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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WHATEVER Feb 09. 2021

몸의 실력

몸.이라는 단어 뒤에- 붙박이장처럼 붙어있는 단어가 있다. ‘관리’라는 단어다. 몸보다 중요한 건 없다는 말과 함께 늘 따라붙는 단어. ‘관리.’ 나에게도 언젠가는 삶으로 흡수해야 하는 숙제 같은 단어이지만 그러지 못했다. 닥친 일들이 급해서, 먹어보고 싶고, 해보고 싶은 것들이 많아서- 숙제는 늘 다음 일이었다.


하지만, 그럴 수 없게 됐다. 왼쪽 눈에는 백내장이 왔고, 병원에서는 당뇨가 의심된다고 했다. 몸 관리는 당장 풀어야 하는 숙제가 돼버렸다. 이제는 ‘회복’이라는 단어가 더 어울릴 만큼 빨리 해결해야 하는 상황이 되어 버렸다. 몸이 보내는 경고들 앞에 더 이상 미룰 수는 없는 그런 상황.


그런데, 어디서부터, 무엇을, 어떻게 시작해야 하는지 도저히 모르겠다. 그냥 몸에 해로워 보이는 것들은 죄다 피하면 되는 것인지, 지금 당장 문을 박차고 나가 숨이 차오를 때까지 뛰면 되는 건지- 잘 모르겠다. 병원에서 하라는 대로 하면 되겠지만, 그것뿐은 아닐 것 같다. 의사는 늘 현상에만 집중하니까. 내가 왜 이렇게 됐고, 앞으로 어떻게 될지는 쉽게 이야기해주지 않으니까.


고민을 거듭하다가, 일단은 ‘관리’라는 단어로 되돌아 가보기로 했다. (직업병이라면 직업병일 수 있겠다. 앞으로 펼쳐질 나의 삶과 행동들을 어떤 단어로 규정하고 싶었다.) 병에 걸렸음에도 풀기 싫은 숙제 같은 단어, ‘관리’를 머릿속에서 지워버려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떠오른 단어는 ‘실력’이었다.


내 분야에서 실력을 키운다는 명목 아래, 실력 있다는 소리 듣고 싶다는 욕망 아래 나는 나의 몸을 방치해왔다. 잠은 마음에 드는 결과물이 나올 때까지 미뤘고, 스트레스를 받으면 기름진 음식들을 위장에 투하시켰다. 그렇게 조금의 실력을 얻어갈 동안, 건강은 잃어갔다. 그래서 ‘실력’이라는 단어를 붙여 보기로 했다. 일의 실력을 키우듯, 이제는 몸의 실력도 키워보자고.


건강이라는 상태를 유지하기 위해 (혹은 회복하기 위해) 루틴 한 삶을 반복한다기보다- 실력을 키우기 위해 이곳저곳의 근육을 갈고닦는다는 생각. 누군가에겐 말 몇 마디 바꾼 유치한 생각일 수도 있겠지만, 실력이라는 단어에 늘 목말라있던 나에겐 없던 도전의식마저 생기게 하는 단어였다.  



10년이 넘는 시간 동안 한 분야에서, 한 직장에서 일했다. 얼마나 실력이 늘었는지는 잘 모르겠지만 적어도 이 일을 처음 시작했을 때보다는 많은 것들이 편해졌고, 자신 있어졌다. 일을 맡는 것이 두렵지 않게 됐고, 함께 일하는 사람들과도 불편함 없이 일할 수 있게 됐다. 또 다른 10년 후를 꿈꿔본다. 몸의 실력이 늘어난 또 다른 나의 모습. 몸의 곳곳엔 근력이 생기고, 얼굴엔 활력이 돌아온 내 모습. 지금과는 다른 실력으로 삶을 이어가는 다른 몸을 상상해 본다. 10년 후면, 40대 중반을 넘어 50으로 향하는 나이이지만 몸 하나만큼은 누구에게나 자신 있게 내보일 수 있는 실력 있는 몸. 이제는 그런 실력을 탐해봐야겠다.


몸의 실력을 쌓는 삶으로-

삶의 축을 이동시키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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