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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필영 Jan 13. 2019

아내가 힘든가 보다.

아내는 울 때도 예쁘다.

열두 평 오피스텔에 살고 있는 우리는 아일랜드 식탁, 싱크대가 'ㄷ'자로 되어 있는 형태이다. 싱크대, 냉장고 버너 그리고 식탁이 일체형이라서 참 편리한 것 같다. ㄷ 이 디귿자에 끝트머리에는 노트북을 올려놓고 쓰고 있다. 노트북은 3년 정도 됐고, 당시 살 때만 해도 300만 원 정도의 돈을 지불했다. 지금 얼마나 할까 궁금해서 찾아봤지만 단종되어 나오지 않는다. 그래서 중고로 찾아봤다. 70만 원에서 110만 원까지 봤다. 3년 정도 사용하고 100만 원에 팔면 적당한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식탁에 얹어놓은 노트북은 내가 맘 편하게 눈을 붙일 곳이다. 아내가 출근하고 나면 컴퓨터를 켜고 기사를 검색하거나 게임을 한다. 일자리를 검색하기도 하고 마땅한 일자리가 나오면 이력서를 작성하기도 한다. 유용하게 사용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요즘 온세계 지식의 총체, 지식 선생으로 생각하고 있는 유튜브로 일본어를 공부하기도 하고 역사를 공부하기도 한다. 역사에 심취에 있어 예전에 보지 않았던 사극을 다운로드하여 보기도 한다. 보다가 궁금한 것이 생기면 네이버 지식사전을 열어 찾아본다. 이들이 후대에 어떻게 평가받고 있는지도 궁금하고 재미있다. 이렇게 사용하는 노트북이 아일랜드 식탁에 올려져 있는 것이다.


아내는 4시 40분쯤 퇴근하여 집에 오면 5시 반쯤 된다. 그때부터 저녁 준비를 해서 먹으면 1시간에서 1시간 반 정도 소요되고, 저녁 7시가 되면 산책을 하던지 아니면 소파에서 TV를 켜고 시청한다. 8시간 되면 나는 JTBC 뉴스를 보며 손석희 님을 만나고 뉴스가 끝나는 9시 반이 되면 아내는 씻고 잘 준비를 한다. 아내가 씻으러 화장실에 들어가면 난 다시 아일랜드 식탁 앞에 앉는다. 앉아서 스타크래프트 리마스터를 실행한다. 대략 한게임 정도 할 수 있는 시간이 나온다. 아니 조금 모자라다. 하지만 게임을 시작하면 무아지경이 되어 아내가 샤워하고 나온다 하더라도 멈출 수 없게 된다. 하지만 난 사람이랑 게임하지 않는다. 인공지능 컴퓨터랑 게임을 한다. 테란 종족을 시작한 지 4개월 정도 되었지만 아직도 초보나 마찬가지이기 때문이다. 사람이랑 해야 실력이 느는 것을 알고 있지만 져서 기분 나쁜 게 더 싫다. 승률은 10% 정도 될까? 하지만 4개월이란 시간은 조금은 자신감을 붙게 했다. 그렇다고 백수가 된 이후 게임만 한 것은 아니다. 그래도 실력을 향상됐다. 그래서 오늘은 1:2로 컴퓨터 2명? 과 대전했다. 평소 1:1로 게임할 때 아내가 샤워실에서 나오면 게임도 막바지에 이르기 때문에 아내가 나오면 게임을 멈추어 놓는다. 컴퓨터와의 게임의 이점이다. 하지만 2:1로 명승부를 펼치는 지금 이 시간 아내가 나왔지만 승부를 봐야 하는 순간에서 절대 멈출 수 없어다. 하여 아내는 소파에서 TV를 보며 머리를 말리다가 다시 화장실로 들어가 본격적인 드라이기오 머리를 말린다. 이 시간도 대략 10분 정도이다. 이때까지는 끝냈어야 했다. 그래야 한량으로 보이지 않을 것이다. 하루 종일 집에 있으며, 컴퓨터를 할 텐데 그때 게임을 하지 왜 내가 집에 왔을 때에도 게임을 해야 한다 말이냐며 나에게 핀잔을 줄 수도 있다. 그러지 않을 착한 아내라는 걸 알고 있으니 더더욱 게임은 아내가 있는 자리에서 하지 않으려 하는 것이다. 


