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글쓰는 수다쟁이 May 01. 2020

인라인 스케이트

발 냄새마저 좋던 그때

가장 즐거웠던 추억은 항상 어린 시절에 머물러있다. 아빠와 함께여서 가장 즐거웠던 추억이 그렇다.

이렇게 ‘아 그때가 좋았지’하고 자꾸 회상하게 되는 건 아마 지금이 가장 외롭고 힘든 시기이기에 그럴 것이다.

그나마 어린 시절의 행복한 추억으로 먹고살 수 있어 얼마나 다행인가.


그 추억의 한편에 크게 자리 잡은 것 중 하나가 바로 ‘인라인 스케이트’다. 10살 무렵 전국적으로 인라인 스케이트가 유행이었다. 그 유행이 어디에서 시작됐는지는 기억이 나지 않는다. 하지만 인라인 스케이트를 타고 작은 읍내 골목을 누비던 꼬맹이들이 기억이 난다.


아빠와 함께 인라인 스케이트를 타기 시작한 건 더위가 시작될 무렵이었다. 둘이 같이 체육사에 들러 가장 좋은 인라인을 구매했다. 그때 당시 한 세트에 10만 원을 웃도는 스케이트를 구매했으니, 여간 좋은 게 아닐 수 없었다. 그 쨍한 오렌지 빛깔의 스케이트화가 아직도 생생하다.


내가 살던 지방 소도시는 금강 줄기가 흐르는 곳이었는데 강변 다리에 가면 산책로에 인라인 스케이트를 타는 사람들이 무척 많았다. 아빠와 나는 매일 저녁 그곳에 가서 엄마 가게가 문을 닫는 시간까지 인라인 스케이트를 탔다. 가장 먼저 도착해 가장 늦게까지 그곳에 있었다. 매번 인라인 스케이트를 타고 집에 가면 밤 10시를 넘기곤 했다.


아빠는 당뇨병이 있어 체중 조절을 위해 인라인 스케이트를 타기로 마음먹었다. 나는 그런 아빠의 가장 좋은 ‘인라인 메이트’였다. 아빠는 항상 강변 다리 10바퀴를 도는 게 목표였다. 10바퀴를 도는 동안 나는 다리 위에서 만난 동호회에 끼어들어 여러 인라인 스케이트 스킬을 배웠다. 어떤 때는 아빠와 10바퀴를 채우며 시합을 하기도 했다.


그때의 바람과 땀냄새, 아빠와 나의 숨소리가 눈에 선하다.


모든 것이 즐거웠다. 인라인 스케이트를 타면서 정말 많이 넘어졌는데 한 번도 울지 않았던 거 같다. 스케이트를 타다 미끄러져 난간에 쓸렸을 때의 상처가 흉터로 진하게 남아있다.

.

.

.

이제 더 이상 다치지 말라며 보호장구를 세게 채워주던, 스케이트를 다 타고 땀범벅이 되어 서로의 발 냄새를 맡았던, 집에 가는 차속에서 엄마에게 얼마나 재미났는지 자랑하던, 밤늦게 도착해 숙제를 매일 까먹고 잠이 들던, 매일 하루 중 인라인 스케이트 타는 시간을 가장 기다리던,

그런 날들이었다.



이 글은 이제 더 이상 그 시절로 돌아가지 못해 쓰는 글. 아빠와 나는 그저 조금 더 나이 들었을 뿐인데 같이 스케이트를 타던 강변 다리에 그 사람들은 다 어디 갔는지. 이제 그 강변 다리는 그저 강을 건너는 다리가 되었을 뿐이다.  내가 자라서 집을 떠나오는 사이 정말 많은 것이 바뀌었다. 새길이 나고 더 크고 좋은 다리가 놓였다. 이제 우리는 더 이상 그 다리를 건너지도 지나가면서 마주치지도 않는다.


그래서 그때의 그 ‘인라인 스케이트’가 더 생각나는지도 모른다.


사족.

이 글은 늙은 아빠에게 보낼 선물. 그에게 보내는 나의 어린 시절 감상.

매거진의 이전글 의심하면 이루어진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