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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다움 Sep 11. 2022

달을 맞이하는 마음들에 대하여

"엄마! 달맞이해야지!"

"달맞이? 하면 되지. 소원도 빌 겸 오늘 밤에 산책이나 할까?"

"응! 좋아!!"




휘영청, 밝은 달이 떴습니다.

정말이지 한가위에 걸맞은 크고 밝은 달이 떴어요.

어느덧 10시를 가리키는 시곗바늘이 무색하게,

하늘을 덮은 구름조차 뭉게구름으로 만드는 밝은 보름달입니다.

대낮부터 달맞이 타령을 한 아이들 덕분에

한밤의 달구경을 제대로 하네요.


낮부터 아이들은 달에게 무슨 소원을 빌면 좋을지 고민을 했어요.


"음... 아빠 로또 1등 되게 해달라고 하자."

"응? 소원이 그거야?" (ㅋㅋ)

"응. 아빠가 기뻐할 거 아냐."


첫째 현이는 소원이 대뜸 아빠의 복권 당첨이라 합니다.

세상에, 하고 싶은 것, 갖고 싶은 것도 있을 텐데, 기껏 비는 소원이 아빠 소원이라니요.

아빠가 매주 복권을 사는 걸 지나치게 유심히 봤던 탓일까요, 아님 아이들이 보는 앞에서 복권 1등 판타지를 너무 진지하게 말했던 탓일까요.

현이의 소원 앞에 괜히 민망한 기분이 듭니다.


"쭈는? 무슨 소원 빌 거야?"

"모르겠어."

"아직 시간 많이 남았어. 천천히 생각해봐."


둘째 쭈는 아직 소원을 정하지 못했네요.

아이는 아직 결정을 못했다고 하지만, 어쩐지 엄마는 알 것만 같습니다.

아마도 '공주님이 되게 해 주세요.' 겠지요.

엄마 아빠 눈엔 세상에서 제일 예쁜 공주님이라는 걸 자기만 모르는 둘째입니다.


기다리던 밤이 됐어요.

아이들과 설레는 마음으로 길을 나섭니다.

머리 위로 환상적인 밤하늘이 펼쳐졌어요.

구름이 많아 별은 보이지 않지만, 잔뜩 끼인 구름을 뚫고 달빛이 내리쬡니다.

어젯밤 아이들과 봤던 씽투게더의 한 장면이 떠올랐어요.

엄청나게 큰 무대 세트 위, 달을 상징하는 조명을 보고 꿈에 부푼 대사를 읊조리는 한 명의 배우가 되는 상상을  봅니다.

배우는 달을 보며 어떤 대사를 읊었을까요?


"자, 소원 타임! 각자 잠시 달에게 소원을 빌겠습니다."


가지런히 모은 손들이 예쁩니다.

아이들의 진지한 모습에 저도 덩달아 진지해지더군요.

잠시 손을 모으고 속으로 소원을 빌어봅니다.


"다 빌었다."

"현이는 무슨 소원 빌었어?"

"아까 말했잖아. 아빠 로또 되게 해 달라고."


... 진짜 그 소원을 빌 줄은 몰랐는데...


"쭈는? 무슨 소원 빌었어?"

"나는 우리 오빠 학교생활 잘하게 해 달라고."


...

이 아이들을 어쩌죠.

달에 소원을 빌라니 모두 가족들을 향한 소원만 빌었네요.

너무 사랑스러워 아이들이 싫어하는 뽀뽀 폭탄을 마구 투하할 뻔했습니다.


"엄마는? 뭐 빌었어?"

"엄마는, 우리 현이, 쭈가 앞으로도 지금처럼 건강하고 밝게 잘 자라게 해달라고 빌었지."

"아~그렇구나."


사실 '하는 일 술술 잘 풀리고, 만사형통하게 해 주시고, 손대는 일마다 척척 해내는 해결사가 되게 해 주세요.'라는 소원을 빌었던 건 비밀입니다.

온통 가족을 향한 아이들의 마음에 부끄러워 선의의 거짓말을 한건 달님도 용서해 주시겠지요?


손을 잡은 작은 손이 폭신하고 따뜻합니다.

아이의 다정한 마음이 느껴져 덩달아 제 마음도 몽글몽글 해지네요.


선선하게 불어오는 바람까지 완벽한


추석의 밤이 저물어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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