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눈이 그렁그렁하더니 결국 눈물이 터져 나왔다. 까만 구슬 같은 눈에서 터져 나온 눈물에 둘째의 얼굴은 순식간에 눈물범벅이 됐다. 둘째는 그 뒤로 한참을 울었다.
알록달록 총천연색으로 뒤덮인 고양이 책을 찾으며...
도서관 1층에 설치된 어린이 자료실은 동네 어린이들에게 인기 만점이다. 자료실 한 편에 마련된 놀이 코너에는 종이접기 도안으로 가득 찬 클리어 파일과 결코 바닥을 보이지 않는 색종이 통, 가지런히 깎인 색연필, 도서관 색칠 엽서가 비치되어 있다. 아이들은 책을 읽다 놀이 코너에서 종이접기를 하기도 하고, 색칠놀이를 하기도 한다. 색칠 엽서 뒷면에 있는 간단한 독후활동을 하기 위해 책 한 권을 손에 들고 오는 아이도 적지 않다. 정성 들여 엽서 앞뒷면을 완성하면, 작은 새 한 마리가 올라간 예쁜 우체통에 고이 넣는다. 그렇게 몇 주가 지나면 자그마한 액자에 전시된 나의 엽서를 발견할 수 있는 것이다. 이 작은 공간 덕분에 우리 아이들은 늘 도서관을 즐겁게 이용하고 있다.
오늘은 어쩐 일로 둘째가 놀이코너를 지나 곧장 유아 자료실로 달려갔다.
"엄마! 전에 봤던 고양이 책 찾아야 해!"
이 고양이 책으로 말하자면,
온갖 종류의 알록달록한 고양이가 나타나 갸우뚱하며 '나는 고양이'라는 하나의 대사를 하고 지나치는 단순한 그림책이다. 아이의 연령과 수준을 고려했을 때 맞지 않기도 하고, 딱히 인상적인 부분도 없어 무심코 지나쳤는데, 아이는 아니었나 보다. 둘째는 내내 그 고양이 책을 염두에 두고 있었던 것이다.
유아 자료실로 달려갔던 아이는 금방 고양이 책을 찾아왔다. 그리곤 내 손을 끌고 놀이 코너로 가서 삐뚤빼뚤한 글자로 정성껏 엽서를 완성했다. 커다란 눈망울의 갸우뚱 고양이 그림과 함께. 아이는 뿌듯한 마음으로 엽서를 우체통에 넣고, 대출하기 위해 쌓아 둔 책 더미 위에 고양이 책을 툭 올려놓았다. 그리곤 다시 유아 자료실로 총총총 달려갔다.
고백 건데, 이건 분명 내 실수고 잘못이다.
첫째는, 돌아서면 잊어버리는 둘째의 호기심을 너무 가볍게 취급한 것이고,
둘째는, 책을 보는 아이의 안목을 무시한 것이며,
가장 큰 실수는, 고양이 책을 펼치며 반짝이던 아이의 눈빛을 간과한 것이다.
나는 아이의 뒤통수가 사라지고, 고양이 책을 슬그머니 정리 책장에 꽂아 넣었던 것이다.
돌이켜보건대, 첫째를 혼자 키울 때는 아이의 시선 하나하나에 눈을 맞췄다. 책을 읽다 아이가 책 모퉁이에 그려진 작은 그림에 꽂히면, 10분이고 30분이고 책장을 넘기지 않고 같이 지켜봐 줬다. 이야기 내용과 관련이 없어도, 아이의 호기심과 관찰력을 존중해주려 부단히 애를 썼다. 그렇게 책 한 장 한 장을 깊이 읽은 아이는 책의 장면과 내용을 통으로 이해했다. 떠듬떠듬 말을 시작한 3살 무렵. 아이는 좋아하던 책 한 권을 통으로 외웠다. 한 장 한 장 그림을 보며, 엄마가 읽어준 방식 그대로.
둘째란 참으로 서러운 존재다. 세상에 나고 보니 엄마가 챙기는 다른 형제가 있고, 아무리 울어도 엄마가 자신만을 보며 발 빠르게 대처해 주지 않는다. 자신에게만 온전히 집중해 주는 엄마를 겪지 못했고, 엄마의 눈 맞춤도 오빠와 나눠야 했다. 글자와 이야기보단 그림과 알록달록한 색상에 집중하던 아이였다. 하지만 나는 한 번도 아이의 책 읽기를 기다려 주지 못했다. 둘째의 책을 빨리 읽어주고, 첫째의 책도 읽어 줘야 했기 때문이다. 분량도 많고 재미도 없는 오빠의 책이 끝나길 기다리느라, 늘 지치고 지루해하던 둘째였다.
한 가지를 더 고백하자면, 나는 둘째 아이만큼 색에 민감하지 못한 엄마다. 알록달록한 그림책보다는 재밌는 이야기의 동화책을 선호해서 첫째의 책 취향과 잘 맞다. 둘째의 책 세계는 무지갯빛 총천연색인데 반해, 엄마는 차디찬 회백색의 세계를 가지고 있다. 은연중에 나는, 둘째 아이의 책 세계를 묵살해 버렸는지도 모른다. 엄마와 오빠의 책을 함께 보길 강요하면서.
둘째는 원망 섞인 눈으로 눈물을 멈추지 않았다. 아이의 갑작스러운 눈물에 나는 몹시 당황할 수밖에 없었다. 늘 엄마의 실수도, 잘못도 너그럽게 이해해 주던 아이가 책 한 권에 이토록 원망을 할 줄은 꿈에도 몰랐던 것이다. 나는 황급히 아이에게 최대한 진심이 전해지도록 사과를 했다.
"엄마가 미안해. 너한테 그 정도로 소중한 줄 몰랐어."
아이는 엄마의 사과를 듣고도 끅끅거리며 눈물을 주체하지 못했다. 도서관이 문을 열자마자 책을 빌려오겠노라고, 내일 아침에 같이 가자고 해도 소용이 없었다. 집에 있는 다른 고양이 책을 급히 찾아 줘도 막무가내였다. 아이는 그 책이 아니면 안 된다고, 여섯 살 인생 처음으로 그렇게나 서럽게 눈물을 쏟아냈던 것이다.
결국 나는 둘째 아이를 안고 등을 토닥이며 말했다.
"빌리지 말고 사자. 쭈가 집에서 계속 볼 수 있게 책 사자. 그러니까 진정하고 뚝. 너무 울면 머리 아파."
"... 응... 알았어 엄마. 꼭 사줘야 돼."
아이는 그제야 눈물을 멈췄다. 나는 진정이 될 때까지 아이를 품에서 놓지 않았다. 알아주지 못한 미안함에, 그 애처로움에 아이를 안고 또 안았다. 하마터면 아이와 함께 울뻔했다.
둘째는 퉁퉁 부운 눈으로, 좋아하던 공주 책 한 권을 읽고 잠이 들었다. 잠든 아이의 눈을 보며 다시금 코 끝이 찡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