순간 일렁이는 옅은 파도처럼
젖은 땅냄새가 향기로이 느껴지는 어느 날처럼
공활한 가을 하늘이 막연하게 느껴지는 어느 때처럼
우리의 마음도 그러하다.
옷깃을 여미게 하는 짙은 단풍 아래
연민과 고독에 손 내미는 모습이 유난스러울 수도 있겠으나
우리는 그 어느 곳에도 그저 머물지 않고 흘러가니
지나치게 그리워하지 않아도 되겠다.
언젠가는 시간이 지나가는 길목에 서서
캄캄한 터널을 하염없이 걷는다.
우리는 우리 것이라고 생각했던 것 역시
끝내 내려놓기 마련이니
힘겹게 쥐려고 애쓰지 않아도 되겠다.
이제 우리는 사계절을 모두 안아들었으니
봄에 피어나 사랑이 될 꽃을
여름에 내리쬐는 가열찬 햇볕을
가을에 시들어 바스락한 낙엽이 될 시간을
겨울에 소복히 내린 따뜻한 첫눈을
자욱한 안개 위에 느지막이 볕이 들 그 시간들을
그저 바라보아도 되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