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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다움 May 03. 2022

나와 다른 너를 사랑하는 일

첫째 편

아이의 이야기


  아이는 말이 짧았다. 많이 느리지는 않은데, 많이 짧았다. 가령 '엄마, 햇님이 호두 먹어도 돼?'라는 질문을 할 때면 첫마디만 딱딱 끊어서 "엄마, 햇, 호, 먹, 돼?" 하며 말하는 것이었다. 비슷하게는 '엄마, KTX는 슈슈슈슝 오고, 새마을호는 쿠쿠쿠궁 오고, 무궁화호는 쿠궁, 쿠궁 와.'(아들은 일찍이 기차 덕후였다)라는 말은 "엄마, KT, 슈슈슈슝, 새홀, 쿠쿠쿠궁, 무호, 쿠궁쿠궁!" 하고 말하곤 했다. 분명 상황의 적절성과 의미의 전달, 문장 구성을 모두 갖춘 문장들인데 왜 완성하지 않는 걸까. 27개월이 되도록 자기 스스로를 "햇!"('햇님'이라 말하지 않고)이라 칭하는 아이를 보며 어린이집 원장 선생님은 진지하게 가정에서의 언어 자극법을 상세히 전달해 주셨다. 참고로 내 주 전공은 언어치료다.


  아이는 어릴 적부터 겁이 많고 신중했다. 호기심이 가지만 아무거나 덥석 잡는 법이 없고 한참을 관찰한 뒤 '만져도 되냐'는 동의를 몇 번을 얻고도 함부로 잡지 않았다. 나지막한 어린이 미끄럼틀도 몇 번을 시도하고 포기하길 일쑤였고, 그네는 엄두도 내지 못했다. 사람에 대한 경계심도 높아 낯선 사람이 주는 것을 달가워하지 않았을 뿐 아니라 인사하기도 꺼렸고, 먹는 것, 입는 것, 신는 것을 가리지 않고 새 물건과 친해지는 데 시간이 걸렸다. 아이는 매사에 기다림이 필요했고 엄마는 전략이 필요했다. 새로 산 물건은 바로 사용하지 않고 대략 일주일 간 거실 아무 곳에 무심히 던져두었다. 그럼 이, 삼일은 관심도 갖지 않다가 사, 오일째 되는 날부터 눈길과 손길이 가고, 육, 칠일쯤 후엔 슬슬 사용하려는 시도를 했다. 아이의 새 운동화도, 계절별 새 옷도, 수저와 그릇 세트도 그런 과정을 거쳤다.


  아이의 말에 변화가 오기 시작한 건 30개월 무렵이었다. 그즈음에 아이는 기차 동화책 한 권에 푹 빠져있었는데 하루에도 몇 번이나 그 책을 읽었는지라 엄마가 소리 내어 읽어준 페이지의 내용을 모두 외우고 있었다. 하루는 아이가 책을 읽어주는 엄마의 말을 따라 했다. 딱 서술어만.


   "~했어요."

   "~말이에요."


  그때부터 아이는 문장의 서술어만 완성해서 말을 했다.


   "엄마, 햇, 붕붕, 쌩, 탈래요." (엄마, 햇님이 붕붕카 쌩쌩 탈래요.)

   "할, 햇, 코뤨, 노, 틀어주세요." (할머니, 햇님이 *코레일의 노래 틀어주세요.)

          *코레일의 노래: 코레일 애사가. 코레일 직원인 남편 친구도 모른다.



  아이는 그 이후로 본격적으로 완성형 문장을 말하기 시작했고 33개월쯤엔 '도대체 말 느리던 그 아이 어디 갔나' 할 정도로 말이 많아졌다. 신기한 건 모든 말들 가운데 혀 짧은 소리는 단 하나도 없었다는 점이다. 사실 아이는 몇 번이고 발음을 신중하게 곱씹고 있었던 것 같다. 완벽하고 정확하게 말할 수 없느니, 차라리 말하지 않겠다는 쪽이었던 것이다.


  아이의 완벽주의는 커가며 더 뚜렷해졌다. 유치원의 규칙은 예외 없이 지켜져야 하고 선생님이 줄을 세울 때는 기준점을 벗어나면 안 됐다. 수업시간마다 하고 있던 활동은 반드시 마무리를 해야 직성에 풀렸고, 하원 시간에는 엄마가 입구에서 기다리고 있어도 마지막 정리까지 완벽하게 하지 않으면 일어나질 않았다. 규칙 속에 자유로운 아이였지만 때때로 규칙이 스스로를 옭아맬 때도 있었다. 이 꼬마 원칙주의자는 자신의 원칙을 고수하느라 자유분방한 친구들과 부딪히곤 했던 것이다.


   딱히 방을 치우는 교육을 하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엄마는 어지러운 환경이 익숙했기 때문에) 자기의 편의를 위해 고사리 손으로 물건을 정리했다. 책은 책꽂이에 색깔별로 꽂아 넣고, 굴러다니는 연필은 필통에, 레고 블록은 전시를 위해 책장 위에 진열하거나 분실 방지를 위해 정리함에 정리해두었다. 어느 순간 아들의 잔소리가 엄마의 목소리를 뚫고 나오기 시작했다. "엄마, 엄마 책은 엄마가 정리 좀 해!"하고.


