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에 이런 결혼식 축가는 없었다

친구 딸 결혼식에서 친구들이 축가를 불렀다

by 벽우 김영래

인생에 우연이란 게 있을까. 우연히 찾아오는 것들도 속속들이 따지고 보면 필연이다. 흐르는 강물이 바위를 만나는 것과 같이. 어쩌면 우리가 우연이라고 부르는 그 소소한 것들 하나하나가 날실과 씨줄이 되어 인생의 길쌈이 되는 것이다.

그러니 삶에 불쑥불쑥 나타나는 우연 같은 필연을 무겁게 받을 일도, 부정적으로만 바라볼 일도 아니다. 지금의 시간을 소중히 여기며 충실히 살아내는 게 현명한 지혜가 아닐까.


내가 만난 세상에 없는 결혼식 축가 이벤트도 우연찮게 제안된 것이지만 삶의 과정에서 필연적으로 찾아올 것이었고, 소중한 나의 추억이 될 필연이었던 것이라 믿는다.


코로나 경계 수위가 낮아진지 한 달여가 지나 던 어느 날. 오랜만에 고등학교 친구들을 모임을 했다. 시끌벅적했던 식사와 못다 한 이야기가 잦아들며 모임이 끝나갈 무렵 한 친구가 딸 결혼식 소식을 전했다. 일순 박수와 축하의 인사가 쏟아졌고, 그때 한 친구가 씩씩하게 손을 들고 우리가 가만있으면 안 된다, 선물을 해야 하지 않겠느냐며 결혼식에서 축가를 부르자는 제안을 했다.

청천벽력(?) 같은 뜬금없는 제안에 잠시 정적이 흘렀다.


딸을 결혼시키는 친구는 물론 우리들 누구도 그 제안에 쉽게 말을 꺼내지 못했다. 머릿속이 복잡해졌다. 각자가 그 상황을 떠올리며 경우의 수를 생각했다. 노래를 잘하고 못하는 것은 제쳐두고 아빠 친구들이 나서는 게 맞는지도 의심스러웠다. 또 엄숙하고 경건한 데다, 생에 단 한 번뿐인 결혼식을 혹시 우리 때문에 망칠 수 있다는 우려를 안 할 수가 없었겠지.

하지만 걱정의 시간이 길지 않았다. 점차 긍정의 목소리가 나오기 시작했다.


"괜찮은데."

"노래는 못해도 우리가 좋은 추억을 만들어 줄 수 있지 않겠나."

"세상에 아빠 친구들이 딸 결혼식 축가를 불러주는 경우가 있을까. 좋은 추억이 될 거야. 우리 해보자."


우리의 높지 않은 수준과 하객들의 낮은 기대감이 오히려 이벤트를 성공할 거라는 예감을 믿으며 서로가 서로를 다독이고, 망설임을 주저앉힐 용기를 주었다.


물꼬가 트이자 노도의 강물처럼 거칠 것이 없었다. 그때부턴 하니 안 하니의 문제가 아니라 어떻게 하느냐의 문제였다. 총감독과 음악감독을 정하고, 여러 의견을 수렴한 끝에 김광석의 '바람이 불어오는 곳'으로 노래가 정해졌다. 카톡에 계획서가 공지되었고, 결혼식 전날 저녁식사 겸 연습 일정도 잡았다.


보름여 간의 시간 텀이 잊힌 듯 지나고 마침내 금요일이 되었다. 스무 명이 넘는 친구 중 열명이 참석하기로 했다. 저녁식사를 서둘러 끝내고 근처 노래방으로 향했다. 시작 버튼과 함께 반짝이 등이 돌고 친절하게 알려주는 노랫말을 따라 부르는 데 너무 잘 맞아서 모두가 놀랐고 기대 이상의 수준에 고무되었다.

