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물여섯 번째 이야기
#20180126
눈 앞에 있는 것을 놔줘야하는 순간이 있다.
그게 평생동안 간절히 바랬더라도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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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대한민국 테니스 역사의 한 페이지에 기록된 날이다.
처음으로 메이저 대회 4강전에 우리나라 선수가 올라가다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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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과는..
기권패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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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론 처음부터 결과는 중요하지 않았다는 건 거짓말이다.
이 자체로도 멋진 성과였지만, 이겼으면 더 좋았을 것이다.
상대는 테니스 전체 역사에서 최고로 뽑히는 선수였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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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때로는 눈 앞의 결과보다 중요한 것이 있다.
그건 지금은 보이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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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존의 시합들에서 정현은 공이 벗어날 것 같아도 쉽게 포기 하지 않았다.
끝까지 달려서 공을 살려냈다. 그런데 오늘은 처음부터 쉽게 공을 포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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긴장한걸까? 아니면 어차피 안 되는 상대라고 포기해버린 건가?
이내 '메디컬 브레이크'가 걸렸고, 정현은 결국 게임을 포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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많은 사람들이 아쉬워했고, 누군가는 의지가 약하다며 욕하기도 했다.
하지만 이들이 잊고 있는게 한 가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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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현은 게임을 포기한거지, 테니스를 포기하지 않았다는 사실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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때로는 눈 앞의 결과보다 중요한 것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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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페인 산티아고 순례자의 길을 걸을 때,
두 발에는 20개가 넘는 큰 물집들로 가득했던 적이 있다.
지팡이가 없이는 걸을 수 조차 없었고, 한 시간 내내 걸어도 2km를 못 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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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사였던 한 친구가 내 발 상태를 보더니,
매우 심각하다며 지금 당장 길을 걷는 것을 포기하고 버스를 타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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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나는 길을 포기하는 대신,
오늘 걷기로 했던 거리를 줄이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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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 앞의 하루는 실패였지만,
30일이 지났을 때 나는 두 발로 800km를 걸어 산티아고에 도착할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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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현은 이제 막 스물 셋이 된 선수다.
정현에게는 미래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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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현은 오늘은 실패했지만, 내일은 성공할거다.
정현은 오늘 게임은 포기했지만, 테니스는 포기하지 않았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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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노래 #같이걸을까 #이적
피곤하면 잠깐 쉬어가 갈길은 아직 머니깐
물이라도 한잔 마실까 우리는 이미오랜 먼길을 걸어 온 사람들 이니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