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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다움 Apr 11. 2022

아이들이 수면 독립을 했다

  오늘 밤, 남매가 처음으로 수면 독립을 했다. 첫째 아이 기준으로 만 7년, 둘째 아이 만 5년 만의 일이다. 잠들면 업어가도 모를 오빠와 달리 예민한 딸은 유달리 얕게 자고, 자주 깼다. 그러다 보니 남매의 수면 독립은 둘째가 준비될 때까지 미뤄졌던 것이다.


  달력에 D-day를 큼지막하게 표시해두고 일주일 전부터 매일 아침 아이들에게 고지를 했다. 그때마다 아이들의 얼굴에 약간의 긴장이 스쳤다. 보드랍기보단 씩씩한 엄마이길 자처하는 나는 아이들의 불안을 다독이기보단 언제나처럼 등을 강하게 투닥이길 택한다.      


  “형님들이야! 할 수 있어!”        


  약속한 날이 밝았고, 아침부터 남매는 ‘잠 자리를 언제 꾸미는지, 베개와 이불은 그대로 쓰는 게 맞는지, 자다가 마실 물은 어디 두면 되는지, 인형들 이사는 어떻게 할 건지’ 하는 질문들을 쏟아냈다. 녀석들. 긴장하는 것 같더니 은근히 설렜나 보다.     


  방을 꾸미고 남매가 새로운 방에 입주를 했다. 누워서 책을 읽어준다니 잔뜩 신이 나서 내 양 옆구리에 찰싹 붙는다. 한 권, 두 권, 세 권, 네 권...책을 읽다 내가 잠이 들자 둘째가 나를 흔들어 깨웠다.     


  “엄마! 엄마는 엄마 방에 가서 자야지!”     


  잘 때까지 같이 있어주려 했더니, 그럴 필요가 없었나 보다. 수면등을 켜놓고 잘 자라 인사를 하고는 방문을 닫았다. 생각보다 너무 아무렇지 않아서, 괜스레 서운했다.           


수면등. 이름은 꽉꽉이다.






  안방 문을 여니 남편은 벌써 잠이 들었다. 방이 휑한 것이, 영 허전해서 적응이 되지 않는다. 아이들을 방에서 독립시키고 나면 홀가분하리라 생각했는데, 실상은 그렇지 않은 듯하다. 이제 막 다른 방에서 재우고 나왔는데, 벌써 아이들이 보고 싶어 졌다.


   딸의 얕은 수면은 전적으로 내게서 비롯된 것이다. 나는 이미 10대 초반부터 불면증을 겪고 있었고, 아주 피곤해서 쓰러질 듯 이불에 들어가는 날이 아니면 거의 대부분은 '잠들지 못하리라'는 수면 공포와 함께 밤을 보냈다. 특히 스트레스가 많은 날에는 새벽이 밝도록 잠을 이루지 못했는데, 무엇보다도 쉼 없이 꼬리에 꼬리를 무는 생각들이 고통스러웠다. 이것이 PESM 증후군(정신적 과잉활동 증후군)이라 불린다는 걸 알게 된 건 비교적 최근의 일이다.          


  고질적인 수면장애를 극복할수 있었던건 아이들이 있어서다. 언제든 나를 기다리고 필요로 하는 존재가 곁에 있다는 건 감사할 일이다. 아이가 깨우지 않는 밤도, 아이가 깨우는 밤도, 그 작은 존재가 주는 위안이 어찌나 컸던지. 낮의 피로를 상기시키는 아이의 뒤척임과 쌔근거리는 숨소리, 무서운 꿈을 꿀 때면 곁에 와 안기는 아이의 품과 이해할 수 없던 잠꼬대들, 보드라운 살 냄새와 자다 뀌는 방귀소리, 편안함.


  나는 알고 있었다. 아이들의 밤은 내가 지켰지만, 아이들이 그 모든 나의 밤을 지켜줬다는 것을.



      

  방에 아이들이 없다.

  그리고 앞으론 계속 그럴 것이다.      



                                          - 대견함보단 내 걱정이 앞서는 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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