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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다움 Jun 09. 2022

셋째

아니... 그냥 생각만...

  아침 운동 후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어린이집에서 산책 나온 꼬맹이들 무리와 마주쳤다. 4세로 보이는 아이들 셋이 줄줄이 소시지 마냥 서로의 손을 꼬옥 잡고 씩씩하게 길을 앞장섰고, 그 뒤로 3세와 2세로 보이는 아이들이 짧은 다리로 열심히 형님들을 따라가고 있었다. 요, 귀여운 것들... "선생님이랑 개미 보러 가자~~" 하는 말에 나는 하마터면 "네~!!" 하며 같이 따라갈 뻔했다.


  나는 진지한 표정으로 쪽쪽이를 물고 빵실 빵실한 엉뎅이를 씰룩거리며 걷는 아이들에게 심장을 폭행당해 그 자리에 서서 저 엉덩이들이 사라질 때까지만 뒷모습을 지켜보고 싶다는 강렬한 욕망에 휩싸였고, 짧은 내적 갈등 끝에 그냥 가던 길을 가기로 결심을 했다. 낯선 사람이 한참을 지켜보고 서 있는 건 아이에게도, 선생님에게도 할 짓이 못 될 게 분명하고, 당장에 운동을 마치고 나온 내 행색이 누구 하나 업어가도 전혀 이상하지 않을 것 같은 도둑놈(?) 비스무리한 올 블랙이기도 했기 때문이다. 아마 그 자리에 서서 아이들을 계속 지켜보고 있었다면 머리 위 CCTV가 나를 유심히 쳐다봤을게 분명하다. 나는 눌러쓴 모자 사이로 게슴츠레하게 지나가는 아이들을 살폈고, 헤벌쭉~한 표정을 지으며 최대한 자연스럽게 곁을 스쳐갔다. 오늘 같은 날은 마스크가 있어 어찌나 다행인지.


  일 년 전쯤, 무슨 바람이 불어 남편에게 한참 옆구리를 찌른 적이 있다. 처음 슬쩍 '셋째 어때?' 하는 말에 남편은 콧방귀를 뀌며 '농담하지 마~'라고 하더니, 두 번째 '애기 보고 싶지 않아?' 하는 우회 공격에는 '보고 싶지~ 근데 셋째는 아냐~' 하며 제법 단호했고, 마지막 세 번째 '더 늦기 전에 셋째 어때?' 했을 때는 '세 번 물었으면 됐다. 적당히 해라~'며 아주 철벽을 쳤다. 쳇! 치사해서 내가 더 안 묻는다!


  셋째를 갖고 싶다는 나의 자그마한 소망에 친정 엄마는 화들짝 놀랐다. 시어머니도 그랬다. 하물며 친구들도 '미쳤다!!'며 나를 뜯어말렸다. 참고로 내 친구들 중 나는 유일한 두 아이맘이다. 그 와중에 유일하게 나를 응원해준 이는 고등학생, 중학생, 초등학생을 키우는 선배맘이었다. 그분은 내게 "뭘 그런 걸 동의를 얻어~ 그냥 덮쳐~"(어머나!!)라는 진심 어린 조언을 해 주었고, 아이를 안 갖는 건 남편의 재량이나, 아이를 갖는 건 엄마 재량이라는 첨언에 나는 눈을 반짝이며 격하게 동의를 했으나...!! 결론부터 말하자면 나는 그 길로 셋째 욕심을 내려놓았다.


  지금도 가끔 남편을 놀리며 '셋째가 있었으면 어땠을까' 하는 가정을 해 본다만, 남편은 여전히 단호박이다. 자기도 자기 인생 살아야 한다나 뭐라나.... 근데, 이건 보통 엄마들 멘트이지 않나?



+

덧붙임...

  막내 동생이 생기면 어떨 것 같으냐에 대한 아이들의 반응

 - 1호: 동생? 있어도 되는데... 일단 2호 먼저 더 키워놓고 낳지 그래? 이왕이면 남자면 좋긴 하겠다.

         (현실형. 2호만으로도 감당이 안 되는 오빠...)

 - 2호: 안돼!! 동생 싫어!!!!!!!

         (감성형. 이 집안의 막내는 나야!!!!!!)




...... 알았어... 그냥 생각만 할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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