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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겨울달 Mar 03. 2020

좋아하는 것을 참 좋아하는 사람

남자친구 인터뷰


지난 5월 말 아는 선배에게서 이○○의 연락처를 받았다. 이○○는 선배 지인의 지인으로, 대학원에서 곤충학을 전공했는데 세부전공은 꿀벌이라고 했다. 이○○의 번호를 저장하자 카카오톡 친구목록 상단에 그의 프로필 사진이 떴다. 사진은 이○○의 얼굴 사진도, 어떤 풍경 사진도 아니었다. 꿀벌 사진이었다. ‘꿀벌 전공이라더니, 꿀벌을 정말 좋아하는구나’ 생각했다.


그의 꿀벌 사랑은 실로 깊고 진했다. 그는 꿀벌이 그려진 스티커를 지갑 안쪽에 붙이고 다닌다. 세계의 꿀벌 연구자들이 모이는 해외 학회에서 받은 것이라는데 귀여워서 가지고 다닌다고 한다. ‘좋아하는 것을 참 좋아하는 사람이구나’ 생각했다. “벌레만큼 매력적인 존재는 없다”는 그에게, 곤충학과 그의 삶에 대해 들어봤다.



“꿀벌 없인 아몬드도 없다” 꿀벌청년이 알려주는 곤충의 세계


나: 곤충학이 생소한 사람들을 위해, 이 학문을 간단히 소개해달라.

이○○(이하 ‘이’): 좁게는 ‘곤충’, 즉 머리 가슴 배 세 부분으로 구성돼있고 날개 두 쌍에 다리 여섯 개가 달려있는 동물에 대해 공부하는 학문이다. 넓게는 갑각류를 비롯한 절지동물 전반을 다룬다. 지구상에 존재하는 전체 생물의 절반가량이 곤충이라고 할 수 있을 만큼 곤충은 종의 다양성과 개체 수 모두가 상당하다. 연구에 있어선 농업 관련 가치가 있는 곤충을 특히 중요하게 본다.


나: 주로 어떤 곤충이 연구 대상이 되나.

이: 크게 ‘농업곤충’과 ‘위생곤충’이다. 농업곤충 중에서도 해충이 중요하다. 살충제를 치지 않을 경우 해충은 인간이 생산하는 식량의 3분의 1을 갉아먹을 수 있다. 해충을 어떻게 방제할 것인가가 중요한 이유다.


나: 해충 연구란 무엇인가.

이: 해충이 어떤 생활사를 가지고 사는지, 외래종이라면 어디서 어떻게 물을 건너 왔는지, 우리나라 기후에서는 어떻게 적응하는지 등에 대한 연구다. 살충제 저항성에 대한 연구도 주요하다. 인간이 살충제를 쓰면 해충은 살충제를 견디는 능력을 발달시키는데, 곤충이 살충제 저항성을 갖추는 과정과 방법을 이해하고 대처 방안을 모색한다.


나: 해충 연구는 어디에 어떻게 활용되나.

해충 연구의 초점은 이들의 생태와 습성을 이해하고 잘 관리하는 데에 있다. 예컨대 해충이 알을 전부 땅 속에 낳아놨는데 이를 모르고 작물에만 살충제를 뿌린다면 방제 효과가 크지 않다. 살충제를 쓸 때 작물과 해충의 상호작용에 대한 이해를 바탕으로 최적의 방제 타이밍을 찾는 것도 중요하다. 이렇게 온갖 요소를 종합적으로 고려해 방제 전략을 짜는 것을 ‘병충해 종합관리(Integrated Pest Management·IPM)’라고 한다.


나: 농업곤충 외의 또 다른 한 축인 위생곤충이란 무엇인가.

이: 우리 삶에 질병을 매개하거나 불쾌감을 유발하는 곤충을 말한다. 가장 일반적이고도 치명적인 질병 매개 곤충은 모기다. 위생곤충 연구는 이들을 어떻게 방제할 것인지에 초점을 맞춘다. 이들이 질병을 어떻게 옮기는지는 물론이고 질병 바이러스 자체에 대해서도 연구한다.


나: 최근 곤충 관련 스포트라이트는 꿀벌이 받고 있는 듯하다. 꿀벌 개체 수 감소에 대한 세계 각국의 관심이 높아지고 있다.

이: 꿀벌이 생태와 농업 생산에 미치는 영향력이 크기 때문이다. 꿀벌은 꽃의 수술에 있는 꽃가루를 암술머리로 실어 날라 작물을 수정시키는 ‘화분매개곤충’이다. 이 수분이 이뤄지지 않으면 열매도 열리지 않으므로 꿀벌이 사라지면 상당수 작물 생산이 타격을 입는다. 단적인 예로, 꿀벌이 없으면 아몬드도 없다.


나: 왜 그런가.

이: 아몬드는 꿀벌에 대한 수분 의존도가 100%인 작물이다. 세계 아몬드의 70~80%는 미국 캘리포니아에서 생산된다. 매년 2월쯤 캘리포니아 아몬드 밭에 아몬드 꽃이 핀다. 아몬드 농사를 짓는 사람들은 미국 전역의 양봉업자들에게서 꿀벌을 빌려온다. 밭의 일정 범위마다 벌통을 갖다놓으면 벌이 아몬드 꽃의 화분을 매개하고, 이를 통해 아몬드가 열린다. 꿀벌 외엔 아몬드 꽃들을 책임지고 화분매개해줄 곤충이 없다. 꿀벌이 없다면 아몬드 나무에서는 꽃만 피었다 질 뿐 아몬드가 열리지 않게 된다. 같은 이유로 꿀벌이 없다면 블루베리와 복숭아 생산도 반타작이 난다.


나: 꿀벌이 사라지는 문제의 현황과 원인, 해결책에 대해 쉽게 배워볼 수 있는 자료가 있나.

