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어서도 이루지 못한 사랑
외할머니의 묘소에 다녀온 엄마 옆에 나란히 누워
어느덧 외할머니가 된 엄마를 불러본다
열네 살에 스물여덟 홀아비한테 시집와 족두리 푼 지 하룻만에,
전처 자식 끌어안고 빈 젖을 물렸다는 외할머니. 서른둘부터
팔 남매 혼자 키웠다더니, 이제 네 아버지 만나 할 말 있다 하시던 날,
*청천 각시 설화 한토막 큰딸에게 들려주며 "네 아버지 나의
첫사랑이었다" 수줍게 고백하던 밤. 잠든 외할머니 손톱마다
붉은 봉숭아 물들여놓았다는 엄마
외할아버지 쌍분 아래 저만치
아직도 젖 먹여야 할 자식 남아있다는 듯
홀로 누운 외할머니
저승길 잃지 말고 아버지 잘 찾아가시라
손끝마다 꽃등 켜드린 딸의 마음 알았을까.
퉁퉁 부은 다리로 밤새 봉숭아 꽃등 밝혀 든
신랑 기다리는 외할머니 봉분 앞에서,
봉숭아 씨앗처럼 툭툭 튕겨 나온 모녀
-졸시 「봉숭아꽃」 전문/시집 <모서리를 접다>에서
*청천 각시
혼례 올린 첫날밤 심하게 앓다가 기약 없이 떠나버린 신랑을
만나기 위해, 열손 락을 기름에 절여 태우며 아흔아홉 굽이
험산을 넘는다는 청천 각시 설화
젊어 혼자된 외할머니는 꽤 오랜 시간 먼저 가신 외할아버지를 그리워하신 것 같다. 불행 중 다행이라고 해야 될지 모르겠으나 외할머니의 그리움을 채워준 것은 '가지 많은 나무에 바람 잘 날 없다'는 속담처럼 자식들 걱정으로 채워졌다.
외할아버지가 돌아가시기 전에 전처소생인 큰아들과 큰딸 그리고 우리 엄마와 외삼촌을 혼인시켜 분가시켰다. 그리고 나머지 외삼촌과 이모들은 아직 미혼인 상태에서 외할아버지가 돌아가셨다. 물론 외할아버지가 돌아가시기 전에 나름의 재산 정리를 해놓긴 했지만 중간에 이런저런 일로 외할머니가 낳은 큰아들인 둘째 외삼촌이 고향으로 돌아와서 외할머니를 모시고 살았다.
여하튼 전처소생인 큰딸과 큰아들을 포함하여 당신이 낳은 딸 셋, 아들 셋이 있었으니 자식 걱정에 하루도 마음 편할 날이 없었을 것 같다. 자식들 사이에 갈등이라도 생길까 봐 전전긍긍했을 것은 불 보듯이 뻔한 일이다. 여하튼 누구의 노력인지는 모르겠으나 내 기억에 의하면 외갓집 형제들은 꽤 의좋게 지냈던 것으로 기억한다.
외할머니 평생에서 가장 마음 아팠을 자식은 마흔둘에 생을 마감한 막내 외삼촌과 열여섯에 낳은 첫 딸인 엄마가 아니었을까 싶다. 막내 외삼촌 이야기는 나중으로 미루고 먼저 엄마 이야기를 하자면 엄마는 한 동네에서 한 동네로 시집을 왔다. 그것도 오분도 안 되는 거리에서 한 살 많은 아버지한테 중매로 시집을 온 것이다.
첫 딸을 오분 거리에 시집보낸 외할머니는 매일매일 우리 집 대문 앞을 서성이며 딸의 안부를 살폈다고 한다. 혹여 무슨 일이라도 있는 것은 아닌가 싶어 밥만 드시면 외갓집이 있는 윗뜸에서 우리 집이 있는 아랫 뜸으로 마실을 내려오셨다. 우리 집 대문을 서성이다 대문 안으로 들어오지도 못하고 다시 돌아가기를 수없이 반복하셨을 외할머니의 모습이 눈앞에 선하게 그려진다.
외할머니가 말년에 가장 힘들어하셨던 부분은 부부 합장 관련 사안이었다. 큰외할머니 소생인 큰외삼촌과 큰 이모는 당연히 당신 어머니와 외할아버지의 합장을 당연하게 받아들였다. 하지만 우리 외할머니의 소생인 엄마와 작은 외삼촌과 이모들은 생각이 다를 수밖에 없었다.
첫 번째 대안은 세분 다 나란히 모시는 안이었다. 이것은 아마도 우리 측에서 낸 묘수였던 것 같다. 두 번째 대안은 큰 외할머니와 외할아버지를 합장하고 두 번째 부인으로 들어온 우리 외할머니를 따로 모시는 안이었다. 이것은 분명 큰외삼촌 쪽에서 낸 안이었다. 이 과정에서 전통 법도를 중요하게 생각한 큰외삼촌은 당연히 자기들의 주장을 관철시키려 했고, 우리 측에서는 세분을 나란히 모시고 싶어했다.
이 과정에서 형제의 난이 일어나면서 가장 불편했던 사람은 당사자인 외할머니였다. 양쪽 다 한 치의 양보도 없이 팽팽하게 대립했다. 결국 이 문제를 풀 수 있는 사람은 생존에 계신 외할머니 한 분 뿐이었다.
어느 날 외할머니가 자식들을 다 불러놓고 중대 결심을 말씀하셨다.
"나는 죽어서 혼자 호젓하게 있을라니께 너희 아버지랑 큰어머니를 합장해라. 더 이상 너희들끼리 싸우는 꼴은 내 더는 보기 싫다. 앞으로 이 문제로 형제들끼리 싸우는 일이 없었으면 좋겠다."
결국 이 문제는 외할머니의 결단으로 일단락이 됐다. 그리고 외할머니가 세상을 떠난 한참 뒤에 혼자 외할머니 묘소에 다녀온 엄마가 엄청 슬픈 표정으로 외할머니가 외할아버지한테 시집오게 된 사연을 내게 들려주셨다.
그날 외할머니 이야기를 나한테 해주는 엄마의 표정이 얼마나 슬퍼 보였던지 지금도 잊히지 않는다. 그래서 외할머니의 못 다 이룬 사랑을 위해서 쓴 시가 위에 소개한「봉숭아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