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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다움 Aug 27. 2022

이루지 못한 나의 휴직자 호사(豪奢) 리스트

... 곧 복직할 마냥 설레발을 쳤는데, 아직 전이다. 복직... (9월 1일 자)


  복직 일주일을 앞두고서야 지난 반년을 돌이켜 보는 나란 사람...

  가만히 생각해 보니, 휴직자의 호사(豪奢)라 불릴만한 것을 거의 하지 않은 게 아닌가...!!!


  방학숙제는 개학 직전에 기억이 나고, 주말 간 해야 할 일은 꼭 일요일 밤에 생각이 나듯,  나의 '휴직자 호사 리스트'는 복직이 일주일도 채 남지 않은 지금에서야 기억나고 말았다.

  

  이제와 어떡하고...!!!






1. 혼자서 떠나는 당일치기 여행


  별다른 취미생활을 가져 본 적은 없었지만, 로망은 있다. 우아하게 혼자 놀기.

  원래도 혼자 놀기를 그다지 두려워하지 않았다. 혼자 다니는 걸 이상하게 보거나, 못 견뎌하는 사람들의 시선에 저항하듯 시작했지만,  사실은 좋았다.  다른 사람의 취향, 의사에 맞출 필요도 없고, 내 시간이 빌 때, 기분과 컨디션에 따라 무엇인가 할 수 있는 편리함을  맛 본 뒤로, 나의 혼자 놀기는 범위를 점점 넓혀갔다.


  혼자 놀기에는 혼밥, 혼술, 혼자 심야영화 보기, 혼자 쇼핑하기 등이 있지만, 그중 혼자 놀기의 진수는 단연  '혼자 여행하기'라 하겠다. 사회생활을 시작하고 독자적인 기동력을 갖춘 뒤로 나의 혼자 놀기엔 날개가 달렸다. 물론 연애도 하고, 친구도 만나고, 동호회 활동도 하고, 공부도 하느라 자주 가진 못했지만.


  혼자 떠난 여행지 중 가장 최장거리는 경남 남해다.  한창 DSLR 동호회 활동을 할 때라 묵직한 카메라 가방을 메고 남해까지 쉬지 않고 달려갔다. 상주 은모래비치에서 맨발로 모래사장을 걷고, 금산 보리암에 올라 탁 트인 바다를 만끽하고, 2인분부터 주문 가능한 멸치쌈밥을 야무지게 뚝딱 해치웠다. 발가락 사이를 간지럽히는 고운 모래의 환상적인 촉감과 밤바다 소리, 동해바다에서 느껴보지 못한 잔잔한 바다, 짭조름하게 양념이 된 통실한 멸치 쌈을 크게 한입 베어 물던 그날의 기억이 아직도 나를 설레게 한다.


 휴직에 들어서며 한 번은 하고 싶었다. 꼭 1박이 아니어도 좋으니 일치기 여행이라도.


  자유는 무한정 주어졌을 때 보다 제한될 때 더 간절하다 했던가.

 복직이 임박해서야 깨달은 나의 아둔함에  뒤늦게 '아차!'를 외쳐 봐이젠 별도리가 없다.


  하지만 돌이켜 보면 휴직 기간 동안 가장 좋았던 순간들은  아이들과 부둥켜 뒹굴고 웃고 떠드는 일상이었다. 바쁘게 재촉할 일도 없고, 초등생과 유치원생으로 생활 패턴이 나뉘니 한 아이에게만 온전히 엄마를 차지할 기회를 줄 수 있는 것도 좋았다. 그 시간 덕분에 이전보다 훨씬 돈독해진 관계를 느낀다. 뭐랄까... 이제 조금 친구 삼아줄 수 있는 정도가 됐달까.




2. 다이어트


  이건 나름 열심히 했다. 결과가 안 나왔을 뿐.

