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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겨울달 Nov 16. 2018

짐 들고 이 별에 내린 자에게 하는 말

황지우 '발작'


내가 사는 모양새가 어째 영 어설프다고 느낄 때가 있다. 20대에만 어설프고 말 줄 알았는데 30대가 되어도 별 차이가 없다. 사람에게든 일에든 어설프게 곰실곰실 다가가는 것은 가슴 설레기도 하지만 쪽팔릴 때가 더 많다. 그럴 때 나는 내가 '불시착한 여행자' 같다고 생각했다. 내 몸뚱이라는 짐 하나만 덜렁 들고, 원래 행선지가 아닌 다른 곳에 어쩌다 불시착한 사람.


어설픔이 '젊음'의 문제가 아니라는 걸 알게된 건 배우 윤여정이 몇년 전 어느날 한 예능프로그램에 출연 한 말을 들었을 때였다.



"60이 되어도 인생을 몰라요. 내가 처음 살아보는 거잖아. 나 67살이 처음이야. 내가 알았으면 이렇게 안 하지. 그래서 아쉬울 수밖에 없고 아플 수밖에 없고."



"나 67살이 처음이야"라는 말을 듣자 머리가 '댕'했다. 67세의 중년도 67세가 처음이라는 게 어찌나 생소하던지. 80살이 돼도 80살은 처음일 것이다. 


'결국 사람은 살면서 내내 어설프게 두리번대고 어리버리할 수밖에 없겠구나' 생각하니 좀 자유로워지기도 했지만 '내내 이런 식이면 좀 괴롭지 않겠나' 하는 생각도 했다. 그럴 때 또 위로가 됐던 게 황지우의 '발작'이라는 시였다.



"이 곳에서 쓴 맛 단 맛 다 보고 다시 떠날 때 / 오직 이 별에서만 초록빛과 사랑이 있음을 알고 간다면 / 이번 생에 감사할 일 아닌가 / 초록빛과 사랑; 이거 / 우주 기적 아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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