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김영래 Feb 24. 2020

네가 선물이 되고, 내가 선물이 되어

너 또는 나는 누군가에게 귀중한 존재이며, 선물이다

  선물. 똑같은 것이라도 마트에서 산 것처럼 던져주듯 받을 때와 예쁜 포장지에 리본까지 달아 받을 때는 기분이 다르다. 주는 사람이 누구냐에 따라서도 기분과 가치는 백팔십도 달라진다.

  선물은 무엇일까? 물건을 빌려 내 마음을 건네는 좀 비겁한(?) 방식의 고백이랄까. 혹은 마음을 표현하는 우아한 방식의 선택.  어떤 개념이 든 좋다. 받아도, 줘도 좋은 것.    


  엊그제가 생일이었다. 퇴근하고 늘 하던 대로 서재로 곧장 들어가 가방을 벗어놓으면 될 일을 그날따라 딸 방을 무심코 열었더니 롱 패딩이 침대에 걸쳐 있었다. '어! 이거 딸이 지난번에 왔다 안 가져간 거야?' 아무래도 그런것 같아 아내에게 물었다. 공부방에서 일하다가 웃으며 내게 다가오는데 갑자기 뒤에서 딸 얼굴을 불쑥 나타났다. 순간 얼마나 놀랐는지. 집엔 오랜만인 데다 요즘 '코로나 19' 로 뒤숭숭해 궁금하던 차에 기쁘고 반가웠다. 아내 일을 마치고 식탁에 앉아 도란도란 얘기를 나눴다.

  아침 식탁에서 케이크를 놓고 작은 생일 파티를 했다. 선물도 있었다. 손수건 다섯 장과 멋진 목도리였다. 숄더처럼 큰 것 밖에 없어 좀 작은 게 있었으면 했는데 아주 맘에 들었다. 목에 둘렀다. 선물은 당장 눈 앞에서 펼쳐 마음을 열어 보고 감동해야 하는 것이기에. 딸 마음이 목을 감싸 금세 따순 온기가 느껴졌다.  


  일요일은 올 겨울 들어 눈다운 눈이 내리는 날이었다. 시골 부모님 집을 방문했다. 불쑥 찾아온 딸이 내게 선물이었다면 나도 부모님께 선물이 될 것 같다.

  팔순이 넘은 부모님에게 있어 시간이란 너무도 귀한 것 일터. 하지만 가까이 있어도 자주 찾아뵙지 못했고, 오래 머물지 못해 미안한 마음이 늘 가슴 한편에 그림자처럼 붙어 있다. 그런 시간의 틈새를 매워 주는 짧은 방문이 당신들께 선물이었으면 좋겠다.

  생일이 주중이어서 케이크 하나 들고 아내와 딸을 앞장 세웠다. 좁은 마당 안에 흰 눈이 펑펑 쏟아지고 있었다.  뿌옇고 낡은 거실 창으로 두 분이 TV를 보고 계신 모습이 보였다. 스르륵 문을 여니 '어 야들봐! 길 미끄러운데 어떻게 왔어.' 하면서 반갑게 맞으셨다. 오랜만에 보는 손녀딸 손을 잡고 쓰다듬으셨다.  

  엄마는 당이 높아 케이크는 덜 잡수시면 좋으련만 기분이 좋으신지 자꾸만 입에 넣으셨다. 세상에 이런 기분에 먹는 음식이 독이 될 리가 있겠는가 싶어 말리지 않았다. 꼭 물건이 아니어도 반가운 얼굴이 선물이 되기도 한다. 바람에 휘날리며 내리는 올 겨울 들어 가장 신나는 눈이 내리는 일요일 오후였다.  


  수요일 아침이 진짜 내 생일이었다.

  출근 준비로 바빴다. 빨리 씻고 나온다 해도 도돌이표 리듬에 갇힌 듯 시계는 늘 그 시간이다. 식탁엔 생일 케이크가 놓여 있었다.

  "일요일에 케이크 먹었는데 뭘 또 샀어!"  

  축하 노래를 불러 준다면서 아내가 밥주걱을 들고 지휘하는데 바리톤 소리가 섞여 나왔다. 깜짝 놀라 옆을 보니 아들이 있었다. 분명 어제 퇴근할 때도 없었고, 잠들 때도 인기척을 못 느꼈다. 아들이 온 줄은 까맣게 몰랐었다. 자초지종을 들어보니 내가 집에 도착할 시간에 맞춰 친구들 만나러 나갔다 일찍 잠드는 내 습관을 알고 좀 늦게 들어왔단다. 군 제대 후 복학을 위해 미리 방을 얻어 상경한 후 오랜만에 보는 아들이었다. 이번 생일엔 아들, 딸과 번갈아가며 반갑게 만나는 큰 선물을 받았다.  


  선물도 선물이려니와 반갑고 보고 픈 얼굴을 보는 게 더 큰 기쁨이 되었다. 이제 나도 자식들의 얼굴이 선물이 되는 나이가 되었나. 지금까지 받아 본 선물 중 가장 기억에 남는 것일 듯싶다. 네가 선물이 되고, 내가 선물이 되는.

매거진의 이전글 남자들의 수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