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여섯에 낳은 딸

외할머니의 딸

by 조서정 시인

외할머니는 열네 살에 스물여덟 홀아비한테 시집을 왔다고 한다. 시집을 왔다기보다는 그냥 입에 풀칠이나 해주면서 데리고 살라고 보낸 개념이 정확할 것 같다.


당시 홀아비였던 외할아버지한테는 여덟 살 딸과 다섯 살 아들이 있었다고 한다. 아무것도 모른 채 열네 살에 열네 살이 더 많은 홀아비한테 팔리듯이 시집 온 외할머니는 혼례 치르고 3일 만에 전처소생들에 대한 존재를 알게 됐다고 한다. 그날부터 열네 살 처자는 전처 소생들한테 젖가슴을 물려가며 어미 잃은 헛헛한 가슴을 채워줬다고 하니 지금 생각하면 상상도 못 할 일이다.


어찌 됐든 외할머니는 열여섯에 첫 딸을 낳았고 외할머니의 첫 딸이 내 엄마다. 외할머니가 열여섯에 낳은 우리 엄마는 태어나자마자 위로 열 살 많은 언니와 일곱 살 많은 오빠가 버티고 있었던 셈이다. 전처소생이 딱 버티고 있는 사이에서 셋째로 살아내야 했던 엄마는 출생부터 고된 운명을 타고났던 것 같다.


그래도 엄마의 기억 속에는 바로 위 오빠가 당신을 때리려고 할 때마다 큰 언니가 엄마를 끓어 안고 못 때리게 막아줬다고 하니까 언니에 대한 애틋함은 있었던 것 같다. 그 이후로 엄마는 큰 외할머니의 소생인 큰 이모와 큰외삼촌 사이에서 형제들의 우애까지 감당해야 했다.


엄마 아래로 다섯 명의 자식을 더 낳았으니 외할아버지와의 정은 그렇게 나쁘지 않았던 것 같다. 하지만 엄마의 기억에 따르면 외할머니한테 외할아버지는 시아버지처럼 무서운 사람이었다고 한다. 여하튼 시아버지처럼 무서운 남편마저 자식만 줄줄이 낳아놓고 일찍 세상을 뜨고 말았으니 외할머니의 여자로서의 생은 가히 안쓰럽기 그지없는 인생이었다.


외할머니가 외할아버지한테 시집오게 된 것도 운명의 장난이 있었다고. 그러니까 외할머니의 엄마가 외할머니의 사주를 풀었는데 총각한테 시집가면 단명할 팔자였다고 한다. 그래서 외할머니의 엄마가 당신의 딸을 홀아비였던 외할아버지한테 그냥 보냈다는 이야기를 엄마한테 전해 들었다.


내 기억 속의 외할머니는 누구보다 깔끔하고 단정한 분이셨다. 거기다 총명하기까지 하셨으니 아마도 현대에 태어났으면 못해도 국회의원은 해 먹었을 양반이다. 강단 있고 멋진 분이셨다. 그런 외할머니도 돌아가실 무렵에는 먼저 가신 외할아버지를 무척이나 그리워하셨단다. 한 번은 외할머니가 엄마한테 이렇게 말씀하셨다고 한다.


"애야!~ 나는 니 아버지가 시아버지처럼 무섭긴 했어도 나한테는 평생에 하나밖에 없는 남편이었고 또 첫 남자였단다. 요즘에는 돌아가신 니 아버지가 무척 보고 싶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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