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물한 살에 한 동네에서 중매로 아버지한테 시집 온 엄마는 정말 어렵게 자식을 가졌다. 자식을 어렵게 가진 데에는 다 그만한 이유가 있겠지만 어쨌든 유별난 엄마의 자식 사랑은 첫아들인 오빠를 어렵게 낳은 것에서부터 시작됐는지도 모를 일이다.
아버지가 제대하고 돌아와서 7년이 다 되도록 아이를 낳지 못한 엄마는 당연히 시집살이가 가시방석이었을 것이다. 한양 조 씨 13대 종손의 대가 끊어질 지경이었으니 속이 얼마나 탔을지 말해 뭐하겠는가.
“내가 시집와서 7년이 다 되도록
죽은 애만 내리 둘을 낳고 온전한 애를 못 낳았으니 내 마음이 오죽했겠냐.
그렇게 속을 팍팍 태우던 어느 날,
사랑방 부엌에서 불을 때고 있는 디
호박 점쟁이가 지나가다가 우리 집으로 쑥 들어오더라.
그러더니 내 얼굴을 가만히 쳐다보는 겨.
그러면서 하는 말이 애를 못 낳아서 걱정이 많구먼
하지만 걱정할 필요가 없어.
팔자에 애가 여덟인디 넷은 잃고 넷은 똑똑하게 잘 나올 거구먼 이러는 거야.
그러면서 흙 파먹고 사는 애는 하나도 없을 거라고 하더라.
그땐 하나도 못 낳서 죽겠는데 그 말이 믿기지도 않았어
그런데 지금 생각해보니까 호박 점쟁이가 영락없이 맞췄더라고”
엄마는 호박 점쟁이의 말대로 결혼 7년 만에 꿈에 그리던 아들을 얻었다. 오빠를 낳고 세상을 다 얻은 것처럼 행복했다고 한다.
엄마를 소박에서 구해준 그 아기가 나 보다 2년 먼저 태어난 오빠다. 오빠 뒤에 생긴 나는 뱃속에서 물구나무서기를 하느라 엄마 목숨을 쥐락펴락 하다 태어나긴 했어도 별 탈 없이 두 동생을 순산으로 안내하는 길잡이가 되었다.
“그런데 엄마! 왜 호박 점쟁이라고 불렀대요?”
“응~ 그 사람은 호박 두 개만 주면 점을 봐줬어.
어디 사는 사람인지도 모르고
그냥 이 동네 저 동네 떠돌아다녔는데 이상하게 호박만 받아갔어.
그래서 사람들이 호박 점쟁이라고 불렀어 “
지금 생각해봐도 호박 점쟁이 말이 딱 맞아떨어졌다. 엄마는 오빠 위로 둘을 사산하고 막내 동생 밑으로 둘을 더 사산했다. 여덟명 중에 네 명만 온전히 세상 구경을 하게 된 것이다.
거기다 흙 파먹고 살 자식이 하나도 없다고 했던 말도 딱 맞아떨어졌다. 우리 사 남매 중에 농사짓는 자식이 하나도 없으니 호박 점쟁이가 용하긴 했나보다.
엄마는 그때 호박 점쟁이만 생각하면 신통방통하다고 몇 번씩이나 그 이야기를 나한테 들려주셨다. 그러면서 그때는 애를 하나도 못 낳던 때라 호박점쟁이 말이 믿기지 않았다고 당시를 회상하신다.
“지금 생각하면 얼마나 곰진가 모르겠다.
하나만 낳아도 소원이 없을 것 같았는데 이렇게 똑똑하고 잘생긴 자식을 넷이나 낳아 키웠으니
엄마는 지금 죽어도 여한이 없을 것 같다.”
오빠를 낳은 이후로 엄마의 삶은 여자와 남자, 아내와 남편의 경계를 넘어 그냥 어떻게든 이 가난을 헤치고 앞으로 나가 네 아이들을 무탈하게 키워내야 한다는 생각 외에 다른 아무것도 없었으니 더 이상 아버지의 아내이기보다는 사 남매의 엄마로만 살아내야 했던 시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