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년 2013년 경에, 한 살, 두 살 연년생을 키울 때 나는 일을 그만두었고, 남편은 박사과정 학생이었다. 카이스트 박사과정생들은 거의 밤 12시에 집에 온다(다른 학교 박사과정생도 마찬가지겠지만). 아이들과 하루 종일 먹이고, 입히고, 재우고, 치우고 하다 보면 온전한 정신세계가 아닌 미지의 안드로메다로 정신세계가 이동한 것 같았다. 한국에서의 육아는 그래도 어린이집이 무료로 제공되어서 그나마 좀 지나서는 편해졌다.
미국에서의 K학년 이전의 육아는 힘들다. 보육 시설에 보내는 것이 매우 비싸서, 경제적으로 여유가 안되면 공립학교에 들어가기 전 까지는 대부분 집에서 케어를 하는 것 같다. 예전에 카이스트 어린이집에 한 나이 많으신 교사분이 미국에 가려거든 아이들을 좀 키워서 가라고 하셨던 말씀이 정말 진리같이 느껴진다. 내가 미국에서 애를 키웠으면 정말 우울증에 걸리겠다 싶었다.
우리 교회에 아주 어린 남자꼬마(M군)가 있는데, 그 집에 놀러 오라고 하여 26일 날 세명의 딸을 대동하고 같이 갔다. 우리 집에서 15마일로 멀지 않은 거리지만, 꽤 조용한 외곽의 타운하우스였다. 오래된 집에 사는 나로서는 새로 지운 타운 하우스가 마냥 신기했다. M군은 누나들이 3명이나 와서 신이 났는지, 긴 아일랜드 식탁 주위를 계속 뛰어다녔다. 아직 말은 못 하지만, 저렇게 하는 행동이 가장 기쁠 때 하는 의미라고 한다. 누나들품에 안겨 뽀로로를 시청하는것이 신기했는지 애엄마는 자꾸 사진을 찍어댄다.
M군 아빠는 7시에 나가서 저녁 7시에 돌아온단다. 엄마는 쓰던 리스로 이용하던 차를 반납해서 기동력이 안 되는 상황이라, 아이랑 어디 갈 수도 없고, 그야말로 독박육아를 하고 있었다. 집은 인형과 장난감이 여기저기 어지렵혀져 있었는데, 나도 모르게 치우는 본능이 되살아나 하나하나 줍고 다녔다. 긴 시간 몸에 밴 습관은 어쩔 수 없나 보다.
큰 아이가 2시에 교회로 집합하여 수련회를 떠날 예정이었다. 대구 이모가 “뭐 먹고 싶니?” 물어보니 “자장면요” 이렇게 되어 한인거리에 있는 중국집으로 향했다. 자장면과 탕수육을 먹고 교회로 가서 수련회 차량에 탑승시키고 우리는 코스트코로 향해 갔다. 마트에 도착했는데, 그 잠시동안 아기도 잠들고 애엄마도 잠들었다.얼마나 피곤할까...운전석에 열시트가 따끈하니 앞에서 잠시 자라고 했다.우리막둥이도 힘을 많이 소진했는지 잠들었다.
남편이 코스트코에 가는 것을 무척 좋아한다. 거의 80% 요리를 담당하기 때문에 본인 재료는 본인이 직접 고르는 일을 좋아한다. 소고기뭇국을 한다고 국거리용 소고기를 사러 갔는데, 포장 옆에 고기 피가 뚝뚝 떨어졌다.ㅋㅋㅋ 그래서 내가 고기를 싫어하는 거 같다.
돌아오는 길에 Target에 가서 기저귀를 산다고 잠시 들렀다. 어플에는 100불 이상 사면 20불 기프트 카드를 제공한단다. 3박스를 담으니 100불이네. 미국에서는 기저귀를 안 사서 물가를 잘 몰랐는데, 아이들이 많으면 이 가격도 무시 못할 것 같다. 집에 데려다주고 이별을 했다. 오늘 하루도 이렇게 무사히 지나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