  지난 5월부터 시작된 '아침 등산+요가+식단 조절+하루 1만 보 이상 걷기'는 특별한 경우가 아니라면 거의 빠지지 않았다. 타고난 식탐 조절고, 밀가루를 줄이고, 샐러드와 견과류 위주의 식단에 좀 더 신경 썼다. 하루 1만 보 걷기는 목표치가 상향되어 평일 평균 하루 1만 5 천보를 걸었다. 그런데 이쯤 하면... 체중이 5kg은 빠져야 하지... 않나? 내 욕심이 그렇다.


  평생 다이어트를 해본 적이 없지만, 이번에는 필사적으로 임했다. 더 늦어지면 영영 불가능할 것만 같은 위기의식에서였다. 그리고 휴직이 아니라면 언제 시도를 하겠나. 아이를 낳기 전까지 만큼은 아니지만, 적어도 둘째 낳기 전까지의 체중으로 돌아가길 바랬다. 계획은 착착 진행이 됐다. 문제는 이미 어느 정도의 운동량에 적응이 되어 있던 내 몸에 있었다. 새로운 운동 패턴에 몸이 금세 적응을 해 버린 것이었다. 세상에... 오전 등산을 다녀와도 근육통 없이 가뿐하기만 해서(산에 다닌 동료가 운알못이라 높이 오르진 못한 이유도 있다) 여분의 열량을 태워내질 못한 것이다. 뭐 덕분에 속 근육은 많이 붙었다. 겨우겨우 2kg을 감량했다.


  자리 잡은 운동생활의  장애물이 있었다. 바로 아이들의 방학과 본격 휴가시즌이었다. 집에 아이들이 모두 있으니 도무지 운동을 할 수가 없어서 궁여지책으로 요가 수련을 새벽으로 옮겼다. 운동량이 떨어지고 집에 머무는 시간이 많아지니 몸이 급격하게 퍼지는 게 느껴졌다. 헬스를 하는 사람들이 흔히들 말하던 '근손실이 두렵지도 않냐?!'는 말이 처음으로 이해가 됐다. 어렵게 붙은 속 근육은 금세 풀어지고, 줄어든 운동량로 탄탄해진 살이 다시 말랑말랑해졌다. 2kg 감량한 효과는 오래가지 않았고, 지금은 원래 체중에서 고작 1kg이 빠진 상태로 유지 중이다. 그런데 이 정도면 이 고생을 하지 않아도 뺄 수 있는 무게가 아닌가?


  아니...! 난 좀 억울하다!

  그간 다이어트 랍시고, 그렇게 먹는 걸 좋아하는 내가 식단까지 조절을 했는데!

  식단 유지까진 아니지만 예전처럼 마음껏 먹지 않고도 겨우 1kg밖에 차이가 안 나다니...!!

  이럴 수는 없다.

  아아... 다이어트는... 실패다!



3. 조용하고 예쁜 카페, 책, 그리고 글쓰기


  비 오는 날 생각나는 카페가 하나 있다. 옆에 작은 미술관을 끼고 있는 고즈넉한 시골 카페인데, 2층 좌식 테이블에 앉아 가로로 길게 이어진 창 밖으로 비 구경을 하노라면, 동양적인 고즈넉함이 가득히 느껴지는 카페다. 아무도 없는 평일 오전. 혼자 조용히 앉아 책을 읽고, 커피를 마시고, 글을 쓰는 작은 행복을 느껴보고 싶었다.



  하지만 초등 1학년의 일과는 12시 30분에 끝났고, 오전 운동 스케줄과 중간중간 아이의 학원 스케줄을 고려하니 생각만큼 시간이 나질 않았다. 오늘만 날이랴... 차일피일 미루던 나의 로망은 그렇게 쓸쓸히 잊혀 갔다.


  사실 여행도, 카페 나들이도 남편이 쉬는 날 하루 맡기면 되는데... 그걸 하지 못했다.


  일시적 외벌이 가장의 휴식날에 나만 좋자고 훌쩍 떠나기란 정말 쉽지 않았기 때문이다.


