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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다움 Apr 12. 2022

꽃을 샀다

그다지 좋아하진 않습니다만,

  며칠 전, 아침산책 중의 일이다. 언제나처럼 샤랄라 한 공주의 옷차림으로 그 나이 대 여느 남아 못지않은  과감한 킥보드 라이딩을 선뵈며 거리를 활보하던 딸이 무엇인가에 홀린 듯 갑자기 멈춰 섰다. 노점 꽃집이다.


  우리 동네를 가로지르는 왕복 8차선 도로가에는 매일 아침 문을 여는 노점 꽃집 한 곳이 있다. 내 어렴풋한 기억으로 이 꽃집은 재작년 즈음부터 뜨문뜨문 보이다가, 작년 중순을 기점으로 한파가 몰아치는 날을 제외하고는 거의 매일 아침, 같은 장소에서 문을 열었다. 이모님 뻘의 꽃집 사장님은 매일 아침 싱싱한 계절 꽃을 한 아름 싣고 와서 노점을 꾸몄다. 갖가지 꽃이 담긴 커다란 바구니들이 사장님의 소박한 탁자를 에워싸듯 놓여있어서 볼 때마다 꽃으로 무장한 작은 성 같이 느껴졌다. 그날은 때마침 감기 기운에 유치원을 빠진 한 작은 소녀의 눈에 띈 것이다. 소녀 감성 충만한 여섯 살의 공주는 형형색색 탐스럽게 담겨있는 꽃 바구니들에서 눈을 떼지 못했다. 마스크 너머로 입을 헤벌쭉 벌리고 웃고 있는 표정이 보이는 듯했다. 상황으로 보나, 눈빛으로 보나, 그냥 지나칠 수 없을 게 분명했다. 눈치 빠른 아가씨는 재빨리 엄마와 눈빛을 교환하고는 곧 암묵적인 동의를 얻어냈다. 딸은 한껏 들뜬 목소리로 사장님께 말을 걸었다.


  “이 꽃 이름이 뭐예요? 이건 뭐예요? 예쁘다~~~”     






  고백건대... 사실 나는 꽃을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특히나 줄기 꺾인 화려한 꽃송이에는 별 매력을 못 느낀다. 어떤 이유인지는 모르겠으나 내게는 눈앞의 화사함보다 오래가지 않는 아름다움의 말로가 주는 불편함이 더 컸고, 꽃을 보면 머지않아 초라하게 탁자에서 치워질 씁쓸한 장면이 먼저 떠올랐다. 내게 꽃은, 나뭇가지에 걸려 생명력 가득한 싱그러움을 뽐내는 정도면 충분했다. 그래서 내추럴 본 경상도 남자인 남편이 큰맘 먹고 한껏 머쓱한 표정으로 ‘오다 주웠다’와 비슷한 멘트를 날리며 꽃다발을 안겨주었을 때도, 일이 너무 힘들어 매일 밤 죽을 상을 하고 앉아있는 내게 뜬금없이 ‘힘내’라며 꽃을 건네었을 때도, 그 마음이 예쁘고 고마워 몹시 기뻤지만 꽃 자체는 반갑지가 않았다. 이제와 미안한 소리지만, 예쁜 꽃보다는 먹음직스러운 수제 에그타르트 세트가 더 반가웠을 것이다. (역시 꽃보단 먹는 거지...)     

     





  비록 꽃을 향한 감수성이 퍼석하다 못해 바스러진 애미일지라도 딸의 감성은 소중하고 지켜줘야 될 것이기에, 나는 딸의 애정 어린 시선을 듬뿍 받은 보라색 꽃 한 단을 구입했다. 올망졸망 작은 꽃이 풍성한 꽃다발을 품에 안으니 향기가 마스크를 뚫고 코끝을 간지럽혔다. 딸은 집으로 돌아가는 내내 잔뜩 신이 나서 열심히 킥보드를 굴리며 길 한번, 꽃 한 번을 번갈아 가며 봤다. 그래, 네가 좋으면 된 거다.

       

  집에 돌아와 꽃병으로 쓸 만한 유리병을 찾아 꽃을 꽂고는 탁자 가장자리, 가장 눈에 잘 띄는 곳에 올려두었다. 화사하니, 제법 볼만은 하다. 이 맛에 꽃을 사는구나.




비단향꽃무, 스토크라고도 불린다.

 


* 덧붙임...


  집으로 귀가한 아들이 꽃을 보며 말했다.


  "으웩, 썩은 걸레 냄새나!"


  ... 아들아... 이건 꽃 향기라고 부르는 거야....



                                                       - 꽃을 즐겨보기로 한 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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