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이 밝았다. 흠씬 두들겨 맞은 듯 온몸이 아프다. 목이 잠겨 소리가 나오지 않았다. 약한 열감이 있는 듯한데, 체온계는 정상체온이라 한다. 출근하는 남편과 눈짓으로 인사를 대신했다. 아이들은 아직 일어나지 않았다. 아이들이 일어나기 전, 자가진단키트로 먼저 검사를 했다.
'음성'
이상하다... 인후통에 근육통까지 있는데... 자가진단키트가 '양성'이 뜨려면 도대체 어느 정도로 아파야 하는 걸까. 신뢰할 수가 없다.
아침식사를 준비하다 보니 둘째가 부스스 일어났다. 다행히 둘째는 아직도 아무런 증상이 없다. 둘째는 확진된 친구 아이와 가장 지근거리에서 빵을 나눠 먹었고, 마주 앉은자리에서 정면으로 친구의 기침을 수 차례 맞았다. 거리상으로 보나, 접촉 강도로 보나, 나나 첫째보다는 훨씬 위험한 게 분명한데. 왜 혼자만 괜찮은 거지? 이것도 이상하다... 혹시, 우리 둘째가 말로만 듣던 슈퍼항체 보균자????
괜스레 눈으로 둘째를 추적해 본다. 크게 하품을 하고 화장실을 다녀온 뒤, 시크한 표정으로 혼자 식탁에 앉아 우적우적 아침을 먹는 여섯 살 아이에게 그 나이에 볼 수 없는 단단함이 느껴진다. 작지만 딱 벌어진 어깨가 그날따라 더욱 늠름했다. 왠지 딸아이라면, 엄마와 오빠가 모두 확진이 되더라도 홀로 살아남을지도 모르겠단 생각이 들었다. 꼭 그렇게 될 것만 같았다.
잠시 뒤, 쿨럭 거리는 기침소리와 함께 첫째가 일어났다.
"엄마... 나 목 아파..."
아... 올 것이 왔다. 첫째는 마른침을 수차례 넘기며 한 손으로 목을 부여잡은 채 말했다. 체온 측정 결과 아직까진 열은 없었다. 아이에게 미지근한 물 한잔을 먹이고 자가진단키트 검사를 실시했다.
'음성'
... 이 검사는 도대체 어느 정도가 돼야 반응을 하는 걸까. 도무지 알 수가 없다.
첫째 아이가 아침을 먹고 있는 동안 나는 서둘러 동네 소아과에 진료 예약을 잡았다. '코로나 의심으로 신속항원검사 요망' 이란 전달 문구와 함께.
"당신은 너무 믿는 대로 봐서 탈이야."
"아니거든?!! 내가 얼마나 논리적인데!!!"
"아닌데... 간혹 보면 믿고 싶으면 그냥 믿어버려. 정신이 몸을 지배한달까..."
스스로 이성적이라 자부하는 나에게 남편은 항상 '감성적'이라는 평을 내놓는다. 상황과 개연성, 논리적 추론을 따르지 않고, 욕구에 따라 충동적으로 선택을 한다는 것이다. 신혼 초 '절대 동의할 수 없음'의 강경노선을 타던 나는 이후 남편의 말에 '부분 동의'로 입장을 선회했다. 그도 그럴 것이, 반박하기 어려운 직접적 증거 앞에 마냥 덮어놓고 우기기를 하거나, 능구렁이처럼 상황을 모면할 능청스러움은 갖추지 못했기 때문이다. 뭐... '인간은 합리적 존재가 아니라, 합리화하는 존재'라는 명제를 들먹여 스스로에 대한 변명을 하자면, 까짓 거 못할 것도 아니긴 하다.
어찌 보면 나는 플라시보 효과가 꽤나 유효한 사람 중 하나다. '자기 암시'의 막강한 효과를 누려보기도 했고, '선택적 합리화'의 유용성이 무엇인지도 알고 있다. 무엇이 되었건, 내 삶에 도움이 되는 방향으로 활용할 수 있다면 나쁠 게 없다는 주의다.
문제는 같은 이유로 노시보 효과(부정적 자기 암시로 인한 결과. 역 플라세보)도 동일하게 작용한다는 점이다. '부정적 자기 암시'와'높은 불안도'로 인한 필요 이상의 긴장상태가 지속된다. 이성적으로는 '예측 상황의 90%는 실제로 발생하지 않는다'는 것을 알고 있음에도 말이다.
믿음형 인간의 한계다.
'믿음' 대부분은 반복된 경험에 따른 확신, 혹은 개인적 인식의 오류에서 비롯되거나, 학습의 결과로 도출된다. 나는 종교를 믿지는 않지만, 인간을 살게 하는 것은 '삶에 대한 믿음'이라고 믿는 사람이다. 그렇지 않다면 어느 날 갑자기 세상에 던져진 이 나약한 인간이 무엇을 믿고 어떻게 살아갈 수 있겠는가. '믿을 수 있는 것'의 존재는 생존과도 관련이 있다. 그것이 진실성이나 합리성과는 무관한 믿음일지라도 말이다. 가까운 미래의 불확실성이 주는 불안을 마주할 용기는 때때로 이 '근거 없는 믿음'에서 비롯되는 것이다.
"결과 모두 음성입니다."
의사 소견이 나왔다. 밀접 접촉과 의심증상이 일부 있으나, 나는 몸살감기, 첫째는 단순 목감기 이상의 의료적 소견이 보이지 않는다는 것이다. 다만 처방받은 약을 먹고도 경과가 좋아지지 않거나, 더 심해지는 경우, 발열이 있는 경우엔 즉시 내원하여 재검을 받을 것을 권고했다.
결과를 듣고 나니 전신을 괴롭히던 근육통이 조금 사그라들었다. 약 없이도 통증이 줄어들다니... 남편의 말이 다시 한번 증명된 것 같아 어쩐지 굴욕적이었다. 하지만 음성이라니, 결과가 좋으면 다 좋았다.
"우리 다 음성이래."
"내 그럴 줄 알았다."
치... 내심 같이 걱정했으면서...
약을 타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 차 안에 아이들이 쫑알쫑알 떠드는 소리가 가득하다. 코로나가 아니라니, 본인들도 얼마나 홀가분할까. 그간 엄마의 유난에도 잘 따라준 아이들이 고맙고 기특하게 느껴졌다. 그리고 역시나, 엄마의 믿음을 저버리지 않은 남매여서 다행이었다.
첫째는 처방받은 약을 먹고 이틀 뒤에 말끔하게 나았다. 나는 그 후로도 사흘가량 몸살 치레를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