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연 '지리멸렬'
짚불 앞에서 느끼는 거지만 인생에는 지리멸렬한 요소가 있다. 깔끔하게 털지 못하는 그 무엇. 질척거리는 헛소리같은 게 있다.
허연의 시는 냉소적이다. 살아내는 일의 수고로움에 대해 쉬이 박수치지 않는다. 다만 그 비참함과 지리멸렬함을 핍진하게 담아낸다.
황폐하다. 다 태워 재가 되게 한다. 그 재마저 그냥 쌓여있게 놔두지 않고 몽땅 먼지로 날려보낸다.
그 냉소적인 시선과 폐허가 돼버린 빈 터같은 시에 적잖이 위로받는 날이 많다. 황폐함이 진실이기 때문이리라. 냉소란, 어떻게든 살아가야 하는 이가 그러나 삶에 질려버리는 날을 버티기 위해 쓰는 카드가 아닐까 생각한다.
문학과지성 시인선 411권 <내가 원하는 천사> 책날개에는 그가 이런 말로 소개돼있다.
일상을 살아가는 다른 생들을 애달프게 바라볼 수 있는 어떤 시선에서만 허연 시의 화자는 천사를 상상한다. 천사는 우리가 상상하는 천사를 가장 닮지 않은 모습으로 올 것이라는 그 안타까운 상상이, 어쩐지 위로가 된다. 허연은 완벽한 희망이란 어디에도 없다는 것을 보여주면서 천국은 없다고 말하지만, 그 실망과 절망이라는 희망의 흠집을 통해서 희망을 기억하고 증언해줄 자들은 있다고 기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