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ADHD가 아닐 수도 있다고? SPD가 뭔데?
나는 어지럽다. 아주 자주 어지럽다.
눈앞의 사물이 흐릿하게 보여서 머리를 좌우로 세네 번씩 흔든다. 돋보기안경을 쓴 것 마냥 눈을 깜박깜박 거리기도 한다.
가끔 사람이 많은 거리에 발을 디딘 것뿐인데 마약에 취한 사람처럼 헤롱헤롱 거리다 길거리에 눕게 된다.
덜컹거리는 택시를 타면 구역질이 목 끝까지 차오른다.
빼곡한 글자를 보면 숨이 쉬어지지 않고, 풀리지 않는 비밀번호를 풀다 보면 짜증이 차올라 주먹으로 노트북을 부수고 싶어 진다.
안과에 먼저 가다
일반적인 증상은 아니기에 걱정이 앞섰다. ADHD 약을 먹는데도 왜 그러는 거지? 걱정스러워서 먼저 안과에 찾아갔다.
눈이 흐릿하게 보이는 것과 관련이 있을까 해서다.
약 30분 간의 정밀 검사를 받고 난 후 의사 선생님께서는 "눈 문제는 아니다"라는 결론을 하사해주셨다.
시력이 마이너스여서 아닐까, 근시일까 난시일까, 라식을 하면 어지럼증이 사라질까... 온갖 시나리오를 준비해 갔는데 눈은 안경을 안 써도 될 정도로 괜찮았다.
"어지럼증은 대부분 이비인후과 증상입니다. 한번 가보셔요."
이비인후과에 가다
다음날 이비인후과에 갔다. 어릴 땐 천식, 커서는 비염으로 수술까지 했을 정도니 - 이것이 원인일 것이다 라는 기대감으로 파란 입구 문을 들어섰다.
할머니가 간호사와 여담을 나누신 지 20여분이 지나고 나의 차례가 호명됐다.
정진 이비인후과 의사 선생님은 열정적으로 나의 상태를 봐주셨다.
여기 앉아봐라, 저기 앉아봐라 하시면서 나의 귀도 썩션 해주시고, 증상을 하나하나 살펴봐주셨다.
결론은 우리 몸의 균형과 평형감각을 잡아주는 전정기관의 오류가 있다는 진단이 나왔다.
전정기능에 이상이 발생하면 어지러움을 동반하고 균형감각을 잃어 움직임에 제약을 받게 된다고 한다.
초점을 잘 맞추지 못하고 흐릿한 상태의 사람들로 고통받았던 지난 세월이, 나쁜 시력 때문이 아닌 귀 안쪽에 위치한 전정기관 때문이었다니.
전정신경염
이날 나는 전정신경염을 진단받았다.
최근 다이어트를 한다고 복싱을 시작하고 일주일에 5kg를 뺐는데, 이 때문에 급격히 안 좋아진 것으로 보인다고 하셨다.
어쨌든 평소에도 전정기능 이상이 ADHD를 유발한 걸 수도 있으니까 열심히 찾아봤다.
그리고 ADHD 환자들이 사실 ADHD가 아닌 SPD, 즉 감각 장애를 앓고 있는 경우도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한 초등학교 선생이 '왜 이 아이는 ADHD도 아닌 것 같은데 비슷하게 소리에 예민하고, 정글짐에 올라가서 뛰어내리다 다치고, 길을 자꾸 잃어버릴까'라는 질문을 하다가 인간에게 오감 말고도 밸런스, 행동지시 등을 담당하는 다양한 감각기관이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된 후 쓴 글이었다.
영어가 편하시면 읽어보셔도 좋다
https://www.additudemag.com/slideshows/signs-of-sensory-processing-disorder/
ADHD에게 난독, 어지럼증, 참을성 부족 등이 있다는 사실은 널리 알려져 있다. 근데 전정신경염도 증상이 똑같다.
초점이 안 맞춰지고, 밸런스가 무너지니까 참을성이 없어지고, 예민해지며, 난독, 구토 등이 유발되는 것이다.
하나는 전전두엽, 하나는 달팽이관 근처 전정기관의 세 고리관.
어쨌거나 나는 병원 투어를 하는 중이다.
무엇이든 원인을 찾는다면 해결해보려 한다.
주변 사람들에게 화내면서 사는 인생이 되지 않기 위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