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매거진 실직일기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필영 Jan 13. 2019

글을 쓴다고 책을 읽는다고

글쓰기 귀찮아서 쓰는 아무 말 대잔치

  글을 쓴다고 책을 읽는다고 좋은 사람이 되거나 올바른 사람이 되는 것은 아니지 않은가? 내가 이렇게 말하면 누군가는 나에게 "넌 글을 꾸준히 쓰지도 않고, 책을 많이 읽지도 않았으면서 허튼소리 한다"라고 할지 모른다. 그럼에도 말한다. 글을 쓴다고 책을 읽는다고 좋은 사람이 되거나 올바른 사람이 되는 것은 아니지 않은가?


  책을 많이 읽어 머리에 많은 것을 집어넣고 남들이 부러워하는 자리에 올라 사람들 위에 군림하는 자, 비상한 머리를 가지고도 시대의 아첨꾼이나 사기꾼이 되기도 하며, 자신의 영달을 위해 힘없는 사람들의 등을 밟고 끝도 없는 하늘 향해 돌진하는 자들의 기초는 책이 아니었을까?


  또한 글을 쓴다고 그 글이 자신의 것이 되는 것이 아니며, 어디선가 본 듯한 글들로 자신의 공백을 메우기를 수십, 수백 차례. 이제 이게 남의 것인지 자기 것인지 구분이 안되어 양심이 쓰리지 않고 스스로 대단한 글을 썼다고 누군가에게 슬쩍 내비치고 싶은 욕망에 우연을 가장한 고의로 자신을 드러내려 하고, 그 글을 본 사람들의 칭찬에 그 글의 자기의 생각인양 이번엔 입으로 그 글과 한치의 다름도 허락되지 않게 읊조리며 이 모든 말이 내가 가지고 있는 지혜인 양 목을 양옆으로 꺾어 보이며 자연스러움을 더하지 않는가?


  모든 게 케이스 바이 케이스라며 주제 없이 아무 말이나 써 내려가다 오늘의 글쓰기의 제목을 달았다. 글을 몇 자 적고 나니 반대의 논리도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 내가 어떤 인간이 될는지 케이스 바이 케이스라면 이건 모험을 걸만도 하다고 말이다. 책을 읽고 글을 씀으로 해서  모두가 좋은 사람이나 올바른 사람이 되는 것은 어차피 불가능하며, 그냥 약간의 가능성에 투자할 수는 있지 않겠느냔 말이다. 그럼 확률상 얼마나 될까? 책 좀 읽는다고 아는척하지 않고, 글 좀 괜찮게 썼다고 자랑하고 싶어 근질거리지 않는 초연함 말이다. 그리고 부정한 세상과 억눌린 자들의 눈물을 바라보며, 혁명을 말할 수 있는 사람으로 성장할 수 있는 확률 말이다. 그것이 10프로만 된다고 하더라도 난 읽고 쓰겠다. 누군가 말해주시오. 확률이 얼마나 되는지를 말이오.



매거진의 이전글 실직의 5단계-수용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