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전 청춘학교는 문해학교 어르신들의 시 모음집 『웃어요 청춘이잖아요』를 도서출판 애드모아에서 출간했다.총 4부로 구성된 이번 시집에는 문해학교 허복자 어르신의 그림과 이전순 어르신들이 수업 중 쓴 시들을 원문 그대로 실어서 더 현장감있게 읽힌다.
책 표지는 허복자 어르신이 그린 그림에 이전순 어르신이 쓴 “사랑하는 일도 어렵고 미워하는 일도 어려워라/사랑하려니 밤하늘 아득한 별빛이요/ 미워하려니 내 앞에 어여쁜 꽃 한 송이로 피어 있네”라는 시가 실려 있어서 책 내용에 대한 궁금증을 증폭시킨다.
그림을 그린 허복자 어르신은 1943년 삼척 출생으로 열아홉에 대전으로 시집와서 대전에 뿌리 내렸다. 허 어르신은 4년전 우연히 TV에서 나오는 청춘학교를 보고 공부하고 싶다는 마음에 방송국에 전화를 걸어 직접 청춘학교에 찾아오신 분이다.
허 어르신은 “학교에서 공부하는 것이 너무 행복하고 연극, 게임, 요리 등 다양한 활동은 물론 친구들을 만나는 것이 무엇보다 기쁘다”며 “청춘학교에 와서 그림을 처음으로 그려봤는데 너무 재미있고 뜻밖에 소질을 발견했다”고 말했다.
글을 쓴 이전순 어르신은 1942년 남원 출생으로 스무 살에 대전으로 시집와 대전에 정착했다. 2018년부터 청춘학교에서 공부했는데 1박2일로 불국사 여행 갔던 추억과 친구들이 많이 생겨서 너무 좋다고 말한다.
나는 어려서 글을 많이 못 배웠다
그래서 항상 앞에 못 나섰다
나는 강신태 아내였다
나는 강석무 엄마다
나는 가현구 할머니다
나는 강씨집 며느리다
그렇게 살아왔는데
청춘학교에 공부하러 다니면서
선생님이 내 이름을 불러주고,
수학여행도 갔다 오고
내 나이가 꼭 이팔청춘 같다
공부를 해서 동창회도 하면 좋겠다
내 나이가 너무 많지만 더 많은 꿈을 꾸고 싶다
이전순은 꿈을 이룰 수 있다
-「꿈」전문
집에 오다가 윗집 언니 지 여사를 만나 알게 된
성인학교라는 곳에 가서 3개월을 배웠다
그런데 갑자기 초등 검정고시를 보라고 해서 이 곳 청춘학교로 왔다
2주 공부해서 시험을 치렀다
첫 시험에 떨어져서 재수생이 되었다.
하지만 청춘학교에서 다시 1년을 공부해서 초등 검정고시에 합격했다
기뻤다.
몸만 따라 준다면 중학교 검정고시도 도전하고 싶지만 너무 힘들다.
-「청춘학교」 부분
어렸을 때 나는 5남매의 막내딸로 행복하게 자랐지만
6.25전쟁이 나는 바람에 학교에 다지지도 못하게 되어 공부를 배우지 못했다
1950년대 당시 나는 사진 한 번 보고 결혼한 덕에 귀한 자동차도 탔다
하지만 그는 1주일 만에 군대를 다시 가게 되어
우리는 6개월 동안 떨어져 있었다.
그래서 그가 제대한 후에는 얼굴도 기억나지 않을 정도로 낯설어져 있었다.
그가 제대한 그날 밤 생각이 난다
남편은 무엇인가를 주머니에 숨겨 왔다.
그것이 무엇일까 생각하고 있을 때 그는 노오란 밀감 하나를 꺼냈다.
밀감이 귀했던 그 시절 군에서 나를 주려고 하나를 숨겨왔던 것이다.
새콤달콤한 밀감을 하나하나 직접 까서 주는 것을 먹으며
그때 나는 너무 행복했다.
-「행복」 전문
『웃어요 청춘이잖아요』에는 맞춤법 틀린 시들이 아주 사실감 있게 표현되어 있는 것이 특징이다. 정제 안된 시들을 가만히 읽고 있으면 우리 세대 어머니들의 아픈 삶이 오롯이 전해져서 더 큰 감동으로 다가온다.
청춘학교 전성하 교장은 “허복자 어르신은 그림을 한 번도 배워본 적이 없음에도 타고난 감각으로 표현을 정말 잘하시는 분이라며 평소 자신의 이름으로 그림책을 한 권 내고 싶다는 꿈을 가지고 계셨다”고 말했다.
전 교장은 이어 “이전순 어르신은 나이 팔십에 연필 잡고 글 쓰는 것이 가장 행복하다는 분이라며 다음 생에는 꼭 선생님으로 태어나면 좋겠다”고 말씀하시는 분이라고 설명했다.
김채운 시인은 추천글에서 “우리는 모두가 누구의 무엇으로 규정되고 명명되기 마련”이라면서 “누군가의 며느리로서, 엄마로서, 할머니로서가 아닌 온전히 되찾은 자기로서 청춘학교 학생, 이전순으로 불릴 때 가장 행복하다고 시인은 말한다”면서 “거칠고 모진 세월을 묵묵한 인내로 건너온 이후에 수줍게 끄집어낸 속내, 그 깊고 너그러운 마음이 이끈 진솔한 이야기들이 고운 시편이 되어 치열한 세상을 살아가는 우리들에게 지혜와 용기와 희망을 선사한다”고 말했다.
오로지 자식만을 위해 희생하며 살아온 우리들 어머니의 온기가 그리워지는 날에 『웃어요 청춘이잖아요』를 읽어보면 좋을것 같다.