탈진실 시대, 마케터가 배워야 할 '다중 내러티브 전략'
우디 해럴슨 배우를 좋아합니다.
제게 좋아하는 배우를 물어보신다면, 저는 그 리스트에 분명히 우디 해럴슨 배우를 포함했을 것입니다. 실제 그의 필모 대부분의 영화를 관람하였고 아무리 형편없는 영화도 그의 연기를 보기 위해 찾아볼 정도입니다.
불우한 가정에서 자라 사회에 대한 반항심과 증오심이 가득한 광기 어린 미키(올리버 스톤의 킬러 Natural Born Killers)로 그를 처음 만났고, 소년 같은 장난기와 츤데레의 정석을 보여주는 심드렁한 역사 선생님 브루너(지랄발광 17세 The Edge of Seventeen)를 보면서 그의 가치를 느꼈으며, 내면의 갈등을 담담하게 보여준 윌러비 경찰서장(쓰리 빌보드 Three Billboards Outside Ebbing, Missouri)에겐 감동을 느꼈습니다.
그러던 중, 우디 해럴슨의 신작이 OTT(쿠팡 플레이)에 공개된 것을 알게 되었죠. 바로 오늘 소개드릴 <라스트 브레스>입니다.
2012년 9월 북해 해저 약 90미터, 심해 잠수부 크리스 레먼스(핀 콜)는 악천후에도 불구하고 가스관 수리 작업 중이었습니다. 작업을 위해 자동 위치 고정 중인 모선이 시스템 고장으로 움직이면서 급하게 복귀 중, 그의 생명줄인 케이블이 끊어졌습니다. 지상과의 연결이 끊기고, 산소 공급이 중단되었습니다. 등에 매고 있던 비상 산소통에는 약 10분 치 공기만 남아 있었습니다.
차갑고 어두운 북해 바닷속. 그는 홀로 남겨졌습니다. 수면의 동료들—베테랑 던컨(우디 해럴슨)과 냉철한 데이브(시무 리우)—은 포기하지 않고 거친 폭풍이 몰아치는 가운데 그를 구조하기 위해 최선을 다하게 됩니다. 이 영화는 평범한 사람들이 보여준 비범한 생존과 헌신의 실화입니다.
해저 약 90미터. 산소가 10분밖에 남지 않은 상황에서 29분을 버텨낸 잠수부 크리스 레먼스의 이야기는 2012년 9월 18일, 스코틀랜드 북해의 해저 유전 시설에서 실제로 일어난 일입니다.
알렉스 파킨슨(Alex Parkinson) 감독은 2019년 이 실화를 다큐멘터리 <Last Breath>(2019)로 세상에 알렸습니다. 실제 사고 당시 영상, 생존자와 구조팀의 인터뷰, 당시 녹음된 무전 교신을 바탕으로 재구성한 이 다큐멘터리는 넷플릭스를 통해 공개되어 전 세계 관객들에게 충격을 안겼습니다.
그리고 6년 후인 2025년 2월, 그는 우디 해럴슨(Woody Harrelson)과 시무 리우(Simu Liu)가 출연하는 영화 <Last Breath>(2025)로 같은 이야기를 다시 만들었습니다. 우디 해럴슨은 구조 작전을 진두지휘하는 베테랑 잠수 감독 역을, 핀콜(Finn Cole)은 사고 당사자인 크리스 레먼스 역을 맡았습니다.
그런데, 같은 감독이, 같은 실화를, 왜 두 번 만들었을까요?
Focus Features와의 인터뷰에서 파킨슨은 이렇게 답했습니다.
"다큐멘터리는 이야기를 매우 상세하게 재현했지만, 다룰 수 없었던 부분들이 있었습니다. 극영화에서는 캐릭터의 감정적 깊이를 더 완전하게 탐구할 수 있었죠. 관객이 그 놀라운 사건과 감정 상태를 직접 '경험'할 수 있도록 말입니다."
다큐멘터리가 "무슨 일이 일어났는가"를 전달했다면, 극영화는 "그게 어떤 느낌이었는가"를 체험하게 만들었습니다. 같은 진실, 다른 언어. 이것은 단순히 장르 실험이 아니었습니다. 하나의 진실을 다양한 방식으로 전달할 수 있다는 증명이었고, 탈진실 시대를 살아가는 마케터에게 중요한 질문을 던집니다.
"당신의 브랜드는 몇 개의 언어로 말하고 있습니까?"
파킨슨 감독은 TheWrap과의 인터뷰에서 자신을 "좌절한 극영화 감독"이라고 표현했습니다. 그는 다큐멘터리를 만들면서도 계속 영화적 기법을 실험했고, 결국 극영화로 넘어왔습니다. 흥미로운 건 그 과정입니다.
