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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WHATEVER Oct 07. 2022

말이 많으면

“말이 많으면 허물을 면키 어려우나” _ 잠언 10장 19절


나는 오랫동안 이 말을 가슴에 새겨왔다. 그렇다고 말을 적게 한 것은 아니다. 마음에 맞는 사람들과 대화를 나누는 것을 좋아했다. 하지만, 말을 많이 내뱉은 날일 수록 후회되는 말들도 많았다. 누군가에 대한 비판은 쉬웠고, 옹호와 이해는 어려웠기에- 나의 말들엔 후회가 뒤 따르는 날들이 많았다. 그래서, 상대방의 말에 호응하는 말, 이야기를 더 이끌어내기 위한 기대와 질문의 말들을 더 많이 해보기로 했다. 관심을 끌기 위한 말보다 관심을 기울이는 적은 말들로 대화를 채웠다. 그런 자리는 상대적으로 후회가 적었고, 누군가의 이야기를 주의 깊게 들어줬다는 뿌듯함도 남았다. 



이렇듯, 말을 적게 하는 것이 좀 더 좋다는 신념 아래 살아왔지만, 그것이 결코 유효하지 않은 자리도 있었다. 그것은 ‘회의실 안’이었다. 회의실 밖에서는 말이 적을수록 좋지만, 회의실 안에서 만큼은 말이 많을수록 좋다는 것이 나의 신념이다. 회의실에서 말이 많으면 정신이 없고, 정리도 잘 되지 않느냐고 반문할 수도 있겠다. 하지만 나는 회의 참석 인원을 논하고 싶은 것이 아니다. 회의에 참석한 사람이라면 ‘말’을 내뱉고 것과, 그것에 반응하는 ‘말’을 하는 것이 의무라고 생각한다. 회의의 목적 자체가 새로운 아이디어를 꺼내고, 그것의 유효성을 점검하며, 결국 가야 할 길을 결정하는 자리이기 때문이다. 회의는 한 사람이 아이디어를 공표하고, 계획을 전달하는 자리가 아니다. 


“의논이 없으면 경영이 파하고 모사가 많으면 경영이 성립하느니라” _ 잠언 15장 22절


같은 잠언에 이런 말도 있다. 함께 공동의 목표를 향해 나아가는 자리에선 의논과 생각의 공유가 반드시 필요하다. 그것이 더 좋은 결과를 만든다. 직급이 낮고 경험이 적더라도, 그 사람의 관점과 생각이 필요할 때가 많다. 회의의 리더는 아니지만 직급이 높고 경험이 많다면, 더 날카롭게 의견을 제시하고 반론을 제기해야 한다. 새로움에 새로움이 더해지고, 새로움이 점검으로 보완되는 과정이 꼼꼼하게 이어질수록 결과물의 완성도는 더 올라가기 때문이다. 물론, 이 모든 과정에서 유효한 말들을 수집하고, 융합하여, 가장 좋은 길을 택하는 것은 리더의 몫이다. 하지만, 아무리 좋은 리더에게도 좋은 자원이 없고, 요리할 소스가 없다면 좋은 결과물이 나오긴 어렵다. 회의실에서 말은 없는 것보다 많으면 많을수록 좋다. 



회의실에서 말이 많아지려면 경청도 중요하다. 직급이 낮을수록 말에 대한 두려움이 있다. 내 말이 수용될 수 있을까? 선배와 팀장이 혹여나 내 말을 비웃거나 무시하진 않을까 하는 두려움. 말이 많은 회의가 되려면 어떤 말들도 수용될 수 있을 것이라는 안정감이 있어야 한다. 행여나 그 말이 회의에 도움이 되고 결정을 하는데 좋은 역할을 하는 말이 아니더라도, 인정받고 존중받는 분위기가 만들어져야만 한다. 방향에 맞지 않는 말이라도, 조금은 엉뚱한 발상이 스민 말이라도, 그 말을 존중하고 인정해주는 말 또한 많아져야만 한다. 


"좋은 생각이다. 방금 말 한 건, 이런이런 프로젝트에서 한 번 써보면 좋겠다. 다만, 지금은 이런 아이디어가 필요할 것 같다."라든지, "클라이언트(혹은 상사)의 요구사항만 아니라면 정말 신선한 아이디어인 것 같다. 다음에 꼭 다시 얘기해달라"와 같이 그 말 자체를 인정해주는 분위기는 그 사람에게 진짜 필요한 말을 이끌어내는 발판을 만들어준다. 이 팀의 회의실에선 어떤 말이든 괜찮구나.라는 안정감이 회의실을 말로 채우는 분위기를 만든다. 매트가 있어야 과감하게 점프할 수 있는 것처럼. 회의실에 말에 대한 안정감이 없을 때 리더는 이런 말을 하게 된다. “각자 의견들 자유롭게 이야기해봐.” 자유롭게 이야기하라고 하지만, 결코 자유롭지 않은 분위기다. 말이 자유롭게 나오지 않는 분위기는 어떤 말이든 존중해줄 수 있다는 분위기가 없는 이상 결코 사라지지 않는다. 


함께 달려가야 할 골인 지점이 없을 때, 말은 어느 방향으로 달려갈지 모른다. 그래서 회의실 밖에서 말은 늘 다루기 쉽지 않다. 자리에 없는 누군가를 깎아내리는 말이 될 수도 있고, 상대방의 가슴에 상처를 남기는 말이 될 수도 있다. 하지만 함께 달려가야 할 골인 지점이 있을 때만큼은 모든 말들이 거침없이 달려가야 한다. 살짝 부딪치는 일이 있더라도 포기하지 않아야 한다. 지금은 달려도 좋다는 안정감을 갖고, 함께 달려가야 한다. 


회의실 밖에선 말이 많으면 허물을 면키 어렵지만, 회의실 안에선 말이 많으면 많을 수록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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