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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영래 Apr 05. 2021

주름처럼 늘어가는 걱정- 이사 후

부모가 내게 한 걱정에 비하면 나의 부모에 대한 걱정은 아무것도 아니지

  이사 첫날은 어이없게도 우리의 노력을 허탈하게 만드는 부모님의 다툼으로 마무리되었다. 하루 종일 이삿짐 옮기느라 물먹은 스펀지처럼 무거워진 몸으로 돌아왔다.

  다음날 아침 일찍 전화를 걸었다. 아직도 냉전 중인지? 아침은 드셨는지? 잠은 잘 주무셨는지? 머릿속에 떠오르는 궁금증에 걱정이 주렁주렁 매달렸다.

  "좋은 집에서 잘 잤다. 아침도 벌써 먹었다. 어젠 수고했다. 오늘은 집에서 좀 쉬렴."

  어제 다툼이 마치 연극처럼 우리를 빨리 집으로 보내려고 의도한 것이었나 의심이 들 만큼 목소리가 평소와 다름없이 차분하고 조용했다. 불안했던 근심이 확 날아가며 가벼워진 기분이 느껴졌다.    

  이사 준비부터 정리까지 마칠 계산으로 금요일부터 월요일까지 휴가를 냈다. 집에 적응하는 모습을 하루라도 더 지켜보며 화재보험이나 주소 이전 등 행정적인 것도 다 처리할 생각이었다. 첫날이 그럭저럭 지나갔고, '이 또한 지나가리라'는 말처럼  다시 익숙해진 일상으로 금방 돌아갈 수 있으리란 희망이 생겼다.   


  걱정의 원천은 리모델링을 하면서 간과한 것들에 있었다. 작고 새로운 방식으로 변화된 것에 편의성들이 추가되는데, 옛것을 그대로 사용해 온 노부모님에겐 그것 자체가 장애물이었다. 그렇다고 리모델링을 하면서 옛날 방식으로 할 순 없었다. 얼마 전 TV에서 키오스크 앞에 선 노인들의 이야기를 본 적이 있다. 그와 비슷했다.

  현관문은 열고 나가는 건 자유지만 일단 닫히면 비번이든 카드키든 열림장치를 조작해야 한다든가, 창문은 닫으면 그대로 잠금 기능이 되고, 가스레인지는 위에서 눌러 돌리는 방식으로 바뀌고, 샤워기는 수도를 연 후 꼭지를 잡아 올려야 했다. 당신들에겐 스마트 폰과의  만남 같은 낯섦이 되었다.  


  젤 큰 걱정이 현관문이었다. 잠금의 개념이 없던 습관에 문 밖을 나서면서 손잡이를 놓는 순간 바로 닫히는 구조는 엄청난 변화였다.  집으로 들어가는 문이 곧 벽이 되는 현실과 마주하게 되는 것이다. 너무나 당연하고 쉬운 일들이 당신들에겐 넘을 수 없는 장애물이 될 수도 있기 때문이다.       

  실제 이런 일도 있었다. 엄마가 서울 있는 누나 집에 갔을 때 청소를 하며 이불을 털러 무심코 현관을 나왔다가 오도 가도 못하고 하루 종일 이불을 뒤집어쓴 채 계단에 앉아 있던 것이다. 

  핸드폰에 카드키를 달고, 비번을 누르는 방법을 여러 번 연습했지만 옆에서 지켜볼 땐 잘하다가 문 밖에서 혼자 열고 들어오라시면 금세 잊어버리고 말았다.

  "잠깐이라도 나갈 땐 말발굽을 내려야 하고, 핸드폰은 손에 꼭 들고 다녀야 한다."라고 신신당부를 했다. 빌라 전체에 이사 떡을 돌릴 때도 '잘 부탁드린다'는 말은 서너 번씩 했다. 이웃에 긴급한 도움이 필요할 때를 위한 실낱같은 구조요청이었다.    

