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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영래 Oct 31. 2020

언텍트시대에 콘텍트를 꿈꾸다

바이러스가 바꾸는 세상 1

  언텍트 얘기를 시작하면서 뜬금없어 보이는 듯한데 잠깐 미국 야구 이야기를 꺼내본다. 최근 미국 야구 월드시리즈에서 탬파베이와 LA 다저스가 맞붙었다. 언젠가 한국의 류현진 선수가 소속해 있다는 이유로 TV 앞에서 LA 다저스를 응원했는데 이번엔 탬파베이에 최지만 선수가 소속되어 있어 그와 그 팀을 응원했다. 사실 그 팀이 어떤 팀이고 어디에 있는지 조차 모르면서. 

  중계를 하는 아나운서는 타자로는 최지만 선수가 한국인 최초 월드시리즈 경기에 나가는 선수가 되었고, 득점을 하면 한국인 최초가 되었고, 안타를 치면 또 새로운 최초가 되었다. 그의 움직임 하나하나가 역사가 된다면서 목소리를 높였다. 


  없던 것 존재하지 않던 것이 새로 생기거나, 혹은 모든 사람들이 모르는 것을 알게 되는 것에는 '최초'라는 말이 붙는다. 우리는 지금 새로운 '코로나 19'라고 이름 붙여진 최초의 시간을 살고 있다. 처음엔 지나가는 감기처럼 기침 몇 번으로 끝날 수 있으리라 생각했지만 진흙 수렁에 빠진 발처럼 자꾸만 아래로 빠져드는 무서움이 느껴진다.

  그 두려움이 세상의 많은 것들을 바꾸고 있다. 최지만 선수가 월드시리즈의 타석을 밟고 서는 것처럼 모든 것에 낯선 '최초'라는 이름이 붙고 있다. 심지어 '최초'라는 단어가 붙는 말에도 점점 무심해져가고 있다. 물론 기존에 존재하던 형태들의 변형들도 있지만 삶을 대하는 인식이 바뀌고 있으며 시간이 지나면서 계속 그래 왔던 것처럼 익숙해져 가고 있다. 다시는 되돌릴 수 없을 것처럼. 


  언텍트(untact)라는 말이 생겨났다. 콘텍트(contact)라는 접촉하다는 뜻을 가진 말의 부정적 의미로 언(un-)을 붙인 합성어로 비대면을 일컫는다. 이 말은 '코로나 19'가 만들어낸 수많은 말 중에 가장 핫한 단어라고 생각된다. '코로나 19'는 새로운 언어를 만들어내는 연금술사다. 펜데믹, 코호트 같은 말들은 뉴스에서 너무 많이 회자되면서 일상언어처럼 돼 버렸다. 앞으로 얼마나 더 많은 말들을 유행시킬지 가늠할 수 없다. 

  기존에 외국 햄버거 전문점이나 커피점에서 하던 드라이브 스루가 코로나 검사에 적용되면서 다양한 분야로 퍼져 나갔다. 농산물 팔아주기, 식당 음식 주문, 학교에서 신학기 책을 받을 때도 그렇게 했다. 

  나는 엊그제까지 일주일 동안 소방학교 교육을 비대면으로 받고, 수료했다. 수요일엔 체육활동도 했다. 학교는 온라인 수업으로 대체되었고, 온라인 쇼핑이 대세가 되면서 택배 수요가 폭증했다. 학교 주변 원룸촌과 식당들이 문을 닫았고, 택배 노동자들의 과로사가 사회 문제로 대두되고 있다. 콘서트나 전시회도 온라인으로 하고, 스포츠는 무관중으로 자신들의 목소리만 메아리치는 체육관에서 외롭게 진행된다. 

  어디까지 사회가 변할지 나는 모르겠다. 사람의 생존 몸부림이 어떤 형태로 진화할지 찰스 다윈이나 용불용설의 라마르크는 알 수 있을까.   


  지난겨울에 시작된 코로나가 여름을 지나며 소강상태를 보이다 겨울이 오면서 다시 대유행을 시작하고 있다. 미국이나 유럽을 비롯한 많은 국가에서 그런 조짐을 보이고 있는데 아직 이렇다 할 치료제나 백신이 나오지는 않았고, 코로나에 독감까지 걸린 환자들이 발생했다는 뉴스가 들려온다. 더 엄청난 것들이 줄줄이 기다리고 있는 것 같은 어둠의 공포가 느껴진다. 영화처럼 사이보그나 외계인이 침략하고 지배하는 세상은 틀린 것 같다. 미래는 보이지 않는 것들이 지배하는 세상일지도 모른다.  

  모두들 포스트 코로나(post-COVID)를 예고하고 준비하지만 그건 사람들의 희망일 뿐, 영영 그 시간이 안 올지도 모르는 암울한 추측이 맴돈다. 예전처럼 여행을 하고, 가족과 친구들과 함께하는 풍경을 볼 수 있을까.

  언텍트 시대에 콘텍트를 바라는 건 허황된 꿈인가. 인간으로서 가질 수 있는 기본적인 소망조차도 어려운가. 

  말 보다 문자를 더 많이 하게 되고, 사람들이 많은 곳은 물론이고 약수터 길에서 띄엄띄엄 만나는 사람조차 내가 조심스럽고, 상대방이 조심스러워 서로의 입을 막아야 하는 일. 혀가 소멸되고 문자만이 번성하는, 인간이 인간을 피하는 포스트 코로나 시간이 오는 건 아닌지.

  나는 지금 잘 살고 있나? 코로나가 주도권을 쥐고 있는 이 시대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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