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다움 Jul 25. 2022

작지만 강한, 아이(1)

  어째, 시작이 조금 부끄럽다.


  나는 어려서부터 마흔이 다 되어가는 지금까지 단 한 번도 '털팔이' 라는 별명으로부터 자유로운 적이 없었다. 매일 들고 다니는 핸드폰 방탄 커버 모퉁이가 대변하듯, 잘 떨어트리고, 잘 부딪히며, 잘 넘어지는 것이다. 엄마의 무르팍에 보이는 크고 작은 흉터들을 만지작 거리며 둘째 아이가 말했다.


  "우와, 엄마 엄청 많이 넘어졌구나?"


  ... 차마 '너도 엄마 닮아 잘 넘어지잖아.'란 말은 하지 못했다.






  타고난 털팔이가 '엄마'가 된다고 크게 달랐을까.


  남편과 함께 테니스를 배우던 때의 일이다. 테니스 레슨 2개월 차에 접어들어 라켓 휘두르는 맛을 들여 한참 재미를 붙이던 , 어느 날은 코치로부터 단단히 지적을 받았다. '몸이 무겁다.'는 것이다. 딴에 지적받는 건 또 싫어서 이를 악물고 열심히 코트를 뛰어다녔더랬다. 제자리서 뛰고, 달려가서 뛰고, 공 쫓아다니며 또 뛰고. 그땐 몰랐다. 내가 임신을 했다는 걸.


  세상에 사람이 둔해도 이렇게나 둔할 수 있나. 뒤늦게 병원에서 임신 사실을 확인하고, 나는 몹시도 당황했다. 임신인 줄도 모르고 그렇게 기를 쓰고 뛰어다녔으니. 이 콩알만 한 작은 아이는 엄마 뱃속 한 모퉁이를 부여잡고 얼마나 고군분투를 했을지. 그날 나는 한 손엔 초음파 사진을 들고, 다른 한 손을 배에 올려둔 채 몇 번이고 아이에게 사과를 했다. 그리고 잘 붙어있어 줘서 고맙다는 말도 잊지 않았다.


  갑자기 찾아온 첫째와 달리 둘째는 계획적으로 갖기로 마음먹었다. 딱 두 살 터울로 나름 꼼꼼하게 준비를 했는데... 짝꿍이 영 협조적이지 않았다. 그 무렵 나는 남편과의 다툼이 잦았다. 큰 아이를 재우고 거실에서 자체 음소거 상태로 싸우는 날들이 지속됐다. 몇 날 며칠을 싸우다 보니 둘째 생각이 싹 사라졌다. 결국 임신을 준비하며 먹던 영양제를 모두 갖다 버리며 '둘째를 갖지 않겠노라.' 선언하고 말았다.


   그 뒤로 나는 여러 밤을 친구들과의 술자리로 보냈다. 물론 술안주는 남편이었다. 울고불고 화내고 마시고, 또 열 내고 마시고 씩씩거리길 반복했다. 그러던 어느 날, 큰 아이 점심을 준비하기 위해 냉장고 문을 열다 참을 수 없는 심한 구역질이 올라왔다. 느낌이 싸늘했다. 그날 오후, 나는 임신테스트기의 선명한 두 줄을 확인했다.



  그렇게, 어쩌다 보니 조심성 없는 엄마에게 찾아온 우리 집 두 아이는 시작부터 조금 달랐던 것 같다. 덕분에 내겐 근거 없는 믿음 하나가 생겼는데, 바로 아이들의 강인함에 대한 것이다.


  그렇다. 이 작은 아이들은 언뜻 보면 여린 듯 하지만, 나름의 강인함을 타고났다.


  그리고 난 아이들의 강인함을 믿어 의심치 않는다.


 




  지난 일요일 저녁. 큰 아이의 친구 엄마로부터 급한 전화가 왔다. 아이가 코로나19에 확진이 됐다는 것이다. 아뿔싸.


  친구 엄마는 유달리 조심성이 많았다. 코로나가 횡횡한 이후, 야외에서의 약속 이외에는 아무런 약속도 잡지 않던 엄마였다. 하지만 더워진 날씨에 더 이상 바깥놀이를 할 수 없게 되자, 아이가 보채기도 하고, 또 오랜만에 엄마들끼리 티타임도 즐겨보고 싶었던 지라, 큰맘 먹고 블럭방 행을 결정했던 것이었다. 그날 오후 내내 아이들은 블럭방에서 함께 놀았다. 그리고 인근 베이커리 카페에서 음료를 나눠먹고 같은 접시로 빵도 나눠 먹었다. 카페 한편에 마련된 놀이방에서 부둥켜안고 잡기 놀이도 했다. 그때까지만 해도 나도, 친구 엄마도 아이의 기침을 대수롭지 않게 여겼던 것이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저녁 무렵 열이 오르기 시작한 친구 아이는 결국 코로나 확진이 됐다.


  "미안해서 어떡하지... 애들 괜찮은지 잘 살펴봐..."

  "어쩔 수 없죠. 잘 지켜볼게요. 아이가 너무 힘들지 않아야 할 텐데 걱정이네요. 언니도 조심해요."


  전화를 끊고 두근거리는 심정을 애써 진정시키며 아이들을 불렀다.


  "친구가 코로나 확진이 됐다네. 너희도 혹시나 목이 따갑거나, 머리가 어지럽거나 하며 엄마한테 바로 얘기해야 해. 꼭!!!"


  아이들에게 몇 번을 다짐을 받았다. 그날 저녁까지 아이들 컨디션은 변화가 없었다.


  이대로 계속 괜찮기만을 바랬다.




매거진의 이전글 엄마와 한강커피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