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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영래 Oct 24. 2020

비싼 놈입니다. 슬기롭게 해결해 봅시다. 아보카도

  나만 몰랐던 거지. 다른 사람들은 이미 다 알고 있었던 거야. 발명이 아니고 발견인 거지. 관심이 없었던 거야. 인터넷에서 찾아보니 숱해 빠졌어. 

  아보카도. 며칠 전 엄마 생신날 과일 도매를 하는 동생이 내가 장이 안 좋다는 말을 전해 듣고 몸에 좋다는 과일을 한 박스 들고 왔다. 럭비공처럼 타원으로 짙은 초록색에 전체 면적으로 따지면 야구공만 한 것들이 가지런히 담긴 한 박스였다. 


  늘 우리에게 공수되는 과일들은 생물로서의 가치가 떨어졌다기보다는 비주얼에서 외면당한 것들이었다. 망고나 바나나는 점박이 상태를 막 지나는 것들이 대부분이었고, 파인애플도 한쪽이 약간 짓무르기 시작하며 노랗게 색이 변하는 것들이었다. 언젠가 상태 좋은 두리안도 가져온 적이 있었는데 그건 야릇한 냄새가 심상찮아서 한 조각 입에 들였다가 다시는 들이지 않았지만. 

  암튼 과일의 참맛은 비주얼을 버릴 때 나타나는 것이라는 걸 과일 도매를 하는 동생 때문에 알게 되었고, 우리 가족은 때깔이 과일맛을 보장하지는 않는다는 사실을 잘 안다. 벼는 익을수록 고개를 숙이고, 과일은 썩어가면서 절정의 단맛을 뿜는다. 짧은 기간에 빨리 먹어야 한다는 단점만 빼면 우리는 늘 망고며 바나나를 최고의 순간에만 영접했던 것이다.


  이번 아보카도는 낯설게도 비주얼이 최고의 순간에 우리에게로 왔다. 물론 나는 어떤 종류의 과일인지 알지 못했지만 아내나 딸은 이미 많은 정보들을 알고 있었다. 아내는 지금까지의 경험치와 인터넷 정보를 활용한 최고의 맛을 준비하기 위해 세탁실 문 앞 무심히 사나흘을 방치했다. 

  어느 날 아침. 콧잔등의 개기름처럼 번들거리던 빛과 올록볼록 엠보싱의 싱싱했던 초록의 아보카도는 자신만만하던 빛과 색을 잃고 거무튀튀하게 변해 있었다. 

  칼이 반전을 만들었다. 아보카도를 반으로 쪼개는 순간 빛나던 용모가 안으로 스며 들어갔던 것이었다. 신선한 초록의 살과 살구 같은 씨앗이 만들어내는 색의 조화는 정말 맛난 모양이었다. 

  인터넷 검색을 해 보면 과일 하나가 만병통치약 같은 효능을 지니고 있지만 달아서 향기롭거나 침이 고이도록 시거나 지독한 냄새가 나거나 하는 어떤 특징도 갖지 않은 밋밋한 맛의 아보카도는 한마디로 느끼함으로 표현되었다. 그래서 명란젓과 함께 먹는다고도 했다. 

  그날 아침 나는 강황 밥에 볶은 김치를 넣고 아보카도 살을 넣고 뭉게 비벼서 먹었다. 과일을 밥에 비벼 먹었던 것이다. 중간중간에 신선하고 상큼한 풀향기 같은 냄새와 혀 끝에 남는 고소한 맛의 느낌까지.     


  내가 출근하고 아내는 가족 단톡 방에 다음과 같이 후기를 올렸다.  

  "아니... 시작은 좋았어/ 시커멓게 잘 익은 한 녀석 딱 골라서/ 칼집 스무스하게 넣고 양손을 반대방향으로 비틀어/ 연예인들처럼 펼치고 껍질도 뭐 완전 부드럽게 손으로도 벗겨질 정도/그거 알지~/TV서 보던 대로.../아빠도 맛나게 드시고/심지어 끝 맛은 고소하기까지 하다는 평도 들었겠다... 됐다 싶었는데

거기까지!!! / 자신만만 먹었는데~~~ /밀려오는 세상 느끼함... 으... /머릿속으론 그래 명란을 샀어야 해~ / 연예인들도 그리 먹더구먼... 해 가며.../ 근데 반개 먹을 무렵쯤 / 한 접시 꺼내놓았던 김치들을 다 먹었더라고 내가 혼자...

박스 안 가득 찬 저 녀석들을 어찌하오리까

비싼놈들이니 슬기롭게 해결해봅시다 ^^.


  퇴근길에 식빵을 한 봉지 샀다. 내일 아침엔 식빵을 구워 아보카도를 마가린처럼 짓이겨 바른 후 계란 프라이를 얹어서 먹어 봐야지. 

  강황 밥에 비벼먹는 것과 풍경만 달랐지 여전히 신선한 냄새와 고소한 뒷맛까지 같았다. 거기에 좋아하는 빵과 함께 먹을 수 있다는 것까지 만족스러웠다. 새로운 음식에 장에 탈이 나지 않을까 걱정했지만 괜찮았다. 

  아보카도! 나도 먹을 수 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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