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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서정 시인 May 20. 2024

3.니체는 왜 '차라투스트라'를 소환했을까?

니체는 왜 '차라투스트라'를 소환했을까?     

니체는 1844년에 루터교 목사의 아들로 태어났다. 니체의 집안은 친가뿐 아니라 외가도 대대로 목사 집안이었다. 기독교 목사 집안에서 자라고 성장한 니체 또한 기독교 성경에 해박한 지식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에 목사가 되기 위해 신학대학 입시를 준비했을 정도로 기독교 성경에 해박했다. 다른 한편으로는 일찍이 학계에서 고전학의 일인자로 인정받았을 만큼 고전학 지식도 풍부해서 스물네 살(1869년)에 리츨 교수의 추천을 받아 스위스 바젤 대학교의 고전문헌학 교수가 된다.      


일찍이 기독교와 고전문헌학에 대가였던 니체가 자신의 철학을 세상에 설파할 대리인으로 내세운 인물이 고대 조르아스터교의 창시자였던 차라투스트라였다. 니체는 왜 자기 철학의 핵심 사상을 집대성한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를 집필하면서 왜 기원전 6~7세기에 조로아스터교를 창시한 '차라투스트라'를 소환했나에 대한 궁금증을 풀기 위해 먼저 조르아스터교에 대해 간단히 살펴봤다.      


조로아스터교는 고대 페르시아의 철학자이자, 오늘날 예언자로 불리는 조로아스터(Zoroaster)에 의해 창시된 종교로 유일신 아후라 마즈다를 숭배하는 동시에 선과 악의 싸움을 통해 사후에 천당과 지옥으로 떨어진다는 이원론적 세계관을 가지고 있었다. 조로아스터교의 창시자인 조르아스터(또는 차라투스트라)는 방랑 생활을 하다가 서른 살, 즈음에 천사장을 만나는데 참된 신은 아후라 마즈다이고 너 차라투스트라는 그의 예언자라고 알려준다.      


그런데 여기서 잠깐, 니체 철학이 나오게 배경을 살펴보면 당시 서양 사회를 지배한 정신세계는 관념론에 입각한 가치 체계가 대세를 이루고 있었다. 즉 플라톤은 세계를 현상계와 이데아계로 이분했고, 기독교는 이승 외에도 내세 즉 하늘나라가 있다고 가르쳤다. 플라톤의 관념론과 기독교 사상은 세계를 절대 변하지 않는 ‘존재’와 무수히 변화하는 사물의 ‘생성’으로 구분했다. 그러면서 절대 변하지 않는 '존재'에 대해서는 모든 의미와 가치를 인정하는 반면 끊임없이 변화하는 현재의 삶인 '생성의 세계'에 대해서는 폄훼하는 인식이 지배적이었다.      


니체는 이런 이분법적 관념론과 기독교 사상에 반대하며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에서 "저편의 또 다른 세계라는 것은 고통과 무능력, 그리고 더없이 극심한 고통에 시달리는 자가 꾸며낸 덧없는 행복의 망상"이라며 영원한 세계나 절대적 가치는 없다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기독교 신자들이 예수의 가르침과 달리. 예수를 안 믿으면 지옥 간다는 절망적 가치만 전했다며 “기독교는 대중을 위한 플라톤 사상에 불과하다” 《선악의 저편》고 기독교를 비판했다.      


니체의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는 이처럼 기독교 성경과 고전문헌학에 나오는 그리스 비극의 배경에서 잉태된 작품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니까 니체는 유일신인 예수를 믿으면 천당에 가고 예수를 안 믿으면 지옥에 간다는 기독교 사상에 최초로 영향을 끼친 조로아스터교의 창시자인 차라투스트라의 입을 통해서 기존의 가치 체계인 이원론적 세계관을 바로 잡고 싶어서 자기 철학의 핵심 사상을 설파할 대리인으로 차라투스트라를 소환하지 않았을까 하는 추측을 해 보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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