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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필영 Jan 13. 2019

우리가 믿는 신은 정말로 우리를 사랑하는가?

철부지 어리광

  아내는 내가 취업되기를 소원하는 마음으로 하늘에 기도를 올린다. 4개월 동안 나름의 노력에도 최종면접에서 수차례 떨어지며 낙심한 나를 위해 위로했던 아내는 마음 한 켠에 응어리져있었음을 오늘 새롭게 알았다. 그걸 몰랐냐고 핀잔을 들을 수도 있지만 아내의 행동이 그럴만 했다. 아직도 철이 없는 나는 아내의 마음을 너무 가볍게 여겼다.


  어제 페이스북을 보다가 가입해 놓은 음식 페이지에서 '식욕이 돌아오는 비빔국수'라는 제목의 동영상 레시피가 나왔다. 이를 보자마자 좋아요 하트를 누른 후 공유했다. 퇴근한 아내에게 영상을 보여주며 말했더니 내일 해 먹을까?라고 물었다. 대답은 당연한 것이었다. 퇴근한 아내를 위해 한상차림을 해놓아야 하는, 아니 밥이라도 지어놔야 한다는 절박한 상황임에도 불구하고 심적으로 고생한다는 명분을 내세워 아내의 사랑을 듬뿍 받고 있다. 아내는 완벽한 요리 습득 능력을 보유하고 있다. 레시피를 따라 하면 똑같은 맛이 난다는 것은 어찌 보면 당연할 수도 있으나 필자가 자취 시절에 레시피를 따라 하려고 다이소에 가서 계량컵, 계량스푼, 저울 등의 철저한 조리도구를 구입하여 레시피대로 따라 했을 때 그 맛이 너무도 빗나간 경험을 보면 그 맛이 영상과 똑같이 나온다는 것은 기적과 같은 일이라고 생각한다. 기적은 좀 오바니 대단한 일이라고 해두겠다. 


  자취 시절의 그 조리도구는 그 한 번의 요리 이후 사용하지 않는다. 그때 따라 했던 것이 만능 양념장이다. 이건 양념장 레시피가 잘못됐다고 말할 수 없다. 이건 인터넷에서 본 것은 아니며, 서점에서 요리책을 뒤적거리다가 발견한 양념장 비법은 이거 하나면 내 자취생활에 천국을 맛볼 수 있겠다는 생각으로 구입한 천하의 비책이다. 괜한 말을 하는 것이 아니다. 오픈되어 있는 자취요리 50선, 100선하는 책이 아니다. 페이지 수가 50페이지 정도뿐이며, 이렇게 페이지수가 별로 없다는 것은 정말 세상에 공짜로 내줄 수 없는 비법이라는 것, 내용을 볼 수 없도록 비닐로 씌워놓은 누구도 쉽게 들여다보지 못하게 만드는 책이다. 이런 비책을 따라 하고도 양념장 하나를 못 만들었다니 역시나 아무나 할 수 없는 것이다. 아내를 치켜세우려고 이러는 것이 다니다. 아내가 레시피를 따라 했던 모든 음식이 맛있었다. 갑자기 생각나는 건 내 양념장은 숙성의 과정이 있었다는 것이다. 3일 정도 뒤에 열어보라고 했었다. 발표의 과정에서 무슨 일이 있었던 것인가 생각해본다. 어찌 됐건 실패다. 


  아내는 내가 먹고 싶다는 것은  별 대수롭지 않게 재료를 섞어 뚝닥 만들어 내놓는다. 오늘도 윤기가 좔좔 흐르는 비빔국수를 먹고 일찌감치 휴식타임에 들어섰다. 아내는 미리 잘 준비를 마치고 금일 하루도 지켜주신 하늘의 신에게 드리는 감사의 의식을 취한다. 거창하게 말했지만 개신교식 가정예배다. 아내의 왼쪽 눈 끄트머리에 충혈된 혈관들과 얇을 막이 응어리진 것처럼 보이는 염증도 아닌 무언가 때문에 몇 번의 한숨을 쉬었다. 내일 일을 마치고 병원을 가볼 테지만 그동안 한 번의 눈 수술, 그리고 탈장수술을 한 경험으로 또다신 수술을 해야 할 것만 같은 두려움으로 인한 한숨이었을 것이다. 그리고 일전에 잘 보이기 위한 눈 수술을 했는데 지금의 안질환으로 인해 시력이 감퇴될까도 두려워하는 듯하다. 실제로 야간 운전은 야맹증으로 인해 꺼리고 있다. 심각한 정도는 아니지만.


  둘이서 간절한 예배를 드린 후 둘이 나란히 침대에 누워 얘기한다. 아내가 먼저 신앙 얘기를 꺼냈다. 복잡한 심사로 인해 아내가 먼저 방으로 들어가 세상 편하게 누웠는데 내가 따라 들어가 누워있던 상황에서 꺼낸 얘기였다. "어제 질문의 해답은 찾았어?"

