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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서정 시인 Aug 29. 2023

 니체, 정신 3단계란?

니체가 말하는 정신의 세 단계는 '낙타'의 정신, '사자'의 정신, '아이'의 정신이 있다. 낙타는 무거운 짐을 잔뜩 짊어지고 사막 한가운데로 걸어가는 낙타 떼들의 노예근성을 빗댄 표현이다. 낙타의 삶을 사는 사람들은 기존 사회 체계를 아무런 의심 없이 당연스레 받아들이면서 타성에 젖은 삶을 사는 사람들이다.


남들이 말하는 성공의 조건을 갖추기 위해 좋은 대학도 졸업했고 예쁜 여자와 결혼했고 사람들이 다 부러워할 만한 부도 이뤘지만 이 삶이 행복하냐는 별개의 문제이다. 행복의 조건은 자기 스스로가 설정한 가치에 따라서 창조적인 삶을 살아갈 때 비로소 도달할 수 있는 지점이다. 한마디로 낙타의 삶은  복종의 주체를 상징한다.


정신 2단계는 낙타의 정신보다 더 우월한 사자의 정신이다. 사자는 '자유의지의 주체'로, 자신이 믿지 않는 것, 자신이 따르고 싶지 않은 것을 부정할 수 있는 힘과 의지가 있는 존재다. 즉 사회의 모순을 깨닫고 전체의 일부로서의 하나가 아닌 고유한 주체로서의 내가 되기를 지향한다. 또 자기가 쟁취하고 싶은 것을 쟁취해내고자 하는 존재이다. 한마디로 힘의 의지를 가지고 사는 삶이다.


그런데 사자의 삶에도 한계가 있다. 그것은 바로 자유와 꿈을 위해 몸부림치는 사자는 이미 너무 강하고 단단하게 형성되어 있는 기존의 권력과 싸워서 이겨야 한다. 니체가 서양의 이분법적 관념론과 기독교의 내세관을 망치로 때려 부순 것처럼 치열한 싸움이 전제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사자의 정신은 이렇게 기존 체제와의 거듭된 싸움으로 인한 상처를 감당해야 하는 삶이다.


정신 3단계는 이런 싸움을 거듭하는 과정에서 터득한 지혜로 세상을 놀이처럼 가지고 놀 수 있는 어린아이의 정신이다. 당면한 현재의 문제점을 잠자코 따르지만도, 그렇다고 거세게 저항하지만도 말고 재밌는 '놀이'로서 바라보는 마음의 여유라고 할 수 있다. 그러면 그 문제점이 무력화되고 남들에게 고통을 주려하는 이들을 오히려 당황시킬 수 있게 된다는 뜻이다. 나는 이 대목에서 영화  (왕의 남자)에  등장하는 남사당패처럼  임금을 가지고 노는 풍자와 해학이라면 어린아이의 단계의 최고봉이 아닐까 생각해 봤다.


니체는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에서 '아이의 정신'을 갖게 된 사람에 대해서 이렇게 묘사하고 있다.


"그는 이제 더 이상 양치기나 사람이 아닌, '변신'한 자, 빛으로 감싸인 자가 되어 웃고 있었다. 지금까지 이 지상에서 그와 같이 웃어본 자는 없었다."


결국 어린아이의 단계는 힘과 힘으로 맞붙는 삶이 아니라 한 발 물러나서 상대방의 힘을 빼는 어린아이 같은 삶의 자세를 말하는 것 같다. 이런 경지라면 참으로 어려운 경지이기도 한데 어떻게 보면 쉬운 경지라는 생각도 든다.


최근에 마을 회관에서 많은 시간을 보내는 엄마는 마을 회관의 살림과 정책을 주로 이끌어가는 권력층에 대해서 나름의 처세술을 익히신 것 같다.


예를 들어 젊은 권력층에 속하는 엄마 손아래 올케인 외숙모가


"성!~ 짧은 소매 옷은 입지 마? 팔뚝이 비썩 말라서 보기 싫어"


이렇게 얘기하면 엄마는 이렇게 대답한다고 한다.


"예! 예! 잘 알겠습니다."


엄마의 대답에 사람들이 다 웃었다는 이야기를 들으면서 엄마는 어쩜 니체가 말하는 정신 3단계에 가 있는 게 아닐까 생각했다. 엄마는 비록 늙고 힘없는 노인이지만 "내가 나이가 니들보다 훨씬 많은데 나보다 훨씬 젊은 니들이 뭔 시비가 그렇게 많아?" 이런 자세보다는 그냥 "예! 예! "로 처신하신다니 내가 배워야 할 점이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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