"다큐멘터리에는 토킹 헤드 인터뷰(카메라를 정면으로 바라보며 이야기하는 사람의 상반신이나 얼굴을 중심으로 촬영한 인터뷰 형식), 극적 재구성, 아카이브 자료라는 표준 도구가 있습니다. 하지만 극영화로 옮기면서, 저는 감정적 측면과 체험적 측면을 훨씬 더 증폭시키고 싶었어요."
다큐멘터리 <Last Breath>(2019)는 84분 동안 실제 사고 당시의 무전 교신, 헬멧 카메라 영상, 생존자 크리스 레먼스와 그의 동료들의 증언을 교차 편집했습니다. 관객은 "이 일이 정말 일어났구나"라는 확신을 얻습니다.
반면 극영화 <Last Breath>(2025)는 같은 사건을 우디 해럴슨과 시무 리우라는 스타 배우를 통해 재현합니다. 해저의 고립감, 산소가 떨어지는 공포, 지상에서 필사적으로 구조 작전을 펼치는 팀의 긴장감을 클로즈업과 사운드 디자인으로 증폭시킵니다. 관객은 "내가 그 순간에 있었다면"이라는 몰입을 경험합니다.
정리하면, 다큐멘터리는 신뢰와 증명의 언어입니다. 사실 기반, 전문가 증언, 검증 가능한 데이터로 "이건 진짜 일어난 일이야"라는 권위를 만듭니다. 반면 극영화는 공감과 몰입의 언어입니다. 감정선, 캐릭터 여정, 체험적 서사로 "너도 그 순간에 있었던 것처럼 느껴봐"라는 공감을 만듭니다.
넷플릭스 다큐시리즈 < F1 본능의 질주 Formula 1: Drive to Survive>는 유사하지만 한 편에 두 가지 내러티브를 담았습니다. 다큐멘터리 형식으로 실제 레이스 장면, 팀 간 갈등, 드라이버의 감정이 모두 실제로 일어난 일로 담았습니다. 동시에 극영화적 편집도 활용했습니다. 극적 긴장감, 캐릭터 아크, 시즌별 내러티브 구조를 마치 드라마처럼 편집했습니다.
Toast Studio는 이를 "궁극의 브랜디드 콘텐츠"라고 평가했습니다. 왜일까요? 명확한 목표(새로운 관객 도달), 사실 기반(실제 레이스), 감정적 몰입(드라마틱 편집)이 모두 갖춰졌기 때문입니다.
결과는 놀라웠습니다. 미국 내 F1 시청자 수는 2018년 55만 명에서 2022년 140만 명으로 증가했습니다. 특히 18-34세 여성 팬이 급증했는데, 이는 <Drive to Survive>가 기술과 속도(다큐멘터리)뿐 아니라 인간 드라마(극영화)를 보여줬기 때문입니다.
파킨슨 감독의 전략과 정확히 일치합니다. F1은 사실을 숨기지 않았지만(다큐멘터리), 그것을 어떻게 느끼게 할지(극영화)에 집중했습니다.
브랜드에서는 어떨까요?
Paid Media(다큐멘터리형): "우리 제품은 이런 기능이 있어요" → 팩트 전달, 신뢰 구축
Owned Media(극영화형): "이 제품으로 당신의 삶이 이렇게 바뀔 거예요" → 감정 몰입, 브랜드 스토리
Earned Media: 두 내러티브가 만나 만들어내는 팬덤의 자발적 재해석
중요한 건, 둘 중 하나를 선택하는 게 아니라 둘 다 만들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파킨슨도 다큐멘터리를 버리지 않았잖아요. 오히려 다큐멘터리가 있었기에 극영화의 진정성이 더 빛났죠.
우리는 지금 '탈진실(post-truth)' 시대를 살고 있습니다. 사실보다 감정이, 데이터보다 이야기가 더 강력한 영향력을 발휘하는 시대죠. 그래서 브랜드는 하나의 메시지를 여러 형태의 내러티브로 변주할 수 있어야 합니다. 몇 가지 브랜드의 다중 내러티브 사례를 살펴보죠.
2020년, 버거킹은 세상에서 가장 역겨운 광고를 만들었습니다. 햄버거가 곰팡이로 뒤덮이는 34일간의 타임랩스를 광고로 내보낸 것입니다. Brand Brief에 따르면, 이 캠페인은 "방부제 없음"이라는 메시지를 전달하기 위한 전략이었습니다.
