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필로그
사람은 사람에게 영향을 준다. 인간관계란 서로가 서로에게 주고받는 영향력이 축적되어가는 과정이 아닐까.
코로나가 확산되고 사회적 거리두기가 시행되기 전부터, 나는 한동안 사람들을 멀리 해왔었다. 다른 사람들로부터 영향을 받는 게 싫었고, 내가 누군가에게 영향을 주는 것도 싫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것은 오래갈 수 없는 사고방식이었다. 사람은 사람을 사랑하고, 사람을 통해 배우고 성장하며 살아가는 존재임을, 나는 최근에 이르러서야 깨달았다.
나에게 언젠가 상처를 주었던 사람들조차, 내 삶을 보다 풍요롭게 하고, 나를 더 나은 사람이 될 수 있도록 하는 자양분이었음을, 이제는 조금이나마 이해할 수 있다.
누구나 일상에서 다른 사람의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지만, 그럼에도 반드시 나 혼자서 정해야만 하는 것들이 있다. 그리고 그러한 것들에 대한 생각을 정리하기에 글쓰기만큼 좋은 것이 없다.
『그냥 좋은 사람』은 내가 스스로 되고 싶은 사람의 모습과 내가 어떻게 사람들을 대해야 할지에 관한 내 단상들의 모음집이다. 주변 사람들에게 처음 제목을 소개했을 때는 그냥 좋은 사람이면 호구가 아니냐는 소리를 듣기도 했다. 그런 말을 듣는 나도 그저 웃기만 할 뿐 크게 반박을 하지는 않았었다. 사실 어느 정도는 맞는 말이기 때문이다.
물론 내가 정말로 호구가 되고 싶은 건 아니다. 다만, 상황에 따라 여러 조건들을 일일이 따져가며 어떤 사람에 대한 좋고 나쁨을 정하고 싶지 않은 것이다. 내가 누군가에게 그런 식으로 규정되는 것도 마찬가지로 싫다.
서로의 상황이 잘 맞아떨어질 때, 좋은 관계를 유지하는 건 너무나 쉬운 일이다. 진정으로 좋은 사람은, 상황이 좋지 않을 때도 좋은 관계를 계속 유지하기 위해 노력하는 사람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상황에 따라 약간은 호구가 되는 것을 각오해야만 한다. <호구의 사랑>이라는 드라마가 있다는 것도 이번에 처음 알았는데, 드라마에 내 생각과 비슷한 내용이 담겨 있을지 궁금하다.
'적당한 거리', '변하는 것과 변하지 않는 것', '그냥 좋은 사람', '홀로움', '어떤 이별'.
목차의 제목이기도 한 이 글들은 각각 '상처', '만남', '사랑', '외로움', '이별'을 주제로 하고 있다. 인간관계에서 비롯되는 모든 일들이 크게 보면 이 다섯 가지 범주에 속할 것이다.
그중에서 제일을 고른다면 역시나 사랑일 것이다. 외로움과 그로 인한 만남 그리고 이후에 겪게 되는 상처와 이별에도 불구하고, 다시 만남을 갖게 되는 것은 결국은 사랑 때문이라고 나는 믿는다.
이번에 글을 쓰면서 알게 되었다. 다른 누군가를 지칭할때 나는 '당신'보다 '그대'라는 단어를 더 좋아한다는 것을.
그동안 정말 많은 그대들을 만나왔다. 우선은 부모님의 크나큰 사랑 덕분에 지금까지 큰 일탈 없이 자라올 수 있었다. 감사하다는 말로는 그 감사함을 표현하기에 한없이 부족하며, 언제나 나의 자랑인 분들이다.
살면서 거쳐온 여러 장소에서 만난 다양한 친구들의 환대 속에도 언제나 사랑이 있었다. 지금까지 만나오고 있는 이들도 있고 그렇지 못한 경우도 있지만, 나와 함께했었던 모든 친구들이 항상 사랑하고 사랑받으며 살아가기를 바란다.
나의 모든 그대들이 한 편의 시였고, 나에게는 사치였다. 그대 덕분에 지나가는 계절 속에도 변하지 않는 것이 있다는 것과, 빛나는 하루를 보내기 위해 많은 것이 필요한 건 아니라는 걸 알게 되었다.
그대에게 전하고 싶은 말들이 더 남아있지만, 아직은 그대와 함께할 날들이 더 많으니 직접 그대를 만나서 이야기를 나눴으면 한다. 그대도 나와 같다면, 나는 그대에게 그 이상 바랄 것이 없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