하지만 향상된 실력으로 2:1로 승부를 겨루는데 집중하다 보니 아내가 모든 자기 전 행위를 마치고서도 나는 게임이 끝날 때까지 15분 정도 더 소요되었던 것으로 생각된다. 아내는 조용히 소파에 앉아 TV를 보고 있는 것 같았지만 내가 게임이 끝난 후 아내에게 달려갔을 때 아내는 나의 시선을 외면했다. 당연지사 게임 때문이었을 것이다.라고 생가했지만 게임 때문이 아니라고 한다. 여러 차례 물어봤는데도 아니란다. 그러면서 눈물을 흘린다. 갑작스러운 눈물에 얼른 티슈를 뽑아 눈물을 닦아주었다. 평소 아내가 울 때를 생가하면 표정이 일그러지며 애기가 되어 오열을 한다. 입이 삐죽 튀어나오고 눈매가 찡그려지며 미간에 주름이 잡히며 훌쩍거림이 아닌 엉엉 이 되고 만다. 하지만 오늘은 나름 절제하는 듯 보인다. 빵 터져버리지 않고 안으로 머금고 있다. 정말 내가 게임해서 우는 것이 아닌 듯 보였다. 그리고 화, 목에 드리는 우리 둘만의 부부 예배를 시작했다. 먼저 사도행전 11장의 말씀을 5절씩 돌아가면서 소리 내어 읽었다. 역시 목소리에는 힘이 없었다. 30절까지 돼있던 것으로 기억한다. 내가 1절에서 5절, 아내가 6절에서 10절, 그리고 다시 내가 11절에서 15절, 이렇게 이어지다가 결국 아내가 30절로 마감을 했던 것으로 기억했다. 속으로 '딱 들어맞네'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다음 순서는 기도제목을 나누고 대표기도를 한 후 주기도문을 왼다. 기도제목은 몇 달째 같다. 내 취업과 건강이 화두가 된 것이 벌써 3개월이 됐으리라. 취업이 늦어지면서 스트레스로 소화기능이 약해졌다. 아내가 벌어온 돈으로 날 먹여 살린다고 생각하니 새신랑이 이러면 되나 하는 자괴감과 면목이 없다. 사직서를 쓸 때 아내는 눈물로서 바짓가랑이를 잡았지만 사직서를 던지고 올 때는 편안한 표정으로 나를 위로했다. 울지 않았다. 이런 상황을 분명 예상했을 것이다. 언젠간 그렇게 얘기했던 것으로 기억한다. 이런 아내의 배려심이 나를 더 옥죈다. 만약 내가 결혼하지 않은 솔로라면 부모님 집에서 살며 아무런 죄책감 없이, 부담감 없이 하고 싶은 걸 다 하면서 살았을 것이다. 하지만 지금은 그렇지 않다. 아랫배의 저장탱크에서 밑으로 내려보내질 않는다. 카비진, 그리고 집에 상비하고 있던 소화제, 그리고 급체할 때 약까지 먹었는데 기별이 없다. 급체할 때 먹는 약은 3개로 이뤄져 있다. 알약, 그리고 물약, 캡슐약 이렇게 3개를 한 번에 2회에 걸쳐 먹었는데 아직도 요지부동이다. 


다시 돌아가서 아내는 기도제목을 나누는데 평균 3개의 기도제목을 말한다. 나의 빠른 취업, 그리고 하고 싶은 기도제목을 말하곤 한다. 그냥 취업이라고 해도 되지만 속마음이 만영되었는지 항상 기도제목을 말할 때 '빠른 취업'이라고 말한다. 하지만 오늘은 한 가지 기도제목만 말했다. "직장에서 스트레스받지 않고 편안했으면 좋겠다." 그리고 기도를 시작했다. 내 기도제목은 세 가지였지만 아내는 내가 기도를 마치고 아내의 대표기로를 기다리는 순간에도 간절한 기도를 하고 있었다. 아내의 학교에서는 도대체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 걸까? 직급을 달고 일한 후 예전과 같은 편안함이 없다. 여자들이 가득한 초등학교 영어센터에서 어떤 암투가 일어나고 있다는 것을 오래전부터 얘기했다. 나는 아주 흥미진진하게 듣고 코멘트를 알아주었다. 하지만 이제는 내가 흥미로만 볼 수가 없는 상황인 듯하다. 내가 빨리 일을 시작하면 일을 그만두라고 했다. 그때가 언제가 될지 모르지만 허세를 부렸다. 