먼저 다큐멘터리적 접근이 있었습니다. 실제 와퍼가 상온에서 34일간 썩는 과정을 타임랩스로 촬영했습니다. 조작 없음, 편집 없음. 순수한 사실의 기록이었습니다.
동시에 극영화적 해석도 더해졌습니다. "아름다운 부패(The Beauty of No Artificial Preservatives)"라는 내러티브로 재포장했습니다. 썩는 것이 자연스럽고, 자연스러운 것이 아름답다는 역설을 보여줬습니다.
결과는? 소비자들은 오히려 신뢰했습니다. "진짜 음식은 썩는다"는 상식을 활용해 버거킹의 무방부제 선언을 각인시켰습니다. 다큐멘터리의 신뢰성과 극영화의 스토리텔링이 만난 순간이었습니다.
파킨슨 감독이 다큐멘터리를 만들고 극영화로 넘어간 것처럼, 버거킹은 팩트(썩는 햄버거)를 보여주고 그것을 가치(무첨가의 아름다움)로 재해석했습니다. 두 개의 내러티브가 하나의 메시지를 완성한 것입니다.
에어비앤비의 성공 비결은 "집이 아니라 소속감을 판다"는 것입니다. 2013년 CEO 브라이언 체스키는 "Belong Anywhere(어디서나 소속되다)"라는 새로운 브랜드 철학을 발표했습니다. NxtBook Media에 따르면, 에어비앤비는 이 철학을 두 가지 방식으로 전달했습니다.
먼저 다큐멘터리적 접근이 있었습니다. 실제 호스트와 게스트의 이야기를 유튜브, 블로그, 소셜미디어에 그대로 공유했습니다. 영국의 나무 공예가 JoJo, 미국 Danville의 시장이자 슈퍼호스트 Dan은 모두 실존 인물의 실제 이야기였습니다.
동시에 극영화적 편집도 활용했습니다. 각 이야기를 "여정"으로 재구성했습니다. 가족의 말라가 여행, 호주의 동성 결혼 평등 캠페인 'Until We All Belong'은 모두 감동적인 내러티브로 편집되었습니다.
2015-2016년 에어비앤비의 매출은 80% 성장했고, 2018년 기업 가치는 380억 달러에 달했습니다. The4는 이를 "커뮤니티, 소속감, 디지털 스토리텔링"의 결과라고 분석했습니다.
에어비앤비는 파킨슨 감독처럼 사실(다큐멘터리)을 포기하지 않으면서도, 그것을 감동(극영화)으로 승화시켰습니다. 두 내러티브가 "Belong Anywhere"라는 하나의 메시지를 만들어냈습니다.
레고는 전 세계에서 가장 성공적인 장난감 브랜드지만, 2000년대 초반 디지털 게임의 등장으로 위기를 맞았습니다. 그들의 반격은 독특했습니다. 콘텐타가 분석한 바와 같이, 레고는 "콘텐츠 마케팅의 정점"을 보여줬습니다.
먼저 다큐멘터리적 기반이 있었습니다. 레고 블록의 물리적 특성, 조립 가능성, 창의성은 제품의 실제 가치였습니다.
동시에 극영화적 확장이 더해졌습니. <레고 무비>(2014)는 평범한 미니피겨가 세상을 구하는 영웅이 되는 이야기였습니다. 제품은 배경이 되고, 메시지("Everything is Awesome")가 전면에 나섰습니다.
결과는? <레고 무비>는 전 세계에서 4억 6천만 달러 이상의 수익을 올렸고, 레고 매출은 2014년 25% 증가했습니다.
레고는 제품 사양서(다큐멘터리)를 버리지 않았지만, 그것을 세계관(극영화)으로 확장했습니다. 파킨슨 감독의 전략과 동일합니다.
아웃도어 브랜드 파타고니아는 2014년 다큐멘터리 영화 <DamNation>을 제작했습니다. 한국콘텐츠진흥원에 따르면, 이 영화는 "댐 건설의 유해성"을 다룬 환경 다큐멘터리로, 서울환경영화제에서 대상을 수상했습니다.
먼저 다큐멘터리적 접근이 있었습니다. 실제 댐 철거 사례, 과학적 데이터, 환경 전문가 인터뷰가 담겼습니다.
동시에 극영화적 메시지도 더해졌습니다. 되살아난 강의 모습을 마치 극영화처럼 시적이고 아름답게 촬영했습니다. 단순한 정보 전달이 아니라 "자연 회복"이라는 희망의 서사를 영상미로 구현했습니다.
파타고니아는 제품을 광고하지 않았습니다. 대신 그들이 지향하는 가치를 다큐멘터리(사실)와 스토리텔링(감동)으로 전달했습니다. Winwin Avengers는 이를 "공익 광고와 다큐멘터리를 통한 진정성 전달"이라고 분석했습니다.
