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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WHATEVER Jan 11. 2023

나를 좋아하는지 알아보는 능력


사람에겐 태어날 때부터, 자신을 좋아하는지를 알아보는 능력이 있다. 아이를 키우다 보면 분명해진다. 아이들은 자신에게 마음과 정성을 주는 어른들을 귀신같이 구분해 낸다. 꼭 엄마, 아빠가 아니라도 안기고 예쁜 미소를 지어준다. 아빠의 퇴근길, 비밀번호 누르는 소리만 들려도 아이들은 전속력으로 달려온다. 어떤 비유가 아닌, 말 그대로 그들의 전속력. 아빠는 우리를 꼭 안아줄 거라는 백 퍼센트의 믿음이 있기 때문에, 아빠가 어떤 상황에서도 자신들을 따뜻하게 품어줄 거라는 확신이 있기 때문에, 한치의 망설임도 없이 달려오는 거다. 


이 능력은 어른이 되어도 없어지지 않는다. 짧게는 3주, 길게는 한 달이 넘는 기간 동안 피티팩을 만들어, 광고주 앞에 간다. 피티장의 공기는 늘 그렇지만, 싸늘하다 못해 뾰족하기까지 하다. ‘어디 얼마나 잘하나 보자.’라는 마음을 갖고 앉아 있는 사람들 앞에서 무언가를 자신 있게 이야기하고 설득하는 건 참 어려운 일이다. 그런 공기 속에서 숨이라도 쉬면서 피티를 하기 위해 찾은 방법이 하나 있다. 조금이라도 고개를 끄덕이며, 내가 하는 말에 일말의 동의를 보내는 누군가를 찾아내는 일이다. 


다행히도, 내가 들어갔던 피티장마다 한 명씩은 꼭 있었다. 피티를 듣는 모든 청중을 두루 살피며 이야기를 하지만, 나는 그가 최종 결정권자인 것처럼, 가장 많은 시선과 관심을 보내며 피티를 한다. 동의해 주는 사람이 있다는 사실 하나만으로 입에 힘이 붙고 여유가 생긴다. 아이들처럼 전속력으로 달려가진 못하지만, 나의 말을 받아주는 누군가를 향해, 준비한 말들에 확신과 애정을 실려 보낸다. 피티장의 공기는 결코 따뜻해지지 않지만, 그래도 끝까지 피티를 완주할 수 있는 작은 힘이 된다. 



회사로 돌아와서, 누군가의 보고와 제안을 받을 일이 생긴다. 내가 원하는 그림과 생각이 아닐 수도 있다. 하지만, 그 자리가 피티 자리는 아니다. 일 할 사람을 선택하는 자리는 아니라는 의미다. 나와 이미 일하게 된 사람이 내는 아이디어와 제안을 듣고 보게 되는 자리다. 이런 상황에서 피티장처럼 공기를 차갑게 만들 이유는 조금도 없다. 나는 그들에게 ‘받아들여질 수 있는 확신’를 주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지금은 조금 부족하고, 이번엔 방향이 잘못되었더라도, 언제든 받아들여질 수 있다는 확신. 맞고, 안 맞고를 떠나서, 좋고 안 좋고를 떠나서, 그간의 수고를 충분히 인정하고 고마워하며, 명확한 다음을 제시하는 일. 그것이 그들에게 더 큰 힘이 되고, 더 좋은 결과를 만드는 원동력이 된다.


나에게 전속력을 향해 달려오는 아이들을 보며, 또 고개를 끄덕여주는 청자를 보고 힘을 내는 나를 보며, 나는 누군가의 능력을 끌어올리는 일이 꼭 어려운 일만은 아니라는 생각이 든다. '꼭 화를 내야...'와 같이 꼭 나쁜 방향으로 흐를 필요 역시 없다고 생각한다. 태어날 때부터 탑재된 ‘나를 좋아하는지 알아보는 능력’을 인지하고, 함께 하게 된 사람을 좋아하고 계속 믿어주는 것. 그것이 그 사람의 능력을 끌어올리는 가장 좋은 방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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