  

  나의 간증은 언제나 내 힘으로 세상을 살아오지 않았다는 것이다. 인지기능이 있음을 확인한 대학시절부터 줄곳 해왔던 나의 레퍼토리다. 모태신앙인 나를 위해 기도해주는 사람들이 주변에 많다는 것이다. 부모님, 친척들, 친구들. 써놓고 보니깐 많은 것도 아닌 듯하네. 하지만 소위 말해 영빨이 센 사람들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그 사람들의 기도로 인해 내가 생존해 있다고 떠들고 다녔던 것을 아내에 진즉에 말해 아내도 충분히 알고 있다. 하지만 어제 내가 읽은 성경구절로 인해 나의 희망이 사라졌다는 고백을 아내에게 했다. 그 성경구절은 에스겔서다.



"비록 노아, 다니엘, 욥 이 세 사람이 거기에 있을지라도 그들은 자기의 공의로 자기의 생명만 건지리라 나 주 여호와의 말이니라. 가령 내가 사나운 짐승을 그 땅에 다니게 하여 그 땅을 황폐하게 하여 사람이 그 짐승 때문에 다니지 못하게 한다고 하자. 비록 이 세 사람이 거기에 있을지라도 나의 삶을 두고 맹세하노니 그들도 자녀는 건지지 못하고 자기만 건지겠고, 그 땅은 황폐하리라 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이 말씀을 보고 단편적으로 판단했다. 성경에서 믿음의 사람으로 알려져 있는 인물들, 노아, 다니엘, 욥 이 세 사람이 이스라엘의 죄로 인해 하나님의 진노의 심판이 있을 때 그 세 믿음의 사람도 자기밖에 구원할 수 없다. 그들의 자식도 도울 수 없다로 받아들였다. 물론 난 신학자도 아니고 목사님도 아니다. 그냥 성경을 역사서로 이상으로 보지 못하는 좁은 시야를 갖고 있다. 이런 내가 이 구절을 읽고 '이제 난 끝인가?'라고 생각했다.


  부모님을 비롯한 내 주위 사람들의 기도가 하늘로 올라가는 모습을 그린다. 하늘에서 비가 내리는 것처럼 비가 큰 방울처럼 커지거나, 북극의 오로라처럼 신비로운 기운이 하늘로 올라가 하나님께 드려진다. 그 기도를 받은 하나님은 그들로 인해 어찌할 수가 없다. 저놈이(필자) 정말 나쁜 짓도 많이 하고 몹쓸 놈인데 너희의 간절한 기도 때문에 저를 살려둔다.라고 공표하며 나는 지금껏 살아있는 것이라고 생가했다. 그래서 난 가인의 표식 같이.  아니, 오래전 광고이지만 홍삼을 먹으면 내 몸에 보호막이 홍삼을 먹은 인간 물방울들이 거리를 지나나디며 미세먼지와 같은 환경오염에서 보호받을 수 있다는 큰 비눗방울에 들어 있는 사람들처럼 나도 그렇게 보호받고 있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이 성경구절은 내가 들어가 있는 보호막 비눗방울에 바늘을 꽂았다.


  백수생활 4개월이 하나님의 저주라고 어리광 피우는 내가 한숨 쉬며 이제 어떻게 할 것인가에 대한 고민을 하기 시작했다. 한 침대에 나란히 누워 물어본 아내의 질문에 난 대답했다. "구약을 읽지 말고 신약을 읽어야겠어." 나름 해결책이라고 말한 것이다. 구약의 시대에서는 도저히 내가 살아남을 수 없어. 예수님 태어난 이후의 신약을 에서 살길을 찾아야겠어.


  난 실직 4개월로 인해 우리가 믿는 신은 정말로 우리를 사랑하는지 따져 물었다. 나를 좋은 곳에 취업시켜주시면 내가 신으로 인정하고 잘 믿겠습니다라는 나의 주장과 나를 제대로 믿어라 그러면 더 좋은 걸 주겠다고 하는 하나님과의 기싸움이다. 성경에서 천사와 씨름했던 인물이 생각났다. 그의 대퇴부는 아작 난 걸로 기억한다. 내 허벅지를 바라본다.


  아내한테 이런 얘기를 하니 아내의 시름을 깊어진다. 그리고 두 가지 고민거리 때문에 얼굴에 그림자가 드리운다. 직장에서 치고박고만 안 했지 패를 나눠 서로를 죽이려고 하는 패싸움에 휘말려 눈 핏줄까지 터져가는 상황에 내가 때아닌 어리광을 피고 있으니 말이다. 아내는 내가 일을 구하면 그만두고 싶다고 말했다. 다고 그러라고 자신 있게 대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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