  두 번째 걱정이 샤워기 사용이다. 물을 튼 다음 손으로 잡아당겨 샤워기로 흐름을 바꿔야 했는데 그 또한 쉽지 않았다. 역시 기억이 머무는 시간이 짧아 몇 번 시연을 했다.  

  당신들에겐 소소한 것들이 다 낯설고 새로웠다. 신발장 손잡이가 안 달렸다길래 꾹 눌러 문을 열어 보였고, 세면대 물 빠짐 밸브도 한 번 더 눌렀다. 통돌이 세탁기는 빨랫감을 꺼내는 게 부담스러울까 드럼 세탁기를 놨더니 이번엔 세제 투입구가 위로 올라갔다. 옛날 오락실에서 하던 한 놈을 때리면 다른 곳에서 튀어나오는 두더지 잡기 게임 같았다.  

  식탁 놀 자리가 애매해 가로 놨더니 주방 쪽으로 가면서 현관 신발 벗어 놓는 곳에 발이 빠진다고 세로로 돌려놓으시더니 이번엔 의자 발이 빠져 위험하다고 발판을 고여 놔야겠다고 해서 부랴부랴 욕실 발판을 놨다. 시골집에서는 벽지도 오려 붙이고, 이가 잘 안 맞는 곳엔 청색 테이프로 붙이는 응급처치가 기본이라 발판을 고정시키려 테이프를 꺼내 들었다. 케이블 타이로 고정을 하고서야 가까스로 참사를 면했다. 하지만 언제 다시 테이프가 붙을지 알 수 없다. 

  오후가 되니 창가에 햇살이 가득해 좋긴 한데 TV가 안 보인다고 해 암막 같은 커튼을 걸었다. 불투명 유리가 무색해졌다. 가스레인지엔 처음부터 안전기를 달았지만 스위치가 위에 달려 손이 낯설어 돌리는걸 불편해했다. 반쯤 돌린 상태로 놔둘까 봐 걱정되었지만 20분이 지나면 자동으로 잠금장치가 작동되었다.   

  아침마다 걱정 달린 안부 전화를 했다. 가스는 잘 켜졌는지. 혹시나 집에 못 들어가 문 밖에서 서성이진 않는지. 밤새 물이 틀어져 있었던 건 아닌지. 등등


  이사 한 지 보름이 지났다. 별 탈없이 지나가니 처음 걱정이 무색한 듯했다. 이렇게 빨리 적응하신 게 내겐 놀랍고 또한 안심이다. 앞집 아주머니와 3층 대부님도 마실을 오신다. 옛 친정집 동네에 살던 동생이 언니 하며 엄마를 찾아오셨다는 말이 얼마나 반갑고 고맙던지. 예전에 시내로 나오신 동네 친구들 전화가 자주 온다고 하셨다. 며칠 전엔 한 시간을 통화를 했단다.    

수요일엔 버스 타고 시골집에 나가시겠다고 하시길래 또 싸우셨나 했는데 땅콩을 심어야 한다며 며칠 있겠다고 하셨다. 숨이 가빠 많이 움직이지도 못하면서 아직 농사일에 미련을 버리지 못하셨다. 공원을 산책하고 뒤꼍에 있는 스티로폼 화분에 파를 가꾸는 것으로 만족하지 못하는 건 오래된 몸의 기억 때문이리라.


  이사 후 부모님을 향한 걱정은 내가 어렸을 때 나를 향했던 부모님의 그 걱정과 비교하면 아무것도 아니겠지. 어디 가서 나쁜 일 안 당할까. 남과 싸울까. 다칠까. 욕 들으며 살진 않을까. 등등.

  팔순 노부모의 나를 향한 안부가 아직도 '밥을 먹었니?', '더 먹어라.', '일찍 집에 들어가라'는 말이니, 내가 부모님께 해야 할 걱정도 끝이 없단 얘기겠지.   

  지난주에 이어 이번 주말에도 봄비가 내렸다. 산불 걱정은 없어 좋은데. 텃밭에 땅콩심기가 늦어져 안달하실 아버지가 걱정이다. 맑은 날 휴가라도 하루 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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