터벅터벅 걷는 전나무길, 월정사
월정사와 안반데기를 보는 쉼이 힘이 되었다.
봄의 초록이 사람 마음을 들뜨게 한다면, 가을의 화려함은 사람을 차분히 가라앉힌다. 떠나고 다시 돌아오는 순환 고리를 길이 안내한다. 길은 사람을 안내하고, 계절을 인도한다. 길 안내를 받으며 가을 속으로 떠났다.
며칠 전 아들이 군 복무를 마치고 전역했다. 인생에서 커다란 산맥을 하나 넘은 것이다. 편하고 짧아졌다고 말하지만 여전히 가슴 벅차게 숨 가쁜 길이다. 시대마다 그 길의 깊이와 넓이는 달랐지만 그곳을 걷는 사람들 각각의 가슴엔 낯 섬과 고립된 두려움의 시간이 고난이다. 의무를 마쳤기도 하려니와 그 시간을 견뎌 준 아들에게 박수를 보낼 수밖에 없다. 이제 겨우 두서너 개의 산을 넘었을 뿐이고 앞으로 더 많이 남은 것들을 오르내려야 하지만 그 경험이 힘이 될 것이다. 아버지가 그랬고, 내가 그랬던 것처럼.
가까운 풍경은 단풍이 곱고 멀리 보이는 높은 산의 가랑잎들은 침묵 같은 갈색으로 어두워져 가을이 깊어졌음을 알게 했다. 군데군데 초록의 소나무와 샛노랗게 물든 낙엽송의 무리들이 이국적인 풍경을 만들어 감탄을 자아내게 한다. 아까부터 내가 주문한 윤도현의 '가을 우체국 앞에서'가 반복해서 들렸다. 가사가 시처럼 아름답다.
가을 우체국 앞에서/ 그대를 기다리다/ 노오란 은행잎들이/ 바람에 날려가고/ 지나는 사람들 같이
저 멀리 가는 걸 보내/ 세상에 아름다운 것들이/ 얼마나 오래 남을까/ 한여름 소나기 쏟아져도/ 굳세게 버틴 꽃들과/ 지난겨울 눈보라에도/ 우뚝 서있는 나무들같이/ 하늘 아래 모든 것이/ 저 홀로 설 수 있을까
가수의 목소리는 붉게 물든 단풍에 쏟아지는 햇살의 투명함처럼 맑고 깨끗했고, 때론 가슴을 파고드는 절규처럼 처절하고, 애처롭기도 했다. 박기영의 '산책'은 멜로디 자체가 산책이다. 헤어진 연인을 그리워하는 맘이 느리게 불리어 애절하지 않은 듯 애절하다.
별일 없니 햇살 좋은 날엔/ 둘이서 걷던 이 길을 걷곤 해/ 혹시라도 아픈 건 아닌지/ 아직도 혼자 일지 궁금해/ 나 없이도 행복한 거라면/ 아주 조금은 서운한 맘인걸/ 눈이 부신 저 하늘 아래도/ 여전히 바보 같은/ 난 온통 너의 생각뿐인데/ 사랑이라는 거 참 우스워/ 지우려 한 만큼 보고 싶어 져/ 처음부터 내겐 어려운 일인걸/ 다 잊겠다던 약속/ 지킬 수 없는 걸 forever/ 깨어나면 니 생각뿐인데
창 밖으로 보이는 가을 풍경에 맞춰 노래가 흘러나왔다. 음악에 조예가 별로 없지만 분위기에 맞는 노래는 주변 공기를 다르게 만든다. 음악은 마술처럼 신기한 게 이 때문이다. 최신 노래를 듣기도 했다. 헬스장에서 음악채널을 돌리다 들은 벤의 노래 '헤어져줘서 고마워'도 들었다. 김소월의 진달래꽃처럼 '나 보기가 역겨워 가실 때에는 말없이 고이 보내' 준다는 듯한 역설 같기도 하고, 정말 헤어져서 고마워서 고마운 건지 알듯 말 듯 했다. 정서도 변한다. 예전 노래엔 사랑하는 이와 헤어져 아쉽고, 애 닮고, 다시 사랑하는 마음이라면 요즘은 '질질 끌지 말고 헤어지자/ 그래 오늘은 꼭 헤어지자/ 그만 미워하고 더 후회하지 말고/ 그냥 미친 척하고 우리 헤어져 보자'하는 은유보다는 직설적이다. 시간에 쫓기는 현대의 삶이 그렇듯이 빙빙 돌리고 미안해할 필요 없이 서로 솔직하게 대화하듯 하는 노래가 더 많다. 때론 무슨 말인지 알아들을 수 없는 외계언어 같은 노래도 많다.
