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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 그리고 안녕

5부 : 어떤 이별

by 허씨씨s

*이 글은 영화 <봄날은 간다>의 주인공 상우(유지태)의 입장에서 은수(이영애)에게 쓴 편지입니다.

영화의 팬으로서, 저의 지극히 주관적인 관점이 반영되어 있습니다.



안녕?


잘 지내지?

올해도 어김없이 겨울이 지나가고,

다시 봄이 찾아오려는 이 무렵에,

너에게 편지를 써.



기억나?

우리가 처음 만난 때도 겨울이었어.


터미널 대합실에서

나를 기다리가 잠든 너를 내가 깨웠었고,

너는 첫 만남부터 늦은 나를 나무랐었어.


그 겨울날

바람에 흔들리는 대숲 소리.

흐르는 개울물 소리.

눈 내리는 사찰의 고요한 소리.


네가 진행하는

라디오 방송에 쓰일 풍경들을 녹음하며,

우리는 함께 시간을 보냈었지.



나는 지금도

시절에

우리가 나눴었던

대화들이 간혹 떠올라.


강하순 할머니 댁에서

음향장비들을 재정비할 때,

비록 편찮으시지만

할머니와 함께 산다는 나를,

너는 부러워했지.


방송국에서

네가 커피를 마시면서

소화기 사용법을 외웠을 때,

집에 자신을 걱정해주는 사람이 없다는 너를,

나는 안타까워했어.


그렇게

서로에 대해 천천히 알아가며

우리는 자연스럽게 가까워졌지.



원래 예정되었던 녹음이 모두 끝나고,

너를 집 앞까지 태워다 줬을 때.

나는 작별의 의미로 너에게 악수를 건넸었지.


너를 잡고 싶었지만,

그럴 용기가 없던 그때의 나에게.

너는 다시 다가와서,

너의 집으로 나를 초대했었어.


그 덕분에

우리는 만남을 더 이어갈 수 있었고,

계절이 바뀌어가는 걸 함께 볼 수 있었지.



그해

어느 봄날.


내가 다니는 녹음실 회식 중에 걸려온,

나를 보고 싶다는 너의 전화에,

무작정 강릉까지 달려갔던 새벽.


그날.

나는 믿었었어.

지금 이 순간의 설렘과 행복이

영원할 것이라고.



그해

유독 길었던 여름.


할머니 건강이 더 나빠졌고.

아버지는 사귀는 사람이 있으면

데려오라고 하셨지.


나는 고심 끝에

어릴 적 돌아가신

내 어머니 이야기를 꺼내며,

너에게 내 아버지의 의사를 전했었어.

그 직후였을까.

우리의 관계가 흔들리기 시작했던 게.



그해

너와 헤어지고 맞이한 가을.


할머니께서

내게 말씀하셨어.


버스와 여자는

떠나면 잡는 게 아니라고.


그러고

할머니는 영원히 내 곁을 떠났지.



기억하고 싶지 않은

그해 겨울을 지나

다음 해 벚꽃이 피었을 때

너의 연락을 받았었어.


오랜만에

다시 너를 만나러 가는 길에

나는 다짐했어.

이미 떠난 너를 잡지 않겠다고.


카페에서

너의 안부를 물었고

너는 할머니께 전해드리라며

나에게 화분을 선물했지.


너는 아마 몰랐을 거야.

그 선물이

전할 수 없는 것임을.



그날.

벚꽃길을 걸으며

헤어지는 길.


너는 2년 전 겨울 때처럼,

나를 다시 붙잡고자 했었지.


하지만

이제는 너를 놓아주겠노라고

스스로 결심했었기에,

나는 너에게 화분을 돌려주었어.


다행히,

너도 그런 나의 뜻을 존중해주었고,

그렇게 우리는

마지막 작별인사를 나눴었지.



하지만

미련 때문일까


아니면

우리 둘 사이에

흐르던 시간과 계절이

멈추는 것이 아쉬워서 일까.


나는 끝내

뒤를 돌아서,

나를 떠나는 너를

잠시 바라보았어.


그리고

그 자리에

한동안 서있었는데


분홍빛 꽃잎들을 응시하며

다시는 돌아오지 않을

우리의 지난 봄날을

추억했던 것 같아.



곧 있으면

추위가 물러난 길거리에

따뜻한 벚꽃이 피어나겠지.


매 해 벚꽃이

새롭게 개화할 때면

지난 벚꽃들을 떠올리곤 해.


그래서

지금 이 편지를 쓰지만,

너에게 전하지는 않을 거야.


다만,

그저 가끔은

너 역시 나를 추억하기를

잠시나마 바랄게.



젊은 날

너의 시간과 계절을

나와 함께 보내줘서

고마웠어.


항상 건강하고, 잘 지내길.


그럼 이만 줄일게.



안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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