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흔한 번째 이야기
#20180402
지금도 활동 중인 유명 영어 강사분(A라고 칭하자)의 이야기다.
이 분은 다양한 분야에서 활동하면서 아주아주아주 단단한 팬층을 확보하고 있었는데,
일상 글을 올려도 좋아요가 수 백 개였고, 공유가 수 십 번 될 만큼 영향력이 컸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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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어느 날 B라는 사람이, A가 올린 글의 오류에 강한 적개심을 표출하며 비난하는 개인 메시지를 보냈다.
A는 이 분에게 사과함과 동시에 글의 오류를 수정했다.
하지만 문제는 그다음에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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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가 B와 나눈 대화를 캡처해서 업로드하면서,
'과도한 분노'에 대한 글을 적은 것이다.
캡처가 올라온 글에 대한 반응은 폭발적이었다.
과도한 분노에 대한 글 자체에 대한 동의도 있었지만,
그보다는 신상이 노출된 B에 대한 원색적인 비난이 가득했다.
그건 '광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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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일도 있었다.
2030대에 엄청난 팬덤을 동기부여 작가분(C라고 칭하자)이 영어 공부에 대한 방송인 D의 의견을
자신이 가진 생각과 근거에 기반 해 비판한 적이 있었다.
그 비판 자체는 아주 생산적이었다.
이번에도 문제는 그다음에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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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의 공격적인 비판에 동조한 팬들이,
D가 주장한 영어 공부에 대한 의견뿐만 아니라,
D라는 사람의 인격과 외모, 말투에 대한 원색적인 비난을 쏟아낸 것이었다.
D가 그 글을 봤을지 모르지만, 당사자가 아닌 내가 읽어도 그 광기가 '두려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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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미투 운동이 반드시 필요한 변화의 흐름이라고 생각한다.
나 또한 의식의 깊은 곳에는 '당연하다'라고 생각했던 것들이 있었고,
오랫동안 내재되어버린 의식과 관습을 고치기 위해서는 혁명적인 변화가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어중간한 좌회전, 우회전이 아니라, 과감한 U턴이 필요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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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동시에 두렵다.
미투라는 이름 아래 들어가 본질을 잊고 '광기'에 사로잡힌 사람들이 두렵다.
꼭 필요하고, 지금이 아니면 바꾸기 어렵기 때문에 더더욱 혁명적이어야만 하지만,
미투라는 이름으로 쌓여있던 분노의 칼을 마구잡이로 휘두르는 사람들이 두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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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존의 피해를 고발하는 것만이 미투가 아니다.
'Me too'라는 말에서 보듯, 미투는 혼자서 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이런 생각에 '함께' 동의해주는 것 또한 미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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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자들이 '이제 미투 때문에 남녀 회식도 따로 해야지'라거나 '어디 무서워서 말이나 하겠어?',
'회의도 남녀 따로 해야겠네'라고 말하는 순간, 미투는 변질된다. 그건 변화를 망치는 길이다.
잘못은 인정하고, 기존의 잘못된 생각은 뿌리뽑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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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이 모든 것이 '광기'때문에 망쳐져서는 안 된다.
작은 실수도 용납하지 않고, 사회적으로나 인격적으로나 파멸시켜야 한다는 식은
미투가 아니라, 또 다른 형태의 폭력일 뿐이다.
핵심은 잘못된 성차별적 인식과 관습을 바로잡고, 피해자들은 정당한 사과를, 가해자들은 법의 처벌을 받는 것이다.
그래야만 또 다른 피해자 없이, 제대로 된 개념이 자리 잡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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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그렇게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