가짜뉴스와 AI 생성 콘텐츠가 넘쳐나는 지금, 브랜드가 해야 할 일은 무엇일까요?
파킨슨 감독이 처음부터 극영화만 만들었다면 관객들은 "이거 진짜야?"라고 의심했을 것입니다. 하지만 다큐멘터리가 먼저 존재했기에, 극영화는 "이미 증명된 진실을 더 깊이 느끼는 방법"이 되었습니다.
브랜드도 마찬가지입니다.
먼저 신뢰의 닻(다큐멘터리)이 필요합니다. 검증 가능한 사실, 투명한 프로세스, 실제 고객 후기, 데이터와 증거가 그것입니다.
그리고 감정의 증폭기(극영화)도 필요합니다. 브랜드 스토리, 가치 기반 캠페인, 감성적 접점, 캐릭터와 여정이 그것입니다.
버거킹의 썩는 햄버거는 다큐멘터리적 팩트였지만, "아름다운 부패"라는 극영화적 재해석을 통해 메시지가 완성되었습니다. F1의 <Drive to Survive>는 실제 레이스를 보여주지만(다큐멘터리), 드라마처럼 편집해(극영화) 새로운 팬덤을 만들었습니다. 에어비앤비는 실제 호스트를 소개하면서도(다큐멘터리), 그들의 이야기를 "소속감"이라는 서사로 엮었습니다(극영화).
탈진실 시대의 진실 전략은 역설적입니다. 더 많은 방식으로 진실을 말하는 것입니다.
파킨슨 감독은 여전히 진실을 사랑하지만, 이제 그 진실을 전달하는 방법을 더 많이 알게 되었습니다.
마케터인 우리도 마찬가지입니다. 당신의 브랜드는 지금 어떤 이야기를 하고 있습니까?
그 이야기는 하나의 형식으로만 존재합니까? 같은 메시지를 다른 감정선으로 전달해 본 적 있습니까? 팩트를 말하면서도, 동시에 감정을 불러일으키고 있습니까?
파킨슨이 6년에 걸쳐 같은 이야기를 두 번 만든 이유는 단순합니다. 한 가지 방식으로는 전달할 수 없는 것들이 있었으니까요. 다큐멘터리는 "이건 실제로 일어난 일이야"라고 말했고, 극영화는 "네가 그 순간에 있었다면 이런 느낌이었을 거야"라고 말했습니다. 둘 다 진실이었고, 둘 다 필요했습니다.
하나의 진실, 여러 개의 이야기.
탈진실 시대를 헤쳐나가는 브랜드의 생존 전략은, 역설적이게도 더 많은 방식으로 진실을 말하는 것입니다. 어떤 사람은 데이터로 설득되고, 어떤 사람은 이야기로 움직입니다. 어떤 사람은 신뢰를 원하고, 어떤 사람은 공감을 원합니다.
다만, 여러 내러티브가 서로 모순되거나 브랜드의 핵심 가치와 충돌하면 신뢰를 잃을 수 있습니다. 다양하되 일관된 브랜드 정체성 안에서 움직여야 합니다.
<Last Breath>의 크리스 레먼스는 2012년 북해 해저 90미터에서 기적적으로 살아남았습니다. 그의 이야기는 다큐멘터리로 증명되었고, 극영화로 체험되었습니다. 두 개의 영화, 하나의 진실. 당신의 브랜드도 그렇게 말하고 있습니까?
>> 이 밖에도 가짜뉴스, 탈진실 시대 브랜드가 해야 할 일들이 궁금하시다면
최근에 본 실화를 기반으로 한 영화들과 비교해 보자면, <라스트 브레스>는 이전에 소개해 드렸던 <굿뉴스>보다는 영화적 재미가 떨어집니다.
동시에 2012년 실제 있었던 존폐 위기에 놓인 부산중앙고등학교 농구부가 전국 대회에서 만들어낸 기적을 그린 장항준 감독의 영화 <리바운드>보다는 확실히 좋았습니다. 사실 <리바운드>는 그 해 최악의 영화로 선정할 만큼 저에게는 좋지 않은 기억의 영화입니다. 참조해 주세요.
우디 해럴슨의 연기는요? 솔직히 말하자면 뭐 그냥 그렇습니다. 브루스 윌리스 옹하고는 다른 장난기의 모습은 진중하고 긴박했던 영화 내용 때문에 보이질 않았습니다. 배역도 그리 중요한 역할도 아니어서.
그래도 우디 해럴슨을 응원하면서 그의 다음 작품을 기다려 보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