.)

그리고 작년에 일본의 건물을 매수하고 잔금을 치르면서 ‘작긴 하지만 드디어 나도 건물주구나. 월세가 들어오면 분명 세상을 다 가진 듯이 기쁘겠지.’라는 생각을 했었더랬다.

그런데 막상 이것을 갖게 되니 아무렇지 않았다. 내 월급보다 2배 가까이 되는 월세가 찍혀있는 통장을 보고 내가 한 말은 딱 한 마디였다.


“월세 들어왔네.”


마음속에서 어떠한 요동도 생기지 않았던, 한없이 무미건조했던 경험이었다. 혹자는 이 이야기를 보고 ‘배부른 소리 하고 앉아있네’와 같이 반응할 테다. 나도 그랬으니까.





언제였을까, 유튜브에서 수백억 대 건물주의 인터뷰를 본 적이 있었다. 인터뷰어가 건물주의 삶이 어떤지, 우리가 동경했던 바로 ‘그 삶‘을 살아가고 있는지 묻고 실제 건물주(상당수의 자산가들은 본인을 노출시키는 것을 극도로 꺼려한다. 그래서인지 가면을 쓰고 있었다.)가 답하는 내용이었다.

나는 당.연.히. 수천만, 수억대 월세를 받는 건물주, 그들이라면 시간의 개념 없이 여기저기 놀러 다니고 소비하면서 좋은 것, 비싼 음식만 먹으며 살고 있을 것이라 생각했다.

그런데 예상외의 답변이 이어졌다. 그냥 본인도 다른 일반인들과 별다른 점이 없는 똑같은 삶이라는 거다. 물론 그들이 9to6로 일을 하면서 회사에 얽매여있다거나, 돈 걱정 때문에 고뇌를 한다거나 하는 일은 없다. 그러나 그들 역시 다른 사람들과 똑같이 아침에 일어나서 운동, 독서, 취미활동 같은 비슷한 생활을 하고 밥은 세끼를 먹고, 나름 세입자나 부동산 고민이 있어 마음이 불편할 때도 많다는 거다.


꽤나 충격이었다. 어찌 보면 내 30년의 삶이, 그리고 7년 가까이 되는 억척같았던 투자 생활의 꿈이 바로 ‘건물주 되기’였음에도, 사실 건물주가 된 사람들은 별반 다른 인생을 사는 게 아니었던 것을 알아버렸기 때문이다. 물론 돈으로부터 자유로워져서 내가 원하는 삶을 사는 건 일반인과 매우 다를 것이다. 그러나 내가 충격을 받았던 것은 단순히 건물주라고 해서 그것이 마치 인생의 목표를 끝마쳐서 한없이 행복해지는 치트키를 갖고 있다는 게 아니라는 것이었다.


생각해보면 그렇다. 돈이 많다고 한들 매일같이 호화 여행을 떠나고 사치품을 사고, 값비싼 코스 요리만 먹고살 수는 없는 것이다. 아마도 그런 시기가 잠시는 있을 수도 있겠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질려버릴 가능성이 높다. 건물주도 똑같은 사람인지라 평범한 일상을 보내고 가끔은 불량 식품도 사 먹고 종종 이런저런 고민을 싸안고 그저 그렇게 지내는 것이었다.




돈은 분명 인간에게 있어서 ‘자유’라는 의미로 중요하다. 돈이 없는 삶도 행복할 수 있다. 하지만 돈이 없으면 내가 선택할 수 있는 것이 매우 적어진다. 돈이 많은 삶도 불행할 수 있다. 하지만 돈이 많으면 내가 선택할 수 있는 것이 무한정으로 늘어난다. 적어도 먹고사는 고민에서는 벗어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나는 항상 돈을 정의할 때 ‘돈=선택권’이라고 이야기한다. 선택할 여지가 많은 티켓, 그것이 바로 돈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오로지 돈이 많다고 해서 무조건 행복해지고, 무조건 자유롭고 평화로운 것은 아니다. 행복과 자유와 평화를 향한 나의 선택이 보다 넓어지고 편안해졌다고 생각하는 편이 맞을 것이다.


그래서일까. 오히려 건물주 인터뷰 영상을 미리 봤던 게 도움이 되었던 것일 수도 있겠다. 월세를 처음 받는 날, 아무렇지 않았던 내 마음을 받아들일 수 있었던 게 말이다. 또한 매월 들어오는 월세를 보면서도 그것이 내가 ‘퇴사해도 되는 이유’가 되지는 못했다. 월세가 들어오든 말든 나의 일, 나의 삶은 별개임을 잘 알았기 때문일 테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퇴사를 결심하고 준비를 하는 동안 이 월세가 나의 위안이 되어주지 않았다고 말하면 거짓말이다. 아니, 오히려 반대로 이 월세가 있었기 때문에 퇴사 고민의 수치가 현저히 낮아질 수 있었고, 분명한 선택권으로 존재했다. 분명한 건 나는 자본소득(월세)이 ‘있어서’ 퇴사하려고 했던 건 아니라는 거다. 자본소득이 있든 없든 내가 스스로 '나의 일을 생각해봤을 때' 회사가 더 이상 나를 성장시켜준다거나 나에게 보람을 가져다주지 않는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퇴사를 결심한 것이 맞다.


오로지 나만을 생각해서 퇴사를 결심할 수 있게 된 가장 큰 버팀목, 나에게는 티켓이 있으니까 말이다.




덧.

일정한 자본소득이 없더라도 나를 충족시킬 수 있는, 나의 100%를 발휘할 수 있는 보람 있는 인생을 살아가려고 퇴사하는 것이야말로 진정한 자아실현이 아닐까?

반박할 여지가 없다. 맞기 때문이다. 돈과는 완전히 무관한, 오롯이 나만을 위한 삶을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존경을 표한다. (나는 그렇게 하지 못했기 때문에...)


어찌 보면 비겁하게도, 다른 일반인들에게는 없는 자본소득을 만들고 나서야 ‘아, 내 인생이 잘못된 것 같아! 퇴사할래!’라고 말한 것은 마치 그동안은 몰랐다가 눈을 뜬 것처럼 행동하는 것처럼 보이니까 말이다. 이 말도 반박할 생각 없다. 비겁한 것 맞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내 10년의 회사생활과 나의 투자 성공을 부정하고 싶지 않다. 회사와 투자를 함께 하면서 겪은 내 지난 10년은 버겁거나 괴롭기도 했고 가끔은 눈물도 훔쳤음에도 내가 해왔던 모든 순간이 나를 만들어준 것을 알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내가 이 자본소득을 만들기까지 회사와 투자 생활은 서로 훌륭한 받침대 역할을 해주었다. (난 직장인 신분으로 마이너스 통장을 만들어서 투자를 시작했다. 그리고 괴로운 투자 생활 가운데서도 회사에서 일하며 안도감도 얻었다. 회사가 없었으면 투자는 꿈도 못 꿨고, 투자가 없었으면 지금의 나는 없었다.)

그러니 난 회사를 미워하지 않는다. 퇴사를 결정한 건 그저 내가 나의 앞길을 생각해서였지, 회사가 밉고 괴로워서는 분명히 아니다.

매거진의 이전글 나의 가격표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