이: TED 강연 ‘Marla Spivak: Why bees are disappearing’ 영상을 보면 좋다.



벌레식충식물야생조류꿀벌... 꿀벌청년 덕질의 역사


나: “벌레보다 재밌는 게 없었다”는 말을 했다. 곤충 사랑은 언제 어디서부터 시작됐나.

이: 어릴 때부터 곤충이 좋았다. 동네 형들과 사마귀를 잡아서 키우는 게 취미였다. 개미들이 어디서 나와 어디로 가는지 궁금해서 하루 종일 개미떼의 뒤를 밟아본 적도 있다. 파리를 잡아서 잠자리에게 먹여주고, 그 잠자리를 사마귀한테 먹이로 주고, 사마귀를 개미집 앞에 놓아서 개미들이 사마귀를 어떻게 잡아먹는지를 관찰하기도 했다. 사마귀와 사슴벌레, 장수풍뎅이, 타란튤라 등을 키워봤다.


나: 곤충 못지않게 식물도 좋아하는데.

이: 시작은 식충식물이었다. 어릴 때 장수풍뎅이를 키우는데 자꾸 날파리가 꼬였다. 식충식물이 날파리를 먹는다기에 친구에게서 파리지옥을 얻어와 열심히 키웠다. 키우다보니 식충식물이 참 신기하고 매력적이었다. 식충식물 동호회에 가입해 활동하면서 서울에서 열리는 정모에도 갔다. 멤버 중 초등학생은 나 하나뿐이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약 100종류의 식충식물을 키워봤다. 우리나라에 수입된 모든 식충식물은 다 키워봤다고 할 수 있다.


나: 식충식물에서 시작된 식물 사랑이 학부에서 원예학을 전공하는 데에 영향을 미친 건가.

이: 그렇다고 할 수 있다. 국내 대학의 학부 과정에 곤충학과는 없는데 원예학과는 있더라. 대학 때 식물과 곤충을 보려고 산악부에 들어가기도 했다. 그런데 알고 보니 산악부는 작정하고 산을 타는 동아리지, 둘레둘레 걸으며 식물과 곤충을 보는 동아리가 아니었다. 산악부를 금방 나왔고, 대학 연합 동아리인 ‘야생조류연구회’에 들어가 졸업할 때까지 즐겁게 활동했다.


나: 뭐 하나에 빠지면 아주 깊게 빠지는 편인 것 같다.

이: 그런 편이다. 고등학교 땐 딸기우유에 빠져서 매점에서 딸기우유 사먹는 데에 한 달 동안 30만원을 쓴 적도 있었다. 좀 싸이코 같아 보였을 것 같다.


나: 꿀벌에 대한 연구로 석사 학위를 받았다. 어떤 연구를 했나.

이: 석사 논문은 「필름교환식 꿀벌 알 수집 시스템(FECS)의 개발과 꿀벌 유전체 편집에 대한 응용」이다. 꿀벌에게도 ‘살충제 저항성’이 가능하다는 걸 보여주고 싶었다. 농업인들은 ‘해충’을 죽이려고 살충제를 뿌리는데, ‘익충’인 꿀벌이 자꾸 살충제를 먹고 죽는다. 그런데 해충은 살충제 저항성을 주 무기로 갖고 있다. 나는 해충이 어떤 식으로 살충제 저항성을 발달시켰는지를 알아내 그걸 꿀벌에게 심어주려고 했다. 유전체 편집 기술이 있기 때문에 이게 가능하다. ‘해충이 발달시킨 무기를 익충에게 쥐어주자’. 이것이 내가 하고자 했던 것이다.


나: 실험이 쉽지 않았다고 들었다. 연구자의 멘탈 관리법이라면.

이: 대학원 생활 중 힘들었던 때는 실험이 안 될 때였고, 좋았던 때는 실험이 잘 됐을 때다. 실험에서 실패는 당연한 것이다. 연구에 대한 애정과 희망만이 답이다. 그것 외엔 보상이 없다.


나: 장기적 목표는 무엇인가.

이: 부자가 되는 것이다.


나: 그것이야 모든 이들의 목표가 아니겠는가.

이: 어느 정도 자금이 모이면 ‘이○○연구소’를 차리고 꿀벌 연구를 마음껏 하고 싶다. 얼마 전까지는 ‘지금이 아니면 논문을 쓰지 못할 것이다, 지금이 가장 연구하기 좋을 때다’라고 생각했는데 아닌 것 같다. 50살에도 할 수 있고 오히려 그 때 가장 잘 할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을 했다. 산업에든 학문에든 내 이름을 남기고 싶다. 교과서에 내 이름과 내 연구가 실렸으면 좋겠다. 생명체는 유전자를 통해 자신의 유전정보를 후대에 남긴다. 논문을 통해 지식정보를 남기는 것 역시 후대에 자신을 남기는 길이라 생각한다. 그것이 진정한 ‘영생’일 것이다.



9월 어느날 서울 당산동에서 인터뷰를 마친 이○○는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연신 주변 나무를 살폈다. 요새 집에서 키우는 누에에게 먹일 뽕나무 잎을 찾는 것이었다. 당산동에서 뽕나무를 발견하지 못한 그는 결국 관악산에 올라 뽕잎을 주워왔다. 방문을 닫고 누에들과 함께 있으면 누에가 뽕잎을 사각사각 갉아먹는 소리가 들린다고 그는 말했다. 좋아하는 것을 참 좋아하는 사람의 일상이다. ‘좋아하는 것을 참 좋아하는 사람은 참 멋지구나’ 하고, 나는 생각했다.



* 첨부한 사진 속 곤충은 뒤영벌이다.

* 2019년 9월 <낯선글쓰기> 인터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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