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날밤

여자를 도둑맞다

by 조서정 시인


당시엔 근동에서 엄마를 며느리감으로 탐내는 집안이 많았다고 한다. 좀 잘 사는 집안에서 엄마를 며느리감으로 점찍어 놓고 혼인 말을 건넸는데 외할아버지가 양반이 아니라고 단칼에 거절했다는 일화도 있다. 여하튼 중매쟁이가 엄마와 아버지 사이를 오가면서 뻥튀기 작전을 펼친 결과 두 집안의 혼사가 결정된 후에 있었던 일이다.


"혼인 사흘 전에 약혼식 선물을 사러 은산장에 갔는데

그때 니 외할아버지가 둘이만 가면 안 된다고 니 외삼촌을 데리고 가라고 하더라.

그리고 니 외삼촌한테 두 사람이 아무 짓도 못하게 꼭 감시하라고 임무를 주신겨.

그래서 셋이서 은산 장에 가서 머리도 하고 약혼 선물을 샀어.


나는 그때 수놓아서 번 돈으로 니 아버지한테 근사한 혁대를 사 줬어.

그런데 니 아버지는 달랑 싸구려 핸드백 하나랑 수놓을 때 쓰는 자 하나를 사 주더라.

나중에 알고 보니 그것도 방콩 한 말을 내다 팔아서 산 거라고 하더라.

그것 때문에 니 할머니가 벌써부터 지집한테 빠져서 정신 못 차린다고 화를 내셨다더라.


그날 니 아버지 속 짐으로는 니 외삼촌을 따 돌리고 둘이 데이트라도 해보고 싶었던 것 같은데

니 외삼촌이 딱 붙어서 따라다닌겨

그러니 피 끓는 청춘에 얼마나 속이 탔것냐

니 아버지가 나름 궁리를 해서 묘수를 낸 것이

니 외삼촌한테 먹을 것을 사 줄 테니 먼저 집에 가라고 꼬드긴겨


예비 매형한테 맛있는 것을 얻어먹은 니 외삼촌이 누나를 혼자 두고

홀라당 집으로 돌아가 버린 뒤에 니 아버지가 자꾸 시간을 끌더라.

아무 생각도 없이 니 아버지를 따라다니다가

새제 고개를 넘어서 집에 돌아오는데 해가 다 넘어간겨~

그 깜깜한 밤에 산고개를 스물한 살, 스물두 살 먹은 남녀가 넘어오는데

무섭기는 또 얼마나 무서웠것냐?

그런디 그날 니 아버지 생각은 영 딴 곳에 가 있었던 것이여"



시골 처녀는

얼굴 한번 못 본 약혼자와

혼인 사흘 앞두고

고개 넘어 은산으로

머리 하러 갔단다

해지기 전에 돌아오려고 서두르는데

떠꺼머리총각은

온갖 핑계 다 끌어모아

시간을 끌더란다

재 넘어 돌아오는 길 위에

약속이나 한 듯이 호랑이 나올 것 같은 산길에

어둠이 깔리더니

떠꺼머리총각 입고 있던 셔츠가

낙엽 위에 깔리더란다

산짐승들이 다 지켜보는 산중에서

여자를 도둑맞은 시골 처녀는

오십 년 넘게

사 남매의 엄마로만 살았다는데

저승 가는 날 받은

떠꺼머리총각

내가 먼저 가서 원앙금침 깔아놓을 테니

꼭 다시 만나 예쁜 첫날밤 치르자고

반세기 만에 프러포즈를 하더란다

생애 첫 프러포즈를 받은 날

비로소 산에서 내려온 시골 처녀는

딱 3년만 기다리라고 한 약속을 번복하면서

아직도 멋진 첫사랑을 설계 중이란다

-졸시 「엄마」 전문/ 시집 <어디서부터 어디까지를 나라고 할까>에서


엄마는 그날 밤 혼인 3일을 앞두고 첫날밤을 앞 당겨 치르셨다고 한다. 산길에서 약혼자가 깔아준 와이셔츠 한 장을 원앙금침 삼아 불한당 같은 남자한테 여자를 도둑맞은 것이다. 그래서 엄마 기억 속에 남아 있는 첫날밤은 금방이라도 호랑이가 달려들 것 같은 공포 속에서 산짐승 우는 소리를 들으며 눈 깜짝할 사이에 여자를 도둑맞은 날로 평생 기억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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