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가 수련의 끝맺음을 알리는 고정 멘트가 수련실에 퍼진다. 어두운 조명 사이, 요가 매트 위에 가지런히 누운 송장자세(사바아사나, Shava-asana)는 호흡을 가다듬으며 수련 내 뜨거워진 몸과 근육의 휴식을 부르는 자세다.
주의! 자는 것 아님!
언듯 보기에 대(大) 자로 뻗어 자는 것 같아 보이기도 하고, 실제로 잠이 들어 간혹 코를 고는 경우도 있지만(네... 그 사람이 접니다...), 쉬워 보여도 이게 생각처럼 쉽지가 않다. 요가 선생님의 말씀을 빌리자면, 물구나무도, 까마귀 자세도 어렵긴 하지만, 알고 보면 제일 어려운 자세가 이 사바아사나라는 것이다.
이유인즉슨, 몸을 움직여 자세를 완성시키는 과정 중에는 순간 집중력이 높아져 상대적으로 생각이 들어올 틈이 없지만, 이완 자세는 그렇지 않아서다. 깊이 호흡하며 편안함 속에 머리부터 발끝까지 온몸 구석구석의 이완에 집중해야 하는데, 몸의 휴식을 틈타 잡생각이 끼어들어 자세완성이쉽지 않다. 호흡의 흐름이 생각의 흐름으로 전환되면 신체를 자각하기 어렵고, 불필요한 긴장이 쉽게 일어난다. 이렇게 되면 완전한 이완은 어려워진다.
뒤통수 어딘가에 ON/OFF 스위치가 있었으면 좋겠다는 상상을 평생 동안 해 온 사람으로서, 내게 사바아사나는 이해하기도, 체득하기도 힘든 자세였다. 가만히 눈을 감고 누워있는데 나도 모르게 뒷 목에 뻣뻣하게 힘이 들어가 있다던가, 어깨를 바닥에서 잔뜩 띄우고 있다던가, 손가락 끝에 힘을 주고 있다던가, 혹은 엄지발가락을 치켜들고 있다던가. 선생님의 손길이 긴장된 부분에 닿아 번뜩 정신을 차리지 않으면 불필요한 긴장이라는 게 도무지 없어지지 않는 것이다.
"일부러 부여잡고 있는 거예요."
선생님은 내가 생각을 일부러 부여잡고 있는 거라고 했다. 꽉 쥐고, 놓질 않고 있다고. 생각은 자연스레 들고나가는 것이 아니라, 내가 부르고, 내보내는 것이라고. 지나간 것을 지나가게 두고 있질 않다고.
가만히 누워 눈을 감는다. 이내 익숙한 감상과 정서가 몰려온다. 울분, 억울함, 섭섭함, 외로움, 지침, 서글픔, 그리고 후회들. 가슴이 복받친다. 슬쩍 눈물이 고인다. 뒷 목이 뻣뻣하다. 주먹을 움켜쥔다. 그래 이거구나...
가끔은 내 삶의 주인이 내가 아닌 것처럼 느껴질 때가 있다. 순간의 기분과 정서와 우울이 온통 나를 물들여 버릴 때. 물에 젖어 축 쳐진 이불처럼 무겁고 버거울 때. 영혼이 한없이 침잠할 때. 압도될 때.
하지만 알고 보면 시작의 기분조차 내가 불러들인 것이라는 것. 어느 날 갑자기 들이닥친 바람을 흘러가게 두지 않고 부여잡고 있는 건 다른 누구도 아닌 나라는 것. 익숙한 감정을 반추하고 또 되새기며 원래의 것보다 배가 시키는 것도 나라는 것. 놓지 않는 건 결국 나라는 것.
최근엔 사바아사나가 조금 편안 해졌다. 익숙한 감정들이 머리를 맴돌려하면 후~ 하는 날숨 한 번에 자욱한 연기를 훌쳐버리듯, 깊이 뱉어내는 한 숨에 생각들을 흩어내고 있다. 생각과 감정이 아닌 몸의 움직임에 조금 더 집중한다. 힘겹게 맞이하는 완전한 이완이다.
이미 지나간 일은 지금의 내게 아무런 영향력을 행사하지 못한다. 이미 과거로부터 끝난 일에 의미를 부여하고 되살리는 건 현재의 나이기 때문이다. 부디, 지나간 것은 지나가게 두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