첫 번째 연습에서 성공을 감지하자 여러 가지 소소한 아이디어가 쏟아졌다. 가만히 서서 부르기엔 너무 심심하니 중간중간에 작은 율동 넣기, 두 번째 간주 중에 회장이 막춤을 추면 주변에서 환호성 지르기, 마지막에 신부에게 보내는 축하 멘트에 맞춰 손하트를 그리기로 했다. 노래방에서 한 시간 동안 한 곡만 스무 번쯤 부르는 것도 최초였던 것 같다. 여러 번 부르다 보니 노랫말 없이 부를 땐 비슷비슷한 가사들이 2절인지 3절인지는 자꾸만 헷갈렸다.


드디어 결혼식날. MR이 우리가 아는 것과 같은지, 노래방처럼 가사를 영상으로 띄워 주는지, 마이크는 어떻게 배치되는지, 각자 서는 자리를 확인하는 등 최종 리허설을 위해 예식 한 시간 전에 모였다. 화려한 조명과 정장을 잘 차려입은 직원 몇 명이 분주히 움직이는 식장에 들어서는 순간 분위기에 압도됐다. 반짝이 등이 도는 노래방에서의 당당함은 소리 없이 사라지고 한껏 긴장이 차올랐다.


"무지 긴장된다 아무래도 막춤 못 출 것 같다."

"가사가 나오는 영상이 안된데, 악보를 보고 해야 되는데 글씨가 잘 안 보여. 큰일이네."

"노래에 자신이 없어졌어. 마스크 쓰고 하자."

"박자를 잘 맞추는 사람이 마이크 가까이에서 시작을 잡아줘." 등등

소리 없는 불안감이 엄습해왔다.


걱정을 한다고 시간이 멈추지는 않는다. 우리 축가 순서가 돌아왔고, 하객들의 박수와 함께 노래가 시작되었다. 처음 분위기는 좋았다. 불안한 음정 박자가 하객들의 박수소리에 묻혔고, 중간 간주에 막춤과 환호성 이벤트도 불안의 기운을 비웃 듯 무사히 지나갔다.

끝을 향하는 마지막 소절. 바로 그때 시작하는 박자를 놓쳐 노랫말이 음악과 따로 놀기 시작했다. 급기야 한 마디를 남기고 음악이 멈췄다. 불안이 키운 걱정이 현실이 되었다. 이미 어쩔 수 없는 상황이 되어버렸지만 그럼에도 다행스러운 건 당황하지 않고 우리의 약속된 '사랑해' 하트 이벤트까지 아무 일 없다는 듯 끝냈다.


표면적으론 실패한 것 같지만 하객들도 우리도 실패라고 생각하지 않았다. 무대를 내려오며 여기저기서 들리는 감동과 칭찬의 목소리가 들려 오히려 성공을 느꼈다.

세련되게 잘 부른 노래보다 불안해서 기어들어가는 목소리로 낮게 시작되다 갑자기 불쑥 고음이 튀어나오기도 하고, 노랫말이 틀리고 박자를 못 맞춰 울퉁불퉁 못 부른 노래가 사람들에게 더 많은 웃음과 감동을 주는 성공적인 상황으로 바뀌는 역설을 경험하는 것으로 우리는 충분히 값진 추억을 얻었다.


스스로 진단해 보건대 우리의 결혼식 축가 이벤트 성공 요인은 바로 서로를 향한 따뜻한 배려심 때문이 아니었을까. 오늘을 위해 스무 명 친구들 마음이 한 명의 친구에게로 향했고, 그 마음을 받은 친구 또한 우리 스무 명의 마음과 똑같았으리라. 주는 마음과 받는 마음이 모두 따뜻했고, 감동적이어서 행복했다.

앞으로 대략 한 마흔 번쯤의 축가 이벤트는 계속될 듯하다. 왜냐하면 우리 스스로가 감동당하고 따뜻하고, 행복해져야 하기 때문에.



유튜버 운영자 이완남 : 어디가남(https://www.youtube.com/watch?v=8mPgYns7_dk&t=48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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