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부 : 어떤 이별
이별의 순간이 왔다고 해서 꼭 누군가의 마음이 변질되었기 때문인 건 아니다. 어떤 이별은 그저 그들 사이에 시간이 흘러갔기 때문에 찾아온다.
- 영화 <토이 스토리 3>(2010)에 대한 이동진 영화평론가의 한 줄 평
세계적인 애니메이션 영화 토이 스토리(Toy story) 시리즈를 처음 본 건, 초등학교 혹은 중학교 시절이다. 정확한 시점은 불분명하다. 다만 확실한 건 중간고사 직후 혹은 방학 직전 등, 잠시 여유가 있던 시기에 학교 교실에서 큰 브라운관 TV를 통해 영화를 봤다는 점이다.
영화는 카우보이 인형 우디와 우주전사 버즈, 슬링키, Mr. 포테토, 마음 약한 공룡 렉스, 돼지 저금통 햄, 아름다운 사기 램프 인형인 보 비프 등의 장난감들이, 남자아이 앤디를 주인으로 만나서 이루어지는 따뜻한 우정을 그려내고 있다.
어릴 적에 봤던 토이 스토리 1, 2 시리즈는 그냥 가볍고 유쾌한 이야기인 줄로만 알았다. 그러나 내가 대학생이 된 후 개봉한 토이 스토리 3에서는, 마지막에 주인공 앤디와 장난감들이 헤어지는 장면에서는 무언가 알 수 없는 뭉클함을 느꼈었다.
<토이 스토리 3>가 개봉한 지 11년이 지난 2021년 4월 무렵, 어느 인터뷰 예능 프로그램에 이동진 영화평론가가 출연한 것을 보게 되었다. 방송에서 그는 <토이 스토리 3>에 남긴 한 줄 평을 직접 설명했는데, 그제야 나는 처음 영화를 보면서 느꼈었던 뭉클함의 정체를 알 수 있었다.
이동진은 <토이 스토리 3>는 어떤 종류의 이별을 다루고 있다고 말한다. 영화에서 앤디와 앤디의 장난감들이 헤어지는 이유는, 단지 소년이었던 앤디가 자라서 먼 지역의 대학에 입학해 집을 떠나야만 했기 때문이다. 이처럼 어떤 이별은 특별한 일없이 그냥 둘 사이에서 시간이 흘러갔기 때문에 발생한다.
이동진은 영화에서 그러한 '어떤 이별'을 앞두고 주인공들이 '미안해'가 아닌 '고마워'라고 말하는 것에 큰 감명을 받았으며, 고맙다고 말해준 것이 고마워서 그 마음을 한 줄 평에 담았다고 한다. 나도 그와 마찬가지로, 나를 뭉클하게 한 앤디와 앤디의 장난감들에게 고맙다고 말해주고 싶다.
회자정리(會者定離). 만남 뒤에는 항상 이별이 뒤따른다. 너무나 당연한 이치라서 모든 이별이 자연스러울 것 같지만, 사실 대부분의 이별은 끝내 미련이 남는다. “왜 그때 더 잘해주지 못했을까.”, “내가 뭘 잘못했을까.” 등의 말들로 뒤늦게 자신을 책망해보기도 하지만, 이별을 다시 만남으로 되돌리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다.
나는 보고 싶은 사람에게 먼저 연락하는 것을 크게 주저하지 않는 편이다. 그러나 나 역시 어느 순간이 되면, 한때 좋아하던 사람들과 연락을 안 하게 되는 경우가 종종 있다. 신뢰가 깨져서 그런 경우도 아주 가끔 있지만, 대부분은 나와 상대방 사이에 그저 시간이 흘러갔기 때문에 찾아오는 이별이다. 오랫동안 만남을 갖지 못한 사이에 이미 서로가 많이 변해있는 경우, 어렵게 다시 만나도 다시 이전과 같을 수 없음을 깨닫고서 자연스레 거리가 멀어지는 것이다.
현실은 영화가 아니라서, 그런 이별들을 앞두고 상대방에게 간단한 작별 인사조차 건네지 못한다. 그래서 나는 지금 이 공간을 빌려, 나와 '어떤 이별'을 하게 된 모든 분들께 감사함을 전하며 이 글을 마무리하려고 한다.
안녕하신지 모르겠다. 그간 별 탈 없이 잘 지내고 계셨길 바란다. 혹시라도 나의 안부가 궁금하여, 나에 관한 소식을 찾다가 이 글을 발견하게 되었다면, 너무나 반가울 것이다. 그대도 그렇다면, 부디 망설이지 말고 나에게 직접 연락해주면 좋겠다. 물론 지금처럼 멀리서 지켜만 보겠다고 한다면, 그 역시 존중하겠다. 다만, 만약 연락을 준다면 내가 아주 맛있는 걸 대접할 것이다. 이미 나를 잘 아시겠지만 나는 절대로 말을 가볍게 하는 사람이 아니다.
내가 좋아하는 어느 노래 가사에 의하면, 만남의 기쁨도 헤어짐의 슬픔도 긴 시간을 스쳐 가는 짧은 순간이라고 한다. 시간이 흐르면서 많은 것들이 변하지만, 그대와 함께했던 순간들은 항상 그 자리에 변함없이 머물 것이다. 우리가 다시 만나기는 힘들더라도 가끔은 그 시절을 추억해주길 바란다. 나 역시 이따금 그대를 추억할 것이다. 긴 시간을 스쳐 가는 짧고 소중한 순간들을 나와 함께 해줘서 너무나 고맙다. 부디 앞으로도 안녕하시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