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년 동안 고이 간직해 온 순정은 깜깜한 새재 고개 산등성이에서 뭉개졌다. 물론 평생 남편으로 모시고 살 남자와의 첫날밤이었지만 그래도 꿈꿔왔던 첫날밤에 대한 환상은 있었던 터였다. 그렇게 3일 후에 혼례를 치르고 신접살림을 차린 곳은 중매쟁이가 얘기한 작은 아버지가 마련해 놨다는 읍내에 있는 신혼집이 아니었다.
여덟 살 먹은 시누이와 그 위로 머리 큰 시동생들에 몸 불편한 시어머니와 시아버지까지 층층시하로 얽히고설킨 친정집에서 5분 거리에 있는 시골집이었다. 첫인상부터 무섭게 생겼던 남자가 남편이 되었으니 어쩌랴! 그래도 한평생 정 붙이고 살아야 할 판이었다.
그런데 혼례 치른 지 석 달만에 무섭게만 느껴졌던 신랑마저 냅다 군대로 내빼 버렸다. 눈앞의 현실은 입을 쫙 벌리고 달려드는 층층시하 시월드였다. 그나마 며느리를 엄청 귀히 여겨주시는 시아버지는 유일한 숨구멍이었다. 그마저도 주어진 복이 딱 거기까지였던지 시집온 지 채 1년이 안 돼 배앓이를 앓던 시아버지마저 서둘러 먼 길을 떠나셨다. 그때부터 시아버지 3년상까지 도맡게 됐다.
어찌어찌 눈물로 보낸 3년이라는 시간이 흐른 뒤에 군에 간 신랑이 집으로 돌아왔다. 이제 좀 한시름 놓는가 싶었는데 다시금 문제가 불거졌다. 그것은 바로 혼인하고 7년이 다 지나도록 아기를 못 낳았다는 사실이다. 그렇다고 아예 임신이 안 된 것도 아니다.
뭐 워낙 젊은 청춘들이라 손만 잡고 자도 아기가 생긴다고 할 수 있는 나이였으니 아기가 잘 들어섰는데 열 달을 다 못 채우고 태중에서 엄마에게 이별을 고했던 것이다. 한 번, 두 번 유산 횟수가 늘어나는 만큼 할머니의 눈초리는 매섭게 변해만 갔다.
모든 일에는 원인이 있는 법, 괜히 유산이 된 것도 아니었다. 뭐 워낙 자궁을 약하게 타고난 데다가 임신 중에도 태중에 아기와 함께 온갖 모진 농사일을 다 해내다 보니 아기가 뱃속에서 견디지 못하고 스스로 생을 마감해 버렸던 것이다.
급기야는 터질 것이 터져버린 할머니의 분노는 송곳이 되어 엄마를 찔러댔다.
“너는 남의 집 대를 끊어 놓으려고 시집왔냐? 애 못 낳을 것 같으면 남의 집 대 끊어 놓지 말고 어디 가서 뒈져 버리던지... ”
엄마는 혹여 친정엄마가 대문 앞을 지나다가 시어머니가 마구잡이로 쏟아내는 막말들을 들을까 봐 장독 뒤에 숨어서 혼자 설움을 삭혔다고 한다. 그렇게 하루하루를 견디던 엄마는 결국 모진 결심을 하고 작은 보따리를 가슴에 끓어 안고 백마강 난간에 올라섰다는데....
“내가 강물에 막 뛰어들려는 그 순간 강물 위에 늬 외할머니 얼굴이 딱 보이는 겨, 워쩌것냐. 불쌍한 친정엄마와 딱 마주쳤으니 결국 한 번 더 견뎌보자 싶어서 보따리를 품에 안고 층층시하가 있는 집으로 돌아왔던 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