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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영래 Mar 29. 2020

봄을 기다려, 봄

낼 아침이면 툭하고 터지겠네

  겨울은 견디는 것이다. 가을은 남겨지는 것이고, 여름은 살아가는 것이다. 그럼 봄은. 봄은 비로소 기다리는 것이다. 따사로운 투명 햇살, 언 땅을 녹이는 바람, 가지 끝에서 삶을 시작하는 연초록 새싹.


  꽃을 기다리는 마음은 사랑을 기다리는 것과 같다. 기다림은 길 수록 맞이하는 순간이 더 행복하다. 겨울이 춥고 길어서가 아니고, 사랑이 찾아오지 않아서가 아니고, 고난이 길어서 맞이하는 순간이 더 소중하고 행복한 봄이다. 올해는 모두에게 마냥 행복하지만은 않다. 그래도 봄이다. 고난이어도 봄이어서 행복했으면 좋겠다. 


  길어진 해가 밝아도 어쩔 수 없이 시간에 쫓겨 어둠으로 가는 저녁 정원에 서 있는 벚나무를 보며 '낼 아침이면 튀밥처럼 툭하고 터지겠네'라며 무심히 던지는 말. 모든 일상이 가벼워지는 봄.

  사람들은 집안 청소를 봄에 하지? 가벼움을 더하기 위해, 먼지를 털고, 옷도 정리하고, 물만 주며 살이 있길 바랐던 가엾은 화분들에게 용서를 구하며 가지와 잎을 정리하고 새 흙을 덮어주며 다시 살 용기를 주는 시간들.

  내 기억에 제일 먼저 피는 꽃이 너도바람꽃이나 복수초지만 양지바른 산 모퉁이를 올라가야만 한다. 뒷동산에서 쉽게 볼 수 있는 건 생강나무다. 뒤를 이어 산수유와 개나리가 피고, 목련이 피고, 진달래가 핀다.

 


   노랑은 계절의 심벌이다. 민들레 홀씨 같은 가벼움을 표현한다면 노랑으로 물들여야 한다. 어떤 화가가 봄을 그리면서 노랑을 빼고는 봄을 표현할 수는 없지 않을까.

  노랑은 가벼움이고, 행복이다. 바람도 없는 햇살 가득한 일요일 오후의 벤치이며, 거기 앉아 따뜻한 커피를 마시는 커플의 뒷모습이다. 첫걸음마를 시작한 아이의 해맑은 웃음이며, 황혼의 부부가 즐기는 오후의 한가로움이다.  

  한 눈 파는 사이 파란 하늘로 훌쩍 날아가 버리는 풍선이고, 손가락 사이로 빠져나가는 모래처럼 작고 부드러운 것이며, 작은 바위를 넘는데도 힘에 부쳐 졸졸졸 넘어가는 냇물이며, 나무 숲을 뚫고 한 줄기 레이저처럼 쏟아지는 햇살을 먼저 받아 피는 진달래 한 송이다.  


  꽃이 피였으니 이제 봄을 기다리지 않아도 된다. 벌써 시작된 것이다. 지금 눈 앞을 지나고 있는 것이다. 꽃은 피기 전에 설렘과 행복을 주고, 활짝 열리는 순간 삶이 시작된다. 산수유, 개나리, 목련, 벚꽃, 진달래 등등 이름 모를 봄꽃들과 함께 이 순간의 행복한 삶을 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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