  시간이 지나고 그 아이가 이제 여덟 살이 되었다. 아이는 다행히 교우관계도 원만하고 큰 목소리로 자기주장도 할 수 있는 아이로 성장했다. 신중하고 조심스러우며 낯선 것에 대한 경계와 무엇이든 정해진 대로 해야 직성이 풀리는 완벽주의 성향은 여전하다. (놀이터에서 높은 곳에 못 올라가는 것도 여전하다) 아이는 긍정적이고 밝게 잘 크고 있다. 하지만 아이의 사회가 커진 만큼 여덟 살 인생의 완고함에 스스로도 버거운 순간들은 더 자주 찾아오는 듯하다. 타고난 기질은 어찌할 수 없는 것이고 극복은 스스로의 몫이기에 엄마는 이번에도 아이를 지켜보고 기다리기로 했다.



주구장창 모래놀이만 했던 놀이터





나의 이야기



  나는 말이 빠르고 성질이 급하며 다혈질에 화도 잘 내는 좌충우돌 덜렁이다. 어린 시절부터 말도, 발도 빨랐던 나는 호기심이 겁을 집어삼킨 일명 노빠구 어린이였다. 너무 일찍 걷기도 했고 기본적으로 조심성도 없었기 때문에 이리저리 부딪히고 넘어지고 깨지기 일쑤였다. 지급도 양 무르팍에 깊게 남아 잇는 터 자국들은 망아지 같던 유년시절의 흔적이다.


  발에 맞지 않는 어른 슬리퍼를 질질 끌고 나가다 넘어지거나 하는 건 다반사였고(심지어 20대가 되어서도 가끔은 길에서 넘어졌다), 집 근처 오이밭에서 숨바꼭질하며 뛰어놀다가 집 열쇠를 잃어버려 밤늦도록 온 가족이 오이밭을 헤맨 이야기는 애교요, 어항을 툭툭 칠 때마다 깜짝 놀라는 금붕어의 반응이 재밌어 방을 가로질러 달려와 있는 힘껏 발로 걷어차 어항을 통째로 깨트린 사건이나, 학교가 가고 싶어 노란색 단어카드 가방을 달랑달랑 들고 동네 언니 손을 잡고 말도 없이 학교를 간 바람에 유아 실종신고로 온 동네를 떠들썩하게 만든 사건까지. 이야기를 시작하면 나의 유년시절을 채운 역사적 순간을 끝도 없이 나열하게 될 것 같아 이만하겠다. 이제와 나와 비슷한 성향의 미니미(둘째)를 키우다 보니 느끼는 거지만, 천둥벌거숭이가 따로 없는 여자아이를 키우며 큰 소리 한 번 안 낸 우리 엄마는 정말 대단한 사람이었다. 난 그 난리통 속에서도 진심으로 엄마의 큰 소리를 들어본 기억이 없기 때문이다.


  여하튼, 버라이어티 한 유년시절을 보낸 주 양육자와 섬세하고 꼼꼼한 아이의 기질이 이토록 상충되는 것이어서, 나는 아직도 융통성이라곤 일절 통용되지 않는 아이의 완고함을 이해하기가 몹시도 어렵다. 특히나 자기 속 마음을 꺼내지 않고 혼자서 꽁 해 있는 모습을 볼 때면, "생각할 시간이 필요하구나. 엄마가 기다려줄게. 말하고 싶으면 엄마에게 얘기해"라며 세상 다정한 말을 건네고는 뒤돌아서 정수기의 냉수 한 컵을 연거푸 들이키게 된다. 소위 경상도 사투리로 '천불 난다'는 말을 거듭 되뇌면서도 아이를 위해 참기로 한다. 내게는 여덟 살 아들의 신중함도, 겁도, 속앓이도 하나같이 낯설기 때문이었다.


   반면, 남편은 아들은 보고만 있어도 무슨 생각을 하는지 알 것 같다는 반응이다. 남편의 말에 따르면 본인은 어려서부터 낯도 많이 가리고 친구관계도 폭넓지 않았으며 꽂히는 것이 있으면 파고들고, 속에 담아둔 이야기를 거의 하지 않았다고 한다. 잔뜩 꽁 해져서 "흥!!"을 연발하는 아들을 보며 "저 녀석은 누굴 닮아 그런가"하는 푸념에 움찔하는 남편을 발견하는 날이면 뒤늦게 '아...'하고 깨닫게 된다. 그래... 범인은 너였어...


   나와 다른 아이를 키운다는 건, 나와 다른 너의 세계로 기꺼이 몸을 낮춰 들어가는 과정인 것 같다. 익숙한 나의 세계에서 단 한 번도 경험해 보지 못한 너를 진정으로 이해하기 위해 고개 숙이고 들여다보며 기다려주는 모든 과정. 너의 세계가 충분히 무르익어가는 날들을 곁에서 지켜보고 격려하고 다독이는 것. 그 모든 시간들이 나를 '부모'로 성장시키는 것일게다. 물론 그 와중에도 나는 계속 속에서 '천불'이 나겠지만 말이다.


  "엄마! 책을 읽었으면 엄마가 치워 놓아야지~!!"

   ... 그래, 너의 잔소리도 기꺼이 들어주마...

  

  이것이 나와 다른 너를 사랑하는 일 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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