월정사 입구에 도착하자 차들의 홍수로 길이 몸살을 앓고 있었다. 그런데 숲 속 산책길은 그렇게 복잡하지 않았다. 너무 큰 고난을 지내고 나면 뒤에 오는 고난이 작아 보이듯 얼마 전 다녀온 중국 여행지에서의 인파에 단련된 후유증이라서 그런가 보다. 냇물 소리와 나무들 사이로 보이는 깨끗하고 푸른 하늘이 걷는 풍경을 최고로 만들어 주었다. 키 높은 전나무들이 뿜어내는 피톤치드의 향기가 숲길을 상쾌하게 했다. 물에 비친 하늘과 숲 풍경이 너무 깨끗해 마음이 정화되었다.
월정사 앞마당을 거닐며 8각 9층 석탑을 한 바퀴 돌았다. 탑돌이를 하며 소원을 비는데 뜬금없이 학창 시절 국사시험문제들이 떠올랐다. 보기 중에서 시대별로 나열된 탑들이 맞는 것은? 혹은 다음 중 틀린 것은? 월정사 8각 9층 탑, 정림사지 5층 석탑, 분황사 모전석탑, 감은사지 3층 석탑, 탑평리 7층 석탑 등등의 보기가 주어졌거나, 5층을 3층으로 바꿔서 문제를 내기도 했다. 그때마다 혼란스러워 연필을 굴리거나, 답들의 분포비율을 보면서 가장 적은 답을 무심히 찍기도 했었다. 이렇게 아름답고 소중한 문화유산을 고려시대 국보, 9층 탑 정도로 기억하고 었다니. 한 바퀴를 돌고 다시 올려다본 탑은 모든 이들의 소원을 다 들어줄 것 같은 넓은 맘을 품고 푸른 하늘 속에서 멋지고 우람했다. 이제야 비로소 제대로 역사공부를 한 느낌이었다.
느리게 걷는 걸음을 따라 시간도 천천히 흘렀다. 어차피 어둠이 오면 안반데기에 들러 별 밤까지 보고 갈 작정을 했으니까. 주문진으로 넘어가려다 길가 그릇 굽는 카페 분위기가 좋아 보여 무작정 들어갔다. 전시된 작품과 판매하는 그릇들이 진열된 카페 2층에 손님이 하나도 없었다. 몸을 반쯤 누일 수 있는 의자에서 아들은 한잠 잤고, 와이프와 난 브런치를 읽고, 음악을 들으며 시간을 보냈다. 어둠을 기다린 것이었다.
다섯 시 반이 넘어 안반데기로 가는 길은 어둠이 깔리기 시작했다. 오색 찬란한 단풍도, '손톱으로 툭 튀기면/ 쨍하고 금이 갈 듯' 했던 하늘도 어느덧 어둠 속에 묻혀버렸다. 높이 오르는 길이라 몇 굽이를 휘도느라 우리 대신 차가 숨차 했다. 정상에 도착했더니 차 두 대가 어둠 속에서 고요히 더 깊은 어둠을 기다리고 있었다. 바람이 세차게 불었고, 풍력 발전기가 힘차게 돌고 있었다.
어둠을 기다리는데 어둠이 오는 게 아니고 점점 밝아졌다. 아뿔싸! 현재가 음력 열 나흘이었다. 딱히 별을 보겠다고 계획한 것은 아니었지만 대관령에 왔으니 별을 보겠다고 생각했고, 날씨가 맑아 은하수를 기다렸더니 구름 사이로 달이 빛나고 있었다. 이것저것 살피면서도 쉬운 한 가지를 생각하지 못해서 헛걸음을 했다고 생각하니 헛웃음이 나왔다. 아들이 길구봉구의 '이 별' 노래를 틀었다. 헤어지는 '이별'을 얘기하는 건 줄 알았더니, '함께였던 너 지금 어느 별에 있니/ 난 아직 이 별에 있어' 하는 진짜 별을 노래한 음악이었다. 깔깔 웃었다.
윤동주의 별 헤는 밤을 들려주었다. 계절이 지나는 하늘에는/ 가을로 가득 차 있습니다/ (중략)/ 별 하나에 추억과/ 별 하나에 사랑과/ 별 하나에 쓸쓸함과/ 별 하나에 동경과/ 별 하나에 시와/ 별 하나에 어머니, 어머니'.
언제든 다시 찾아올 수 있지. 담에 올 땐 그믐밤만 생각하다 구름 낀 하늘을 잊을지도 모른다는 말에 우리는 한참을 또 웃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