    

4. 명태 비빔국수와 매운 야끼우동


     일전의 김치찌개 편(# 나의 소울푸드, 돼지고기 김치찌개)에서 언급한 바와 같이, 우리 가족은 나를 제외하곤 매운 음식을 일절 먹지 못한다. 그리고 아직 아이들의 식사량이 어중간한 관계로(한 메뉴로 나눠 먹기엔 적고, 1인 1 메뉴를 소화하기엔 많은) 식당에서 내가 원하는 메뉴를 나만 먹을 수 있는 처지가 못된다. 때문에 정말 먹고 싶은 매운 음식은 점심시간을 틈타 혼자서 먹어야 하는 것이다.


  우리 집에서 타고 5분 거리에는 유명한 동태탕 집이 있다. 가끔씩 이용하는 식당인데 어느 날은 '시즌 메뉴! 명태 비빔국수 개시!'라는 현수막이 걸려있었다. 그날부터 내 머릿속에는 명태 비빔국수가 떠나질 않았다.


  명태 비빔국수... 매콤 시큼 달달한... 명태 비빔국수...  

 

 또 멀지 않은 곳엔 배달이 되지 않는 야끼우동 전문점이 있다. 주방장님의 노하우가 어찌나 대단한지, 신선한 해산물 하나하나가 불맛 옷을 걸치고는 요염하고 자극적인 미소로 식객을 유혹하는 곳이었다.


  야끼우동... 뜨겁고 맵고... 탱글 한 면발...


  복직을 하기 전, 혼자 가서 조용히 클리어하리라... 나는 그렇게 다짐을 했던 것이다.


  하지만 이 다짐은 다이어트 돌입과 함께 무산되었다.

  빵, 국수, 과자 등 각종 밀가루류 섭취를 최대한 줄였기 때문이다.


  결과적으로 체중조절과 다이어트는 실패했다. 먹고 싶은 것 을 외면하고 아등바등 운동했던 나날을 돌이켜보니, 이제와 나는 무엇을 위해 그토록 열심히였나 하는 허탈함도 생기는 것이다. 이대로 나는 다이어트와 영영 이별인 걸까.


  안 되겠다. 다른 건 몰라도 이건 복직 전에 반드시 실행하고 말겠다.


  다음 주 월요일 점심 메뉴는 너로 정했다!!






  매 순간을 단 하나의 후회도 남기지 않고 충실히 채워나갈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하지만 만족스러운 것들로만 채워지는 기억이란 있을 수 없고, 남겨진 후회가 있어 다음을 기약하게도 되는 것이다.

 

  아! 휴직 리스트에서  한 가지  달성한 건 있다.

  브런치 작가가  되는 것,


  사실  이 한 가지만 하더라도 휴직 리스트의 절반은 성공이다. 머뭇거리기만 하던 긴긴 시간을 이번 휴직으로 끊어냈기 때문이다. 큰맘 먹었고, 나름 꾸준히 썼다. 자신감 부족과 자기 의심으로 다시 망설이던 날이 찾아왔지만, 그래도 놓지 않고 계속 썼다. 더 이상 후회하고 싶진 않기 때문이다.


  이 글을 빌어 허접한 글을 읽어주시고 댓글도 달아주시는 소중한 벗님들께 감사인사를 드리고 싶다. 처음엔 미웠던 라이킷과 구독 시스템을 만든 브런치에게도 고맙다. 덕분에 계속 쓸 수 있다는 일말의 자신감 비슷한 게 생겼다.


  휴직의 끝이 아쉽진 않다. 다시 돌아간 일터에서 건져낼 주옥같은 글감들이 벌써부터 기대가 되기 때문이다.


  마지막 순간까지 의연하게, 언제나와 같이 자연스럽고 편안하게 나의 휴직을 마무리하려고 한다. 이제 다시 눈앞에 버라이어티 한 환장 세계가 펼쳐지겠지만, 그 속에서 나는 다시 보물 같은 순간을 찾아낼 것이다. 그리고 슬기롭게 글쓰기 생활을 계속 이어갈 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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