직장에서는 서로 싸우고 견제하는 두 무리와 방관하는 더 큰 무리가 있다. 서로 싸우는 한 무리는 관리자 무리, 다른 한 무리는 관리자를 아랑곳하지 않는 무리다. 나는 당연히 아내의 편이기 때문에 관리자 무리와 대척점에 있는 안하무인 무리가 보이는 행태에 대해서 좋지 않은 시선을 가지고 있다. 내 성향으로는 위정자의 편이 아닌 민중의 편이어야 하지만 결혼은 그렇지 않다. 또한 아내가 누군가에게 상처 입히고 모질게 할 사람이라는 것을 잘 알기 때문에 아내를 두둔하는 것이기도 하다. 아내는 항상 고민한다. 그들 중에도 크리스천이 있을 것인데 어째서 패를 나누고 당을 짓고 이간질하고 험담을 하는가? 왜 약한 고리를 쳐서 끊으려 하는가 하고 말이다. 하지만 하나님은 이제 즉결심판을 하지 않으신다는 것을 알고 있다. 그래서 악인이 배불리 떵떵거리며 잘 살 수 있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이들은 같은 신분의 기간제 교사이지만 효율적인 운영을 위해 매니저 한 명과 팀장 두 명으로 나누었다. 직급이 생기니 상하관계가 되었고, 아래 직원들이 윗 관리자들에게 불만을 품으며 담합하여 작당을 하고 뒷담화를 해서 나머지 방관자 무리를 자신의 무리로 끌여들이려는 행동을 하고 있고, 아이들을 가르치는 자신의 임무를 망각한 채 그 외적인 일에 에너지를 쏟고 있는 것을 관리자 3명이 못마땅해서 이들의 관리를 어떻게 할 것인지를 매번 고민하는 것이다. 아이들을 가르치고 레슨을 준비하며 그 외에 자투리 시간들을 활용해서 기싸움을 해야 한다는 사실이 모두를 숨 막히게 하는 것이다. 하지만 싸움에 능한 자가 있는 반면 싸움이 너무 싫은 사람도 있는 법이다. 그중 아내는 싸움에 관여하고 싶지 않은 사람이다. 하지만 그는 직급을 달고 매니징을 하고 있다. 발을 빼려야 뺄 수 없는 상황인 것이다. 그래서 머리가 아프다고 하고 최근에는 잠을 충분히 잤음에도 불구하고 눈 핏줄이 터져버린 상황까지 왔다. 그리고 오늘 홀로 눈물을 안으로 머금고, 내가 게임한 것을 반성하게 했다. 실상은 그게 아니었지만.


"한 명이 벌어도 살 수 있어. 그러니 내가 일하게 되면 일을 그만둬"


아내의 직장에서 어떤 일이 벌어지는지 내가 모를 리 없다. 사회복지현장에 여자가 얼마나 많은데 내가 모르겠냔 말이다. 물론 경험도 있다. 그런 이유로 일을 그만두기도 했다. 그래서 지금 한량이 되었지만.


무리와 파당으로 자신의 살길을 찾는 무리들. 누군가를 죽여야 자신이 살 수 있으니 말이다. 아무리 좋은 생각과 비전이 있는 조선시대 사림도 부당의 중심에 있지 않았던가? 아내 직장의 매니저는 정신과 약을 먹고 있단다. 이것이 비단 직장에서의 일 때문이겠냐마는 내 느낌이 맞을 것이다. 직장에서의 거의 전부다. 누군가 무리 져 자신을 욕하고 나약하고 못난 관리자로 만든다면 어떤 기분일 들려나. 그렇게 만든 사람들도 그 위치에 놓아 똑같은 경험을 하게 해야 한다. 


아내 때문에 이렇게 열을 발산하는 것은 아니다. 난 친일파들, 그리고 이승만, 박정희, 전두환, 노태우, 이명박, 박근혜 때문에 대체로 화가 나있다.


아내가 힘들어하는 것 내가 어떻게 도울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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