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예 모네 2화

날씨는 핑계고, 아이스크림이 먹고 싶어서

by whatudomonet

2023년 03월 11일 토요일, 낮 최고기온 23도.


겨울은 내게 보통 4월까지 머문다. 이번 봄은 겨울에게 작별인사도 하기 전에 찾아왔다. 봄의 햇살은 그 자체로 싱그럽다. 인사도 없이 간 겨울이 애석하기도 잠시, 가벼워진 옷차림과 따스하게 불어오는 바람에 발걸음도 신이 난다.


겨울과 봄이 뒤섞이는 이 시점을 좋아한다. 노랗고 푸르게 차오르는 공기와 햇살에 나도 모르게 웃게 된다. 두꺼운 패딩을 입고 겨울의 마지막을 만끽하는 사람, 찾아온 봄을 반기며 가벼운 옷차림을 한 사람. 봄을 맞이해 꽃봉오리를 한껏 부풀린 꽃과 나무, 기다리지 못하고 꽃을 틔워버린 설렘. 정돈되지 않고 어수선하지만 그런대로 아름답고 싱그럽기만 한 이 0.5 계절이 참 좋다.


2년이 넘도록 계속된 이명은 몸의 일부가 됐다. 특히 조용한 순간에 자기주장이 강해진다. 검사결과 아무 이상이 없다고 한다. 원인 모를, 한마디로 스트레스성 이명이 아닐까. 관심받기를 좋아하는 이 아이는 자신에게 집중하면 집중할수록 몸집을 부풀린다. 이럴 때 가장 좋은 방법은 관심 주지 않기. 그래서 도예를 할 때는 이명이 들리지 않는다. 고요하지만 손 끝에 닿은 집중력들이 잠시 이명을 잊게 한다.


날씨도 좋은데 2주 만에 간 공방에 2차 가마를 끝낸 도자기 하나가 나와있었다. 와인도 안 마시면서 만든 와인잔. 난 이미 이 아이가 1차 가마에서 나왔을 때 마음을 먹었다. 이건 더 이상 와인잔이 아니다. 이건 트로피다.


선생님: 도자기가 크고 바닥이 얇아서 조금 휘었어요.

나: 괜찮아요. 그래도 서 있는 게 어디예요.

선생님: 하하하 호호호


오랜만에 도예 메이트가 생겼다. 이름도, 얼굴도 모르지만 서로에게 옆자리를 내어주는 반익명의 존재. 인사를 하는 사이도 아니고 오늘 처음 봤지만 함께 하는 사람이 있음에 약간 신이 났다. 도예를 하고 싶어서 요거트볼 같은 걸 집에서 점토로 만들어 보셨다고 한다. 나처럼 도예를 좋아하는 사람이 있다니!


내가 해야 할 일은 두 가지. 하나는 선인장 얼굴 원, 투의 결을 사포로 매끄럽게 만든 후 채색하기, 어버이날 기념 머그컵 만들기. 나는 선인장을 좋아한다. 그래서 사람과 선인장을 조합한 도자기를 디자인하거나 일러스트를 그리는 걸 즐긴다. 선인장 원, 투도 선인장 시리즈 중 한 자리씩 차지하고 있다. 선인장 모자를 쓰고 있는 사람, 선인장 머리를 한 사람 등 그 형태는 다양하다. 선인장 ‘원’은 길쭉한 트레이로 눈이 동그랗게 튀어나와 있다. 고등학교 때 친구가 터키 여행을 갔다가 사온 ‘악마의 눈‘을 하고 있다. 선인장 ’투‘는 합 형태로 보물을 숨겨놓기 좋다. 내가 만드는 선인장들은 초록색이 아니다. 누가 그랬는가 선인장은 초록색이어야 한다고. 보기만 해도 시원해지는, 봄에 잘 어울리는 터키블루. 어쩜 색 이름도 터키블루일까. 채색하는 데 걸린 시간은 30분.

이제 머그컵 세트 만들기만 남았다. 어버이날 하니까 원앙이 떠올랐다. 맞물리는 머그컵. 흙은 다른 날과 다르게 말랑말랑하다. 사람마다 선호하는 흙의 점도가 다를 테지만 나는 적당한 물기가 있는 말랑한 흙을 좋아한다. 어릴 때 학교 운동장에서 물을 부어가며 흙을 만졌던 기억 때문인가. 손에 많이 묻지만 코일을 쌓아 올릴 때 갈라짐이 없고 복잡한 곡선을 만드는데 좋다. 한 단을 쌓아 올리고, 두 단을 쌓아 올리고, 세 단을 쌓아 올리다 보니 어느새 13시. 이제는 우리가 헤어져야 할 시간-. 고요한 적막 속에서 한쌍의 잉꼬 얼굴들에게 손잡이르르 달아주지 못했다. 잉꼬 얼굴들에 대한 이야기는 다음 주에 계속됩니다...


와인잔이었는데 와인잔이 아니고 트로피입니다를 들고 나오는데 날씨도 좋으니 기분도 좋았다. 와인잔, 아니 트로피가 나온 기념으로 소소한 파티를 하고 싶었다. 날아갈듯한 발걸음으로 31가지 맛을 고를 수 있는 아이스크림 매장으로 향했다. 나의 최애맛은 바로 민트와 초코가 만나 한쌍을 이뤄 아름다운 모습을 하고 있는 ’민트초코‘와 바람과 함께 사라지고 만 치즈를 그리워하는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 ‘이다. 늘 가족끼리 먹으면 오빠가 좋아하는 맛으로 고르는데(왜냐구요? 오빠는 슈팅스타를 좋아하거든요. 저도 물론), 내돈내산이니 내 맘대로 3가지 맛을 골랐다. 초코숲에 나무가 퐁당 빠진 ’초코나무 숲‘과 함께. 아이스크림이 녹을까 걱정돼(드라이아이스도 넣었으면서 별 걱정을 다 한다) 빠르게 집으로 돌아와 트로피에 아이스크림을 옮겨 담고 여-유롭게 아이스크림과 만남을 청했다. 아주 좋은 만남이었고 아직도 트로피만 보면 이 날의 시원한 온기가 떠오른다. 파인트를 사 4번은 더 먹었지만. 행복이 뭐 있나, 이런 게 행복이지. 내가 좋아하는 것들로 하루 휘감기.


겨울과 봄이 스치는 0.5 계절에 나는 행복을 맛봤다. 시간을 써서? 아니, 내가 좋아하는 것을 하면서.

keyword
작가의 이전글도예 모네 1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