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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WHATEVER Oct 05. 2022

나랑 안 맞아

언젠가부터, 여기저기서 이런 말을 자주 듣는다. “이놈에 회사… 나랑 안 맞아.” “아 우리 사장님은 정말 나랑 안 맞아.” “왜 그만두냐고요? 그냥 저랑 안 맞아서요.” 그래서인지 모르겠지만, 나도 이런 말을 자주 하게 된다. 10여 년이 넘게 광고 카피 쓰는 일을 하다가 팀장으로 일하게 되었을 때, 그래서 카피 쓰는 일보다 더 많은 일들을 챙기고 더 많은 사람들을 만나게 되었을 때, 이런 말을 자주 하게 됐다. ‘팀장이란 자리는 정말 나랑 안 맞아.’ ‘그 사람은 정말 나랑 안 맞아.’라는 말을 어느 때보다 자주 하게 됐다. 그리고, 상대적으로 나와 맞는 일이 무엇인지를 들먹이게 됐다. ‘차라리 혼자 카피 쓸 때가 제일 행복한 것 같아’라는 말처럼.


그런데 문득, 10여 년 전에도 같은 말을 했던 기억이 떠올랐다. ‘광고가 나랑 맞을까?’ ‘카피 쓰는 일이 나랑 맞는 일일까?’와 같이 스스로에게 몇 번이고 물었던 말들. 지금은 차라리(?) 행복한 일이 되어버린 일이었지만, 일을 처음 시작했을 땐 세상 무엇보다 어려운 일이었다. 회의를 하기 전날엔 밤잠을 설칠 정도로 끙끙대며 카피를 썼던 기억들도 떠올랐다. 하지만, ‘잘 쓰고 싶다’라는 욕심 하나로 버티고 또 버텼다. 그렇게 버티다 보니 카피 쓰는 일은 익숙한 일이 되었다. 물론, 여전히 카피를 잘 쓰는지는 모르지만, 약간의 노하우와 대응력 등은 생긴 것 같다. 끙끙대는 시간이 줄었고, 클라이언트가 어떻게 반응할 지에 대한 예지력(?) 같은 것도 조금은 생겼다. 



그래서 다시 정리해보게 됐다. 이 일이 진짜 나랑 안 맞는 일인지. 아니면 아직 익숙하지 않은 일인지. 어떤 일이든 처음 할 땐 익숙하지가 않다. 처음부터 익숙하고 능숙하게 잘 해내는 일도 있겠지만, 대부분의 일들이 처음엔 서툴고 낯설 때가 많다. 그것을 ‘나와 맞지 않는 일’로 너무 쉽게 단정 지어 버리는 건 아닌지. 그렇다면, 모든 일이 처음엔 익숙하지 않다면, 진짜 ‘나와 맞는 일’은 무엇일까. 익숙하지 않더라도 ‘잘하고 싶은 마음’이 지워지지 않으면, 그 일이야말로- ‘나와 맞는 일’ 아닐까?  


광고회사에 들어가 카피를 쓰기 전까진, 글쓰기에 나름 자신이 있었다. 하지만 회사에 입사해 카피를 쓰고, 선배들과 회의를 하고 나니 두려움이 생겼다. 백지는 광활해 보였고, 회의실에 들어가는 것이 불 꺼진 폐교를 들어가는 것보다 두려웠다. 하지만, 잘 쓰고 싶은 마음은 지워지지 않았다. 두려움이 커질수록 욕심도 커져만 갔다. 두려움을 뛰어넘고 싶다는 마음. 그 마음 덕분에 오랫동안 이 일을 할 수 있었던 것 같다. 



팀장이 된 지금도 같은 생각을 한다. ‘나는 카피 쓰고 아이디어 내는 일이 잘 맞지, 사람 만나고 설득하는 일은 잘 안 맞아.’라는 말을 수백 번은 더 한 것 같다. 그렇게 나와 맞는 일과 나랑 맞지 않는 일을 나누던 날들이 조금은 부끄럽게 느껴진다. 나에게 익숙한 일과 익숙하지 않은 일을 단순 비교해서 더 맞는 일에 집착하는 것이 나의 가능성을 제한하는 일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이 일도 언젠가는 익숙해질 거라는 생각이 든다. 광고주를 만나고, 그들 앞에서 피티를 하는 일이 때로는 두렵고 떨리기도 하지만, 이 일 역시 ‘잘하고 싶다’라는 마음이 드니까. 회의실과 편집실 등에서 출산의 고통을 느끼며 만들어 낸 아이디어들이 세상으로 나오려면 꼭 필요한 과정들이니까. 그 과정들이 생각보다 지난하지만 그래도 잘 해내고 싶은 마음이 드니까. 


‘나랑 안 맞아.’라는 말을 하기 전에 한 번쯤은 생각해 봐야겠다. 이 일이 아직 익숙하지 않은 일은 아닌지. 익숙하지 않지만, 잘하고 싶은 일은 아닌지. 그 일을 잘하게 되었을 때 내 모습을 생각하면, 지금의 고통을 감내할 수 있지는 않은지. 이런 것